▲ 요즘 여성 직장인들 사이에서 개룡남을 기피하고 부정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연합뉴스 | ||
‘개룡남’들은 날 때부터 좋은 옷, 좋은 집에서 맘껏 호사를 누리고 자란 사람들이 아니다. 삶의 여유 없이 치열하게 살아 이제 좀 쉴 참이다. 하지만 같은 위치에 있어도 어떤 과정을 겪었느냐에 따라 개인의 성격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한 누리꾼은 “어릴 때부터 자라온 환경으로 인한 문화의 차이는 개인의 노력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반적이진 않지만 차원이 다른 고급문화만을 접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개룡남들은 어쩔 수 없는 열등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L 씨(29)는 자신도 모르게 신경 쓰게 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같은 부서에 유난히 집안 좋은 동료들이 많아요. 그래서인지 저도 모르게 유명 브랜드에 집착하게 됩니다. 옷을 골라도, 가방을 사도, 심지어 양말 하나에도 유명 브랜드가 안 붙어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있어요. 디자인이나 품질을 더 중요시하는 실용적인 성격이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사실은 안 그래요. 오히려 주변에 있는 집안 좋은 동료들이 브랜드를 상관 안 해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개의치 않는다고나 할까요. 반면 ‘저 사람은 날 때부터 저래’라는 말을 들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제 모습을 보면 한심해지기도 합니다.”
L 씨는 열등감 때문에 다소 예민한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동료들끼리 그냥 어릴 때 이야기나 살아온 환경을 갖고 농담을 하면 쉽게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는 L 씨는 “혹시 내 얘기가 아닐까 싶어 신경을 곤두세우고 쓸데없이 발끈했던 경험도 있다”고 털어놨다.
‘개룡남’들은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고 자라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라 여자와 남자에 관한 역할 구분이 확실한 경우가 많다. 홍보회사에 근무하는 Y 씨(여·30)는 개룡남 친구로부터 허구한 날 지적을 당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대기업 법무팀에 근무하다 지금은 로스쿨까지 합격해 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있어요. 지방에서 올라온 그 친구는 대표적인 개룡남이에요. 한번은 친구 2~3명이 모인 자리에서 야한 영화이야기가 나왔고, 그때 제가 ‘좋은 CD 있으면 공유하자’고 농담을 했어요. 근데 그 친구가 정색을 하면서 ‘여자애가 못 하는 소리가 없다’고 면박을 주는 거예요. 비슷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죠. 개룡남 친구들이 좀 보수적이긴 해요.”
이 의무감 때문에 개룡남을 기피하는 여성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것이 주된 요인이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O 씨(여·32)는 요즘 친구들과 만나면 ‘개룡남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고 한다. “나이가 있는 만큼 결혼에 대해 현실적인 생각들을 많이 하게 돼요. 개룡남들이 대체로 책임감 있고 든든한 느낌을 주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시댁과의 관계예요. ‘개룡남 집안에선 유난히 여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어 여자들이 주저하게 된다’고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가 많죠. 개룡남 중엔 바르게 자란 사람이 적지 않아요. 사람 자체는 좋지만 그래도 결혼하려는데 이것저것 따지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속물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는 주변에 개룡남과 결혼해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생각을 더욱 굳혀가고 있다. “모든 커플들이 완벽한 결합을 이룰 순 없지만 특히 도시에서 평범하게 자라온 친구일수록 개룡남과의 결혼생활에 갈등이 많다”는 O 씨는 “남편이 집안일 분담에도 인색하면서 시댁 대소사엔 무조건 적극적이길 바라는 상황이 갈등을 키우는 것 같다”고 전한다.
이성문제에선 어떨지 몰라도 대개의 개룡남들은 업무처리 능력에서만큼은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외국계 기업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는 A 씨(36)는 개룡남 직원들을 선호한다.
“‘8학군 출신들이 대학입시나 입사시험에서 우대 받는다’ ‘부유하게 자란 사람들은 보고 체험한 것이 달라 스케일이 남다르다’ 같은 근거 없는 소문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개룡남들에게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일단 ‘악바리’기질이 있어서 힘든 업무도 어떻게든 끝을 보려고 하더라고요. 특히 책임감에 있어선 편하게만 자란 친구들과 비교가 안 돼요. 일을 맡기면 마음이 편한데 상사로서 어떻게 예뻐하지 않을 수 있나요. 자기 계발에도 열심이에요. 개룡남치고 나태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결혼시장에서는 찬밥일지 몰라도 회사에서는 다릅니다.”
인터넷에서 시작돼 매스컴을 통해 확산되면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개룡남 기피 현상. 몇몇 결혼전문가들은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도 가족 배경이 든든하지 않으면 본인이 속한 계층을 업그레이드하기 어렵다”며 ‘계층 간 이동의 고착화’를 개룡남 기피의 이유로 들고 있다.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