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회장은 지난해 말 KT의 새 CEO 후보로 거론될 때부터 많은 논란을 몰고 다녔다. KT 출신도 아닌 데다 전직 정부각료인 탓에 ‘낙하산’ 소릴 들어야 했으며 “현 정부 실세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정치적 뒷배”라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회장 취임 이후로 현 정부와 돈독한 관계에 놓인 인사들이 대거 KT에 영입된 점 또한 많은 뒷말을 낳았다. 반면 “힘 있는 사람이 와야 외풍을 막아줄 수 있다”며 현 정부 세력과 우호적인 이 회장에 큰 기대를 거는 KT 내부 시선도 적지 않았다.
취임 7개월이 지났지만 이 회장에 대한 KT 안팎의 평가는 여전히 우호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는 않다. 우선 KT-KTF 합병 시너지 효과에 대한 논란이 있다. 이석채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KTF와의 합병 작업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수년간 탁상공론에 그쳐온 작업을 불과 취임 5개월 만인 지난 6월 완료, 합병법인을 출범시킨 것이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합병이 가져다주는 부작용에 대한 말들이 많아지고 있다.
인력 구조조정 없는 합병으로 통합 KT는 직원 3만 8000명의 ‘공룡’이 됐다. 이석채 회장도 합병 이전부터 “(합병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왔다. 대개의 기업 합병 작업에서 얻어지는 ‘인력 감축과 부서 통폐합에 따른 효율성 제고’ 같은 이점을 KT-KTF 합병과정에선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었던 셈이다. 재계 일각에선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재계에 종용해온 터라 정부의 영향력하에 있는 이 회장이 강도 높게 인력 감축을 단행하긴 어려웠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인력 구조조정 대신 이석채 회장이 뽑아든 카드는 대대적인 사정이었다. 이석채 회장 취임 직후 영입된 서울고검 검사 출신 정성복 윤리위원장(사장)을 앞세워 수도권 서부본부 등의 감사를 통해 직원 30여 명의 비리 혐의를 적발, 그중 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리고 이는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불러왔다.
지난 7월 검찰은 하도급 비리 등의 혐의로 KT 전·현직 임직원 147명과 협력업체 대표 등 총 178명을 적발, 이중 7명을 구속 기소하고 4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나머지 인사들에 대해 검찰은 KT에 자체징계하도록 통보한 상태. 이후로도 KT 내부에선 감사가 지속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비리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결국 비리 척결 명분을 통해 이석채 회장이 기강을 세우고 장악력을 높일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이석채 회장의 ‘칼질’이 KT 조직 내 이 회장에 대한 반대여론을 불 지피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도 들려온다. 일부 인사들이 이 회장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정치권 줄을 잡으러 뛰어다닌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낙하산’ 꼬리표 떼기나 흉흉해진 내부 민심 수습을 위해서라도 이 회장이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보여줘야 할 때지만 주변 환경이 녹록지가 않다. KTF와의 합병 이후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등 라이벌과의 유·무선 통합 상품 출혈경쟁이 과열돼 ‘합병 시너지’를 논할 만한 수익 창출이 쉽지 않다.
▲ 이석채 회장이 지난달 송파구 석촌동 ‘쿡쇼매장’ 1호점을 둘러보며 직원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이 회장에 대한 논란 역시 KT 내부를 술렁이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 회장은 얼마 전 야당 추천위원의 방통위 부위원장직 수행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가 민주당으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았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국정감사에 이 회장을 출석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이야기가 퍼져 있는 상태다.
KT 내부를 더욱 뒤숭숭하게 만드는 것은 최근 들어 나돌기 시작한 이석채 회장의 입각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이 지난 후 청와대의 국정 쇄신용 개각 전망이 나도는 가운데 이 회장의 경제부처 입각 가능성이 정치권에서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이 회장에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는 야당이 그의 입각 가능성까지 고려해 이번 국감을 잔뜩 벼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KT 내부에선 “이 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 입각설을 진화하지 않으니 의구심만 자꾸 커진다”는 불만이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견해도 있다. 방통위 등 정부 부처와 KT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현 정부가 인재풀이 약하다보니 과거 경제기획원에서 거시경제 다루는 법을 터득한 이석채 회장 같은 인물이 자연스레 입각 후보로 오르내리는 것일 뿐”이라며 “(이 회장) 본인이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현재 상황에선 아직 혼란기인 KT를 안정시키고 사업적 성과를 내는 것이 이 회장에게 우선적 과제일 것이란 진단이다. ‘이 회장이 차기 방통위원장을 염두에 둔다’는 풍문이 일각에 나돌기도 하지만 최시중 위원장이 이석채 회장의 KT행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점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높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7월 IPTV 업계 정책 간담회에서 최시중 위원장은 “올 하반기는 IPTV가 새로운 매체로 정착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 밝혔다. ‘미디어법’ 국회 통과로 인해 연말에 신설될 종합편성채널에 KT 역시 큰손으로 참여할 태세다. KTF와의 합병 시너지 효과를 당장은 못 내고 있지만 IPTV나 새로 만들어지는 방송채널들을 둘러싼 돈 보따리 전쟁에서 이 회장이 KT의 새로운 비전을 어떻게 제시할 수 있느냐에 따라 이 회장의 입지와 거취를 둘러싼 논란의 향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