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뉴시스
만일 당신이라면 노상에서 이런 강도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 ‘그깟 아이폰 하나쯤이야 뺏기면 어때, 다시 사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순순히 내줄 것인가, 아니면 ‘내 소중한 정보가 들어 있는데 절대 안 돼’라며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인가. 단, 후자를 택할 경우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선택이 목숨을 잃을 만큼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이렇게 저항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건이 이미 여러 차례 발생한 바 있다. 유독 아이폰만 노리는 이런 노상강도가 미국의 대도시에서 급증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관련 범죄 발생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미국 경찰은 아이폰만 훔치는 특정 범죄자를 가리켜 ‘애플 픽커’ 즉 ‘사과 수확꾼’이라고 따로 부르기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니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등 일부 대도시에서는 “절대로 공공장소에서는 아이폰을 손에 들고 다니지 말라”는 경고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재미교포 양황범 씨(26)가 ‘아이폰 날치기’에게 당한 것은 지난해 4월 19일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뉴욕 맨해튼의 ‘더 모던’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던 양 씨는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던 중 아이폰을 노린 무장강도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사건은 집에서 불과 두 블록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이어폰을 꽂고 집으로 가던 양 씨를 두 명의 남성이 가로막고는 다짜고짜 “아이폰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던 것. 양 씨가 거부하자 강도는 양 씨의 가슴에 총을 쏘고 도망쳤다. 이들은 지갑도, 돈도 건드리지 않았다. 오로지 아이폰만 갖고 달아났다.
양 씨의 아이폰은 얼마 후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인 ‘크레이그스리스트’에 400달러(약 45만 원)에 올라왔고 절도범은 경찰에 체포됐다. 양 씨의 부모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들이 그때 아이폰만 갖고 있지 않았다면…”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고 말한다.
가장 최근에는 CNN의 캐럴 코스텔로 앵커(52)가 ‘아이폰 날치기’를 당했다. 그것도 벌건 대낮인 오후 4시 30분경에 벌어진 일이어서 더욱 황당할 따름이었다. 지난 5월 초, 코스텔로는 애틀랜타 시내 한복판에서 통화를 하면서 걸어가던 중 10대 강도 세 명으로부터 습격을 당했다. 코스텔로는 “갑자기 뒤에서 세 명의 소년이 나를 덮쳤다. 한 명이 내 아이폰을 움켜 잡았다”고 말했다. 뺏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코스텔로는 하지만 곧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힘에서 소년들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머리채를 잡혀서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지기까지 했다.
사건 발생 후 그녀는 페이스북에 “길거리에서는 절대로 아이폰으로 통화하지 말아라. 만일 누군가 훔치려고 덤벼들면 그냥 내주라”고 충고했다. 그만큼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는 것이다.
코스텔로의 충고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대도시의 경찰들은 충분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애플 날치기’를 당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시민들의 질문에 경찰들은 “그냥 아이폰을 포기하라”고 말한다. ‘포기’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만일 저항할 경우 화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장소에서는 가급적 스마트폰을 꺼내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경찰도 있다.
왼쪽부터 아이폰 날치기범 피해자 캐롤 코스텔로, 메건 보컨, 알렉스 해럴드. 이 중 메건 보컨은 무참히 목숨을 잃었다.
‘연방통신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주요 도시의 절도사건 가운데 30~40%가 스마트폰과 관련된 것이다. 워싱턴의 경우 38%, 뉴욕의 경우에는 40%가 그렇다. 특히 ‘애플 날치기’들이 극성을 부리는 시기가 애플의 신제품이 출시된 직후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뉴욕에서는 2011년 1월부터 10월까지 2만 6000여 건의 전자제품 절도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81%가 스마트폰 관련 절도였다. 워싱턴의 경우에는 지난해에만 1829대의 스마트폰이 도난을 당했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는 2012년 11월부터 6개월간 아이폰과 아이패드 절도 사건이 총 579건 발생했다. 이는 전체 노상 범죄사건 가운데 41%에 해당하는 수치며, 하루 평균 세 명 이상이 ‘아이폰 날치기’를 당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일어난 ‘아이폰 날치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우선 장소가 그렇다. 대개 범행이 발생하는 장소는 사람의 왕래가 많은 길거리나 지하철 혹은 버스 안이다. 사람이 북적이는 술집이나 커피숍, 패스트푸드 레스토랑도 단골 범행 장소다. 캐시 레이니어 워싱턴 D.C. 경찰서장은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재빨리 몸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하철이나 버스 이용자들 가운데 주된 표적은 문가에 서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문이 닫히기 직전 절도범들이 잽싸게 기계를 낚아챈 다음 내려 버리면 미처 따라 내리지 못한 피해자들은 허망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니스트인 롤프 윙클러가 바로 이런 식으로 당한 경우였다. 지하철 안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아이패드로 e북을 읽고 있다가 그만 눈 깜짝할 새에 날치기를 당했던 것. 지하철 문이 열리는 순간 누군가 무릎 위에 있던 아이패드를 낚아챘고, 본능적으로 뒤를 쫓아 내렸던 윙클러는 여러 명의 강도들에 둘러싸여 폭행만 당한 채 결국 아이패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턱뼈가 부러진 윙클러의 경우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뉴욕에 거주하는 알렉스 해럴드(20)의 경우에는 아이폰 하나 때문에 평생 불구로 살게 될 지경에 놓였다. 지난해 4월, 새벽 4시경 친구와 함께 귀가하고 있던 해럴드는 텅 빈 지하철 안에서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이상한 기분에 눈을 떴던 그는 순간 바지 주머니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주머니 안에 있던 아이폰이 사라진 것도 알게 됐다. 지하철 안을 둘러보자 한 남자가 한 손에는 칼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아이폰을 들고 서있는 것이 보였다.
