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이 토공 주공 통합공사 사장 자리에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이라크에서 활동했던 모습. | ||
7월 1일부터 9일까지 실시한 통합공사 사장 공모는 자산 105조 원에 달하는 ‘공룡 공기업’의 수장을 뽑는 것인 만큼 그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공모 신청자만 21명에 달했고 그 면면도 대학교수, 전직 국회의원, 건설사 CEO 등 다양하고 화려했다. 통합공사설립사무국의 한 관계자는 “내정설이 파다하게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거물급 인사들이 지원한 것에 우리도 놀랐다”면서 “통합공사 사장이 막강한 파워를 가진 자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통합공사임원추천위원회는 이들을 대상으로 서류심사 등을 거쳐 지난 7월 17일 5명을 압축, 선발했다. 여기엔 최종 후보자 3명을 비롯해 최재덕 대한주택공사 사장과 조우현 전 건설교통부 차관이 포함됐다. 서류심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며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이종상 한국토지공사 사장은 “과열경쟁을 우려한다”며 후보직을 자진 사퇴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종상 사장이 향후 국토해양부 장관 혹은 다른 공기업 사장을 보장받고 중도에 그만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 사장 임명에 큰 기대를 걸었던 토지공사노동조합(위원장 고봉환)의 한 관계자는 “가장 유력했던 이 사장이 갑자기 과열경쟁 운운하며 그만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가 미리 사장직을 정해 놓고 이 사장에게 다른 자리를 약속한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어쨌든 이종상 사장의 후보 사퇴로 통합공사 사장직은 최재덕 사장과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의 2파전으로 좁혀지는 듯했다. 특히 최 사장이 통합공사 출범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좀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후문도 돌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최 사장은 최종 후보에서 탈락했다. 이는 정부가 ‘관료 출신 배제’ 원칙을 세웠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사장은 건설교통부 차관을 지낸 바 있다.
이 때문에 주택공사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주택공사노동조합(위원장 정종화)의 한 관계자는 “공모 신청서를 받을 때는 아무런 말이 없다가 왜 이제 와서 그런 원칙을 내세우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종상 사장에 이어 최재덕 사장까지 떨어진 것을 보면 누군가가 정해져 있기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 공사 사장이 탈락하면서 내정설은 확산됐지만 오히려 일각에서는 ‘차라리 잘 된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국토해양부의 한 관계자는 “누가 되든 어느 한 쪽으로부터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최재덕 사장 탈락을 두고 토지공사 내부에서 “어차피 자사 출신 사장이 되지 않을 바에야 제3자가 되는 것이 낫다”는 말까지 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차라리 양측과 무관한 인물이 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 후보자 3인이 결선에 올랐지만 치열했던 예선전에 비하면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다. 공모 시작 이후 이종상·최재덕 사장과 3강 구도를 이뤘던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의 압승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자들이 중도 탈락하면서 ‘이지송 대세론’에는 점점 무게가 더해졌고 이제는 큰 이변이 없는 한 향후 통합공사 사장 자리가 유력시되고 있다.
1940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이지송 전 사장은 경동고와 한양대학교를 나온 후 1976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당시 현대건설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이 전 사장은 현대건설 전무, 경인운하 사장 등을 거치며 2003년 현대건설 사장 자리에 올랐고 2006년 회사에서 물러난 후엔 경복대학교 학장을 맡아왔다.
그는 현대건설 근무 시절부터 이 대통령의 신임이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청계천 복원공사를 진두지휘하며 최측근으로 인식돼왔다. 특히 경인운하 사장을 지냈던 이 전 사장이 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 전 사장은 그동안 국토해양부 장관과 몇몇 공기업 사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도 번번이 최종 단계에서 낙점 받지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아직 변수는 남아 있다. 바로 낙하산 인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 특히 통합공사 사장 자리에 국민들의 이목이 쏠려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동안 ‘고소영 S라인’ 등 편중 인사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이 대통령으로서도 부담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의외의 ‘깜짝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노태욱 LIG건설 부회장과 박종남 전 GS건설 전무의 통합공사 입성이 조심스레 점쳐지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정가 일각에선 청와대가 이번 공모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통합공사 출범이 불과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인지라 가능성은 다소 낮아 보이지만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본사이전 구조조정 등 통합공사의 산적한 과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힘 있는 정치인이 사장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통합공사 사장 자리는 향후 있을 개각 때 이 대통령이 히든카드로 쓸 수 있다”며 재공모설에 불을 지폈다. 이와 관련, 이재오 전 의원,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 친박 계열의 최경환 의원 등이 사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또한 후보로 오른 3명이 모두 건설사 전·현직 임원이라는 점도 청와대의 최종 선택을 머뭇거리게 하는 이유일 수도 있을 듯하다. 앞서의 청와대 관계자는 “통합공사는 아무래도 건설사들과 이해관계가 얽힐 수밖에 없는데 해당 업체 출신이 사장으로 재직할 경우 구설이 불거질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를 미리 차단하는 방법은 비 건설사 인사를 임명하는 길밖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번 사장 공모에서도 몇몇 건설사들이 자사 출신 인사가 선정될 수 있도록 뜨거운 로비전을 펼쳤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오가고 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