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
이날 조석래 전경련 회장(효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회장단은 국내경기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주된 논제로 삼았지만 회의 직후 기자들의 질문 초점은 대우건설 하이닉스 대우인터내셔널 같은 대형 매물 인수 여부에 쏠렸다. 때마침 잠재적 인수후보로 거론된 재벌 총수들이 모였던 터라 이날 대형매물들에 대한 ‘회장님’들의 말 하나하나는 재계 관계자들이 몇 번이고 곱씹을 수 있는 소재가 되고 있다.
찬바람이 불면서 더 뜨거워지는 대형 M&A(인수·합병) 이슈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화,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설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이 재계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캠코)가 35.5%, 은행권이 2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대우인터내셔널의 본격적인 매각 일정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나 돼야 나올 전망.
그런데 이 회사의 새 주인 찾기 작업이 벌써부터 관심을 끄는 것은 잠재적 인수 후보로 한화그룹이 거론되는 까닭에서다.
한화그룹은 대우인터내셔널에 앞서 대우건설 하이닉스 등 대형매물들의 앞날이 거론될 때마다 유력한 잠재적 인수 후보로 거론돼 왔다.
그럴 때마다 한화 측은 어김없이 “올해는 M&A가 아닌 내실에 만전을 기할 시점”이란 입장을 내놓았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자금 문제 등으로 인해 무산된 후유증을 씻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난 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 직후 기자들과의 문답 중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답변에서 대형 M&A에 대한 관심이 묻어나 눈길을 끌었다. 초미의 관심사인 대우건설 인수 여부를 묻는 질문에 김 회장은 “관심 없다”고 일축했다. 그런데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와 관련해선 “아직 매물로 나오지도 않았다”며 대우건설 인수 건의 단호함과는 다소 다른 뉘앙스를 풍겼다.
재계에선 대우인터내셔널이 한화에게 꽤나 매력적인 매물일 것으로 보고 있다. 방위산업 물자 수출과 해외 자원개발 등으로 각국 정부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쌓아온 대우인터내셔널은 최근 들어 국내 방위산업 사상 전례 없는 잠수함 수출을 추진 중이다. ‘
다이너마이트 김’으로 불렸던 김 회장 선친 김종회 창업주 때부터 화약 산업으로 해외 여러 나라에 두터운 인프라를 구축해온 한화와의 시너지가 예상된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비용의 절반 정도(2조~3조 원)일 것으로 예상되는 인수 비용 역시 구미를 당길 법하다.
이에 대해 한화 측은 “내년이라면 모를까, 올해 대형 M&A는 없다”고 밝힌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내년 이후 인수 가능한 매물들에 대한 고려는 하고 있지만 대우인터내셔널에 대해 구체적 검토에 들어간 적은 결코 없다”고 설명했다.
한화 측의 극구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화와 대우인터내셔널을 연결하려는 재계의 시선엔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가 깔려 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지분율 33.62%로 최대주주이며 신 회장 우호지분이 50%를 넘는 까닭에 대우인터내셔널 매각이 교보생명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대우인터내셔널 최대주주인 캠코가 교보생명 지분 9.93%를 갖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만약 대우인터내셔널과 동시에 캠코 보유 교보생명 지분까지 특정 자본이 흡수, 신 회장 지분율을 턱밑까지 추격한다면 교보생명 경영에 꽤나 큰 입김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최근 증시 회복 조짐에 맞물려 그동안 물밑에 가라앉아 있던 생명보험사 상장 움직임이 활발해진 점도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의 주된 관전 포인트다. 교보생명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전까지 ‘생보사 상장 1호’가 될 것이란 기대를 받았던 곳이다. 여기에 한화 측이 계획해온 대한생명 상장까지 이뤄질 경우 어마어마한 시너지가 예상된다. 대한생명 상장이 곧 이뤄질 태세라 여기서 발생할 거액 차익이 M&A용 실탄이 될 가능성 또한 재계에서 줄곧 거론돼 왔다.
재계의 이 같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한화의 입장은 단호하다. “교보생명 지분 때문에 대우인터내셔널을 노린다는 것은 큰일 날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런 관측이 퍼질수록 대형매물 인수전에서 한화가 이익보다는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데 왜 그런 일을 벌이겠느냐는 반응이다.
한화는 이미 대한생명 인수 과정에서의 이중계약 의혹과 관련, 대한생명 매각주체였던 예금보험공사(예보)와 소송을 거쳐 국제중재까지 치르는 곡절을 겪었다.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기업 입장에선 정부기관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한때 한화의 인수 검토 대상이긴 했으나 한화는 이를 접고 결국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든 바 있다. 한화 측은 “인수 검토 전력 때문에 말이 나오는 것 같은데 대우인터내셔널은 내년 이후 M&A를 고려할 수 있는 대상 중 하나일 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 정준양 포스코 회장 | ||
포스코, 옛 대우 계열사 M&A설
본격적인 막이 오르기도 전에 후끈 달아오르고 있는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에서 한화그룹 다음으로 잠재적 인수후보로 거론되는 기업이 바로 ‘철강공룡’ 포스코다.