지하철 출입문 쪽에 서서 아이폰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애플 픽커’의 주된 표적이다.
‘아이폰 날치기’ 범죄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꼭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만 골라 범행을 저지른다는 점이다. 대개 강도들이 주목하는 대상은 전화통화를 하면서 걷거나, 생각에 잠겨 스마트폰을 쳐다보면서 걷거나, 문자를 쓰면서 걷거나, 혹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스마트폰이 이미 작동 중에 있었기 때문에 굳이 비밀번호를 따로 알아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스마트폰 절도가 늘어나자 경찰이나 미 정부는 스마트폰 제조업체와 통신회사들에게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하라며 압력을 가하고 있다. 절도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훔친 스마트폰이 무용지물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의 이통사들은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휴대전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방법도 그 가운데 하나다. 각 스마트폰마다 고유번호인 ‘IMEI’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는 자동차에 번호판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다. 만일 스마트폰 분실 신고가 접수되면 고유번호가 데이터베이스 센터로 전송되고, 다른 사용자가 해당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거나 데이터를 다운 받으려고 할 경우, 이통사의 블랙리스트에 뜨면서 서비스 사용이 금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허점은 있다. 와이파이를 사용할 경우에는 이통사의 그물망에 걸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단순히 전화기가 아닌 컴퓨터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훔친 사람들은 와이파이만 연결된다면 얼마든지 음악을 다운받거나 게임을 하거나, 혹은 웹서핑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아무리 미국의 이통사들이 사용 제한을 건다고 해도 해외로, 가령 아프리카, 인도 등으로 팔려 나갈 경우에는 속수무책이 된다.
‘애플’ 측이 제시한 대안은 ‘내 아이폰 찾기’ 앱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도난당한 아이폰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는 이 앱은 원격으로 스마트폰의 정보를 삭제하거나 비밀번호를 원격 잠금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완전하지는 않다. 가령 절도범이 스마트폰 전원을 꺼버릴 경우에는 무용지물이 된다. 또한 앱을 삭제해버리면 그만이다.
계속되는 비난에 최근 열린 세계개발자콘퍼런스(WWDC)에서 ‘애플’은 한 가지 새로운 기능을 더 선보였다. ‘기동 잠금’ 기능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도난 당한 아이폰을 다시 작동하거나 비밀번호를 재설정할 경우 원 소유자의 애플 ID를 입력하도록 하는 기능이다. 차세대 아이폰에서 지문 인식 기술 도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처럼 아이폰이 절도범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훔쳐도 별로 남는 게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애플’이 ‘사과 사냥꾼’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과연 어떤 묘책을 내놓을지, 얼마만큼의 책임감을 보여줄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유심만 바꾸면… 현금화 ‘누워 떡먹기’
왜 하필 아이폰일까? 이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은 우선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이폰이 인기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재 아이폰은 유심 카드만 갈아 끼우면 손쉽게 중고시장에 내다팔 수 있으며, 이렇게 중고시장에 나온 아이폰은 최저 400달러(약 45만 원)에서 최고 1000달러(약 113만 원)에 거래된다.
특히 아이폰 장물은 브라질, 아프리카, 홍콩 등에서 인기가 높다. 경찰에 따르면 현재 훔친 아이폰5는 리우데자네이루, 나이로비, 홍콩 등에서 800달러(약 91만 원)에 팔리고 있다. 아이폰 4S의 경우 브라질 애플 스토어에서 정식으로 구입할 경우 1000달러 가까이 지불해야 하지만, 중고시장에서 구입할 경우에는 400달러면 된다. 사정이 이러니 수요가 많고, 수요가 많으니 공급이 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또한 ‘아이폰 세탁’이 용이하다는 점도 아이폰이 절도범들의 표적이 되는 이유다. 이는 애플 측의 보증 정책을 악용한 것이다. 애플 규정에 따르면 제품 보증은 기기에 대한 것이지, 사용자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훔친 아이폰을 들고 애플 스토어에 가서 “기기가 고장이 났으니 리퍼폰으로 교환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실제 영국에서는 훔친 아이폰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고장낸 다음 리퍼폰으로 교환해가는 범죄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