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스타일>의 한 장면. 사진제공=SBS | ||
대기업 계열 연구소에 근무하는 J 씨(32)는 ‘잘나신’ 후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업무상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사사건건 건방진 태도에 J 씨를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내 딴에는 존중해 준다고 꼬박꼬박 존칭어 쓰면서 대우해 줬더니 확연한 차이가 날 만큼 다른 선배와 저를 차별하더군요. 제가 업무지시를 하면 건성이에요. 솔직히 일 하나는 잘합니다. 그래서인지 대놓고 제 일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하는데 화가 끓어올라도 할 말이 없더라고요. 배려 없이 말을 내뱉는 후배도 스트레스지만 이런 후배 하나 화끈하게 누르지 못하는 제 자신이 더 못나 보이더군요.”
그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단점을 후배의 입을 통해 들으려니 속이 더 쓰렸다. 분하지만 건방진 태도에 대한 지적도 열등감으로 비칠까 싶어 속으로 삭이게만 된다.
J 씨는 “후배의 입바른 소리는 당연히 듣기 싫지만 내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끔 자극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실력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과 인생 선배로서 당당하고 멋진 아량을 보여주자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고 털어놨다.
반면 후배가 일을 너무 못해도 골치 덩어리다. 이런 후배는 의욕만 앞서 손대는 족족 폭탄을 뻥뻥 터뜨린다. 그 뒤처리에 진땀나는 것은 고스란히 선배 몫이다. 자동차 회사 마케팅 관련업무를 맡고 있는 L 씨(33)는 새로 들어온 후배 덕분에 야근이 잦아졌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지만 한 대 때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멍청한 사람은 게을러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안 그러면 사고만 치게 되거든요. 후배가 벌써 몇 번 일을 저질렀는데 미안함 때문인지 한번은 자료정리를 나서서 먼저 맡겠다고 하더라고요. 불안하기는 했어도 ‘혹시나’ 해서 맡겼는데 ‘역시나’였어요. 몇 개월간 분석하고 통계 내온 마케팅 관련 자료를 날려먹은 겁니다. 사람은 좋은데 일은 못하고 의욕만 앞서는 후배 때문에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속병이 난다니까요.”
답답한 후배보다는 눈치 빠른 후배가 낫겠지만 살살 분위기만 보면서 ‘사내 정치’에만 주력하는 후배만큼 얄미운 경우도 없을 터. 언론사 6년차인 K 씨(여·31)는 일을 배우기보다 선배 눈에 들려고 기를 쓰는 후배가 꼴사납다고 한다.
“어디서 들은 건 많아서 ‘인맥관리’에 너무 열을 내는 모습을 보면 기가 차죠. 명함을 받는 족족 정리해서 엑셀작업을 해놓는데 마감이 촉박한 업무시간에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어요. 술자리도 여기저기 낄 데 안 낄 데 다 끼어서는 분위기 살린다고 폭탄주 제조에 망가지는 모습은 영 아니다 싶었죠. 일로 인정받기보다는 어떻게 좀 선배들 눈에 들어볼까 애쓰는 모양새가 웃기기까지 하더라고요.”
겉으로야 똑같이 웃는다지만 ‘힘’있는 선배들한테는 속보일 정도로 더욱 달라붙는 후배의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까지 하다. K 씨는 “뭘 얼마나 얻어내려고 저러나 싶다가도 가끔 불쌍할 때도 있다”며 “잘못된 인맥관리 정보에 몸 망가지고 비굴해지는 후배가 싫으면서도 안쓰럽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꺼려지는 후배는 역시 ‘나이 많은’ 후배다. 대하는 것도 껄끄럽고 쓸데없는 조심성 때문에 일이 더 커지는 경우가 많다. 교육 관련 회사에 다니는 C 씨(33)는 어려운 후배를 ‘모시게’ 돼 고충이 많다. 어떻게 해도 편하지가 않아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명문대를 나왔지만 오랫동안 고시공부를 하다가 뒤늦게 취업을 하게 된 후배예요. 저도 지금 그리 적은 나이는 아닌데 이제 후배로 들어왔으니 나름 힘든 점도 많겠죠. 마냥 후배처럼 대하자니 나이가 걸리고, 그렇다고 예우를 해주자니 편치가 않아 은근히 고민입니다. 한번은 업무 때문에 싫은 소리를 했더니 눈에 띄게 어두운 얼굴로 말 한마디 안 하고 팀 분위기를 ‘엄숙하게’ 만들더라고요. 사실 후배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지적이었지만 나이 때문인지 열등감이 심한 것 같았어요. 그 다음부터는 괜히 저도 더 조심스러워졌죠.”
나이도 어리고 편하지만 쓴 소주가 절로 생각나는 미운 후배 역시 어디에나 꼭 있다. 똑같이 팍팍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후배 대접은 꼬박꼬박 챙겨 받으려고 하니 싫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S 씨(32)는 같은 직장 다니는 대학 후배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날이 많다.
“예전부터 사람을 잘 따르는 것 같아서 제가 회사에 추천을 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집안이 좀 넉넉합니다. 저처럼 절박하지는 않죠. 그런데도 대학 때 얻어먹던 버릇이 있어 그런지 몇 번 제가 사다가 이번엔 좀 후배보고 사라고 하면 ‘에이 선배가 내야죠’라면서 발을 뺍니다. 저보다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좋은 집에 살면서 나중에 물려받을 유산 때문인지 일도 대충하면서 밥 한 번 산 적이 없어요.”
한 정신과 전문의가 추천한 ‘후배에 관한 직장 생활 내 처세술’은 의외로 간단하다. ‘오픈 마인드’. 선배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가까워질 수 있다고 한다. 이때 반드시 전제돼야 할 조건은 당당한 내 모습이다. 얄미운 후배들 보고 속 태우면서 ‘예전 같았으면 저 녀석…’ 같은 식의 감상적 생각만 떠올리기엔 세상 변해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만 하다.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