지난 10일 전경련 회장 회의 직후 기자들의 M&A 관련 질문공세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옛 대우 관련 기업은 검토해본 바 없다”고 못을 박았다. 항간에 제기돼 온 대우건설 인수설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었다.
그럼에도 재계에서 포스코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 참여 가능성을 살피는 것은 대우인터내셔널이 세계 각국에서 광물자원 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미얀마 가스전이나 마다가스카르 니켈광산 등 대우인터내셔널이 발굴 작업을 벌이는 곳 대부분이 세계적으로 매장량을 공인받은 지역들이다. 재계 관계자들이 보기엔 원자재 조달이 중요한 포스코가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여기에 포스코가 지분 89.53%를 지닌 포스코건설 상장 추진도 관심을 끈다. 최근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한 포스코건설 주가는 장외시장에서 11만 원대를 상회하고 있다. 이 가격에만 상장된다고 쳐도 포스코가 지닌 포스코건설 주식 시가총액은 3조 원에 육박하게 된다.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지분을 남기더라도 일부 주식 처분을 통해 적어도 1조 원은 챙길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일각에선 대형 M&A 참여설을 줄곧 부인해온 포스코의 시선이 궁극적으로 향할 곳을 대우조선해양일 것이라 보기도 한다. ‘오너 없는’ 기업인 포스코에 대한 외풍 논란이 가시지 않는 데다 대형매물의 국외유출 을 정치권에서 우려하는 터라 포스코가 대형매물 인수 총대를 멜 것이란 기대감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옛 대우 계열사들 중 포스코가 가장 탐냈던 대우조선해양을 다시 들여다볼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인수 목전까지 갔다가 GS와의 인수 컨소시엄 결렬로 고배를 마신 아쉬움을 갖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준비했던 노하우와 인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까닭에 이 같은 관측이 고개를 드는 셈이다.
옛 대우 계열 인수설에 대해 포스코는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포스코 측은 “대우건설은 워낙 큰 매물이라 눈길이라도 한번 줄 수 있지만 대우인터내셔널은 정말 아니다”라며 “상사 업무를 하는 계열사 포스틸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시너지는 내부에서 거론조차 안 된다”고 밝힌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도 “아직 매물로 나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한다.
하지만 정부와 시장의 기대가 워낙 높은 터라 “옛 대우 계열에 관심 없다”는 정준양 회장의 말이 대형매물 인수설을 가라앉히는데 큰 약발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 쌍용차 평택 본사 | ||
효성, 쌍용자동차 인수 검토설
한편 전경련 회장사인 효성그룹의 대형 M&A 참여 가능성도 재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조석래 회장은 지난 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 직후 대형매물 M&A 계획을 묻는 기자들에게 “돈 될 만한 게 있다면 할 것”이라고 밝혔다. 좋은 매물이 있다면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인 셈.
그런데 이날 조 회장은 효성이 잠재적 인수 후보로 거론된 하이닉스나 대우건설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리가 인수할 기업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또 다른’ 매물인 쌍용자동차 인수 가능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때마침 증권가에선 한동안 ‘효성그룹이 쌍용차에 눈독을 들인다’는 미확인 풍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효성 측은 “(조 회장 발언은) 수익성 나는 매물에 대해선 언제든 검토할 수 있다는 원론적 이야기일 뿐”이라고 밝혔다. 효성그룹 관계자는 “효성과 이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오토바이 사업까지 들먹이면서 쌍용차하고 엮어보려는 낭설도 증권가에 나돌고 있다는데 모두 근거 없는 내용”이라고 역설했다.
조 회장 막내동생 조욱래 회장이 운영하던 효성기계가 오토바이 생산을 했었지만 일찌감치 계열분리됐고, 지난 2007년 효성기계는 S&T그룹에 인수되면서 효성가의 품을 떠났다. 효성 측은 “지금 쌍용차가 인수 검토 대상 아니라고 해놓고 나중에 딴 소리 하면 (효성이) 시장의 신뢰를 잃을 텐데 굳이 그런 짓을 왜 하겠느냐”고 반문하며 쌍용차 인수설은 절대 사실무근임을 강조했다.
사실 쌍용차 인수 후보로 가장 큰 기대를 모은 것은 삼성그룹이었다. 올 초 쌍용차 위기가 닥치자 정부와 쌍용차 공장이 있는 경기도 등에선 삼성의 쌍용차 인수 희망을 직·간접적으로 피력해왔다. 국내 재계서열 1위 삼성의 현금 동원능력과 더불어 삼성이 외환위기 당시 접은 자동차사업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을 가능성을 두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삼성 측은 극구 손사래를 쳐왔다. 당시 재계엔 “삼성이 충분한 검토 끝에 쌍용차 인수가 득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었다.
효성 측은 “대형 매물과 관련, 현재 내부에서 검토되는 사안은 전혀 없다”면서 “진원지도 알 수 없고 근거도 없는 루머 때문에 (효성에 대한) 투자자들이 오해할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증권가에서도 “쌍용차 인수 후보가 선뜻 나서지 않다보니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효성이 나설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려진 것”이란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