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신원 SKC 회장이 해비타트 봉사활동을 했던 모습. | ||
SK 측은 줄곧 “‘따로 또 같이’ 경영전략에 따라 형제들이 책임경영을 펼치고 있을 뿐”이란 입장을 보여 왔지만 SK 계열분리설이 좀처럼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신원(SKC)-최태원 회장(SK그룹) 사이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까지 나돈다. 과연 이들 사촌형제는 계열분리와 관련해 각자 어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까.
<한겨레>는 지난 9월 24일 ‘최신원 회장이 최태원 회장에게 SK네트웍스와 워커힐의 경영권을 자신이 추가로 맡는 대신, 그룹의 주력인 SK에너지와 SK텔레콤 등 나머지 계열사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은 완전히 인정하겠다는 영역 조정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최신원 회장이 경영을 주관하고 있는 SKC와 그 자회사 SK텔레시스에, 최근 합병을 선언한 SK네트웍스·워커힐까지 맡겠다는 뜻이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줄곧 제기돼온 SK 사촌형제 간 계열분리설에 대한 최신원 회장 쪽 안이 윤곽을 드러낸 셈이다. 이에 대해 SKC 측은 “(최신원 회장이) 당장 분가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닐 것”이라 밝힌다.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계열분리 여건을 갖췄음에도 SK그룹 울타리 안에서 경영활동을 펼치는 것처럼, 최신원 회장 역시 ‘분가’가 아닌 책임경영의 폭을 넓히려 한다는 뜻이다.
SK그룹 관계자는 “회장님들끼리 어떤 말씀을 나누셨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면서도 <한겨레>보도 내용에 대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은 아니지 않나”고 밝혔다.
최신원 회장 선친인 최종건 SK 창업주의 애착이 강했던 워커힐과 이를 흡수합병할 SK네트웍스까지 최신원 회장 품에 안긴다면 기존의 SKC-SK텔레시스와 더불어 소그룹군 형성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지분구조를 볼 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율은 4%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최태원 회장의 SK㈜는 SKC 지분 42.5%를 확보하고 있다. SