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업계의 금융업 진출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10월에 출범한다던 새 하나카드는 아직도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SK텔레콤과 하나금융지주가 경영권을 놓고 ‘지분 2%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금융업 진출과 관련해 “단순히 플라스틱 카드에 들어 있던 기능을 휴대전화로 옮기는 수준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의 서비스가 창출되는 결합을 생각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통신공룡’이 하나카드 ‘날개’를 달기가 녹록지 않아 보인다. 10월로 예정됐던 하나카드 출범을 앞두고 하나금융이 아직까지 SK텔레콤과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금융과 SK텔레콤이 경영권을 위한 지분 51% 확보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은 매각 가능 지분을 49%로 못을 박고 있다. 경영권은 물론 임원 선임권 등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SK텔레콤도 경영권 행사가 가능한 51% 이상의 지분을 희망하고 있다.
SK텔레콤이 내세우는 ‘통신이 주도하는 금융과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위해서는 지분 참여가 아닌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의 한 관계자는 “하나카드를 100% 출자 자회사로 출범시킨 이후 SK텔레콤과 지분 투자 협상을 계속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나금융은 하나카드 분사에 따른 단순한 파트너를 구하고, SK텔레콤은 금융 부문에 첫 진출하는 만큼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원하는 ‘동상이몽’이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SK텔레콤은 하나카드 지분 인수에 뛰어들기 전부터 금융업 진출을 모색해 왔다. 2002년 전북은행과 카드사업부문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까지 체결했으나 ‘소버린 사태’로 무산됐다.
2007년에는 신한은행과도 합작운용회사 설립을 추진하다 역시 중단된 경험이 있다. 이는 SK텔레콤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이동통신 사업의 ‘신성장 동력’으로 금융사업을 계속 주시해왔음을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하나금융이 하나카드 지분 매각을 통해 M&A(인수·합병) 실탄을 마련할 수 있는 만큼 유연한 자세를 보일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이 경우 지분율보다는 지분 가격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SK그룹과 하나금융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최종 합의가 곧 이루어 질 것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SK와 주채권은행인 하나금융은 지난 2002년 SK-소버린 사태,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태를 함께 겪으며 사이가 돈독해 졌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지’인 만큼 하나카드 출범도 결국 합리적인 수준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학교 동문으로 친밀한 사이임을 내세워 SK텔레콤이 자신만의 고집을 계속 부리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SK텔레콤-하나금융의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신용카드업계. SK텔레콤이 카드업에 진출하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기존 카드사업자들을 위협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초반부터 가입자 및 OK캐시백 회원 등 3200만 명에 이르는 막강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 무차별적인 고객 모집 공세에 들어갈 수 있다. 게다가 카드사 못지않은 부대 서비스와 가맹점 및 영업망을 가지고 있다.
전국 2000여 개의 이동통신 대리점을 언제든 모집 창구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금융과 SK텔레콤의 데이터베이스 통합·활용을 위해 하나카드 초대사장으로 IT 전문가인 이강태 전 삼성테스코 부사장이 내정돼 있을 정도다. 이 내정자는 LG유통 정보서비스본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한편 지난 9월 28일 SK텔레콤이 보유 중인 중국 차이나유니콤 지분 전량인 3.8%를 차이나유니콤에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해 하나카드 지분 인수를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차이나유니콤 매각대금은 99억 9000만 홍콩달러(약 1조 5283억 원). SK텔레콤은 2006년 약 1조 20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매입한 뒤 2007년 8월 이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 약 3283억 원의 차익을 남기게 됐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관계자는 “유통 인터넷 금융 등 사업의 관심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며 “성장전략의 변화에 따라 지분 매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매각을 통해 얻은 자금이 하나카드 지분 인수 ‘실탄’이라는 관측을 부인하지 않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