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이건희 전 회장, (왼쪽부터)이학수 전 부회장, 윤종용 전 부회장, 최도석 사장 | ||
역시 삼성답다고 해야 하나. 올해 1분기 삼성전자 사내이사 1인당 평균 급여가 72억 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단순계산상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사내이사 한 명에게 24억 원씩의 월급이 지급됐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삼성 측은 “일부 고액 연봉 이사들의 퇴직금이 반영돼 평균 급여가 높아졌다”는 입장이지만 현대차 SK LG 등 다른 4대그룹 임원들의 급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한 수치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국내 최고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전자가 공시한 사내이사 급여 내역 속에 담긴 의미를 풀어본다.
지난 5월 15일 공시된 삼성전자 분기보고서(2009년 1분기)의 ‘임원 보수현황’에 실린 사내이사 1인당 평균 지급액은 72억 원. 올해 1분기에 지급된 급여인 만큼 평균 월급으로 환산해보면 24억 원이 되며 평균 연봉으로 환산하면 288억 원이 된다.
‘돈 많이 주는 회사’로 알려진 4대 재벌 핵심 계열사들이 같은 분기에 공개한 보수 내역만 봐도 삼성전자의 이사 급여가 얼마나 높은지를 체감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업계 라이벌로 통하는 LG전자는 같은 분기에 지급된 사내이사 1인당 평균 급여액을 8억 8300만 원으로 공시했다. 월급으로 보면 2억 9400만 원, 연봉으로 환산하면 35억 3200만 원이 된다. 삼성전자가 LG전자 보다 8배나 높은 급여를 사내이사들에게 지급한 셈이다.
현대자동차에서 1분기에 지급한 사내이사 1인당 평균 급여는 3억 2800만 원. SK그룹 지주사인 SK㈜는 6300만 원, SK텔레콤은 2억 100만 원을 각각 지급했다. LG그룹 지주사 ㈜LG의 1분기 사내이사 1인 평균 급여는 23억 원이었다.
삼성전자는 1분기 동안 사내이사들에게 총 286억 원의 보수를 지급했다고 공시했다. 그런데 지난 2월 18일 삼성전자 공시내역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해 사내·외 이사 전체에게 지급한 보수 총액이 285억 원이다. 지난 3개월 간 사내이사들만을 대상으로 지급된 급여가 지난해 전체 이사진의 급여보다 높은 셈이다.
1분기 사내이사 총 급여액 286억 원을 평균급여 72억 원으로 나누면 4가 된다. 현재 삼성전자 사내이사는 총 4명. 이윤우 대표이사 부회장을 비롯해 완제품(DMC) 부문장인 최지성 사장, 윤주화 감사팀장(사장), 그리고 이상훈 사업지원팀장(사장)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이들 4명이 지난 3개월간 286억 원을 나눠가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줄곧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던 이윤우 부회장을 제외한 최지성 윤주화 이상훈 등 사장단이 삼성전자 사내이사로 선임된 것은 지난 3월 13일이다. 이들이 공시에 나온 ‘1분기 급여 72억 원’의 수혜자일 가능성은 낮은 셈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퇴직한 사내이사들의 퇴직 급여가 올해 주주총회 승인을 받고 지급 결정되면서 1분기 사내이사 급여 총액이 높이 책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초 삼성전자 사내이사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이학수 전 부회장, 윤종용 전 부회장, 이윤우 부회장, 최도석 삼성카드 사장 등 5명이었다. 이들 중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는 인사는 이윤우 부회장뿐이다. 이건희 전 회장과 이학수 전 부회장은 지난해 4·22 삼성쇄신안 발표를 통해 퇴진을 선언했다. 다음 달 윤종용 전 부회장도 사장단 인사를 통해 “지금이 후진을 위해 물러날 적기”라며 퇴임 의사를 밝혔다. 경영지원총괄 사장이었던 최도석 사장은 올 초 인사를 통해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전자 법인등기부상 이건희 전 회장과 이학수 전 부회장은 지난해 4월 28일, 윤종용 전 부회장은 5월 14일자로 각각 사임 처리됐다. 최도석 사장은 올해 3월 16일자로 삼성전자 사내이사진에서 퇴임 처리됐다.
지난해 퇴직한 사내이사들의 급여를 올 초에 지급한 까닭은 무엇일까. 삼성그룹 관계자는 “사내이사 급여는 연초 주주총회(주총)에서 결정하는데 지난해 초 주총 땐 그분들 퇴직을 예상하지 못해 지난해 보수한도에 그분들 퇴직금을 포함시키지 못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18일 공시를 통해 올해 이사 보수 최고 한도액을 지난해 350억 원에서 200억 원 오른 550억 원으로 책정했다고 알렸다(지난해 실제 집행된 이사 보수 총액은 285억 원이었던 만큼 올해도 550억 원을 모두 소진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지난해 퇴직한 사내이사들의 퇴직금 등이 200억 원 인상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건희 전 회장의 경우는 차치하더라도 이학수 전 부회장이나 윤종용 전 부회장은 수십억 원대 연봉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퇴직금은 퇴임 직전 3개월치 급여를 3으로 나눈 다음 여기에 근무 연수를 곱해 나오는 금액으로 정해진다. 1971년 입사한 이학수 전 부회장과 1966년 입사한 윤종용 전 부회장이 적어도 수억 원의 월급을 받았을 것임을 감안하면 1분기 사내이사 급여 총액이 수백억 원이 돼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는 셈이다.
한편 1분기 사내이사 금여 총액 286억 원 중 퇴직임원들 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누가 얼마를 정확히 수령했는지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임원 보수를 개인별로 공시할 의무가 없는 까닭에서다.
지난 3월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금융회사 임원들의 개별보수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각계의 반대여론에 부딪친 상태다. 지난 4월 27일 상장회사협의회는 국회 정무위원회에 ‘직장 내 위화감 조성, 개인 정보 유출 우려 등의 문제로 상장사 93%가 개별임원 보수 공시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한편 삼성전자 관계자는 “임원 보수 내역이 공시를 통해 공개될 때마다 재계와 언론에서 화제가 되곤 했다”면서 “삼성전자 임원들이 그만큼의 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 밝혔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