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에 따르면 10년 전 외환위기 때의 주가 흐름은 18개월 동안 하락 기간을 거친 후 10개월 뒤에야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현재 글로벌 금융위기도 14개월간 하락 기간을 거친 후 현재 5개월째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2007년에 시작된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는 국내 코스피지수의 사상 최고치인 2000p선을 붕괴시키며 시작됐다. 이후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이되면서 국내 증시를 비롯해 전 세계 증시가 동반 급락했다.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이전에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맹위를 떨친 2007년 10월부터 2009년 2월까지 단 14개월 만에 코스피지수는 48.51%나 하락했다. 월간 기준 코스피지수는 2007년 10월 말 2064.85p에서 지난 2월 말 1063.03p까지 날개 없는 추락을 한 것이다. 하지만 올 3월부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시장이 급반등하면서 코스피지수도 단 5개월 만에 47.21%가 상승, 1560p선(7월 말 기준)을 회복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9월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공격적 성향의 일부 전문가들은 2010년 상반기(1∼6월)에 2000p선을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을 정도다.
주가가 단 5개월 만에 저점 대비 50%에 가깝게 상승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후 주식시장의 흐름과 비슷하다. 1997년 상반기(1∼6월) 한보철강 삼미 등 대기업의 연쇄부도가 터진 시점 이후 1998년 6월 말 코스피지수는 18개월 동안 56.56%가 하락했다. 1997년 1월 말 685.84p였던 코스피지수는 1998년 6월 300p선이 붕괴됐다. 이후 10개월이 지난 1999년 4월 700p선을 회복했다.
외환위기 후에 주가가 급반등한 것은 30대 재벌 중 15개가 파산하거나 군소 기업으로 조정되고, 상당수의 시중 은행이 퇴출되거나 인수·합병되는 등 신속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진 덕분이다. 동시에 자본시장의 개방이 빠르게 진전되면서 산업이 급진적으로 구조조정됐다. 이에 따라 경제와 주가지수 역시 깊은 골을 지난 직후 급반등하는 ‘V’자형 회복 양식을 보여줬다.
반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에서 시작된 것으로 한국 내부 문제라기보다는 외부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하지만 외국자본에 완전 노출된 국내 금융시장은 초기에 오히려 금융 위기가 더 크게 부각됐다. 세계 경기 침체로 한국 경제의 주축인 해외 수출 위축 역시 국내 경제를 옥죄었기 때문이다.
최근 외국인들은 아시아권 증시 중에서 특히 한국 증시에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외국인은 한국과 대만,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5개월째, 필리핀에서는 2개월째 순매수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자금 이동에 힘입어 한국과 대만,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주가는 지난 7월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경제 회복세 역시 외환위기 직후처럼 ‘V’자형 반등을 할 것이라는 통계도 나왔다. 지난 6월 경기 선행지수가 전달보다 2.8% 올랐으며 이는 지난 1970년 1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이었다. 또 6월 동행지수도 전달보다 2% 상승했다. 이 같은 지표는 이미 경기가 바닥을 찍고 상승세로 돌아섰으며 앞으로도 이런 기조가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선행지수와 동행지수를 구성하는 18대 지표 전부가 전월 대비 오름세를 보여 7년 4개월 만에 내수 경기회복도 기대하게 됐다.
최근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외화 유동성 위기가 1년도 못돼 사실상 끝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국내외 경기 회복 신호가 뚜렷한 데다 주식시장 상승과 환율 안정, 그리고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외화보유액 급증으로 외화 유동성이 금융 위기 이전 수준까지 회복돼 향후 대형 악재가 발생하지 않는 한 위기가 재발할 우려가 없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대비되는 시각도 있다. 10년 전 외환위기 직후 한국경제는 여론에 밀려 구조조정을 늦춘 결과로 1년 지난 시점인 1998년에 대우그룹이 파산하면서 이로 인해 ‘더블 딥’(Double-dip·경기가 일시 상승, 다시 하강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도 아직 극복하지 못했으며 다시 한번 침체를 거칠 것이라는 의견도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 은행권의 단기 외채 잔액이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자가 싼 단기성 외채를 늘리는 예전의 형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북한 변수가 여전한 상황에서 동유럽의 금융 불안 등 국제 금융시장에 악재들이 잠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국내 경제에 기저 효과(Base Effect·비교 대상이 되는 기간의 부진이나 호조 때문에 경제지표가 크게 부풀려지거나 위축되는 현상)로 인한 착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지표 회복세가 완연한 데다 주가 호전, 부동산 가격 상승,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일부 우량 기업의 실적 개선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현 경제 상황을 실제보다 훨씬 더 좋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전문가들은 외국인이 최근 한국시장에 투입한 자금이 장기적인 투자 성격으로 단기간 내에 주식을 내다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은 매우 빠른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우량한 글로벌 기업 또한 많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적 관점에서 볼 경우 현재 시점에서 서서히 주식에 대한 투자 규모를 늘려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특히 미국 및 유럽 경제가 바닥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각국 정부가 경기 회복을 위해 풀었던 자금들이 여전히 시중에 머물고 있어 당분간 유동성 힘에 의한 주가 강세는 좀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욱이 하반기에 접어들수록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현금보다는 금융자산에 대한 가치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류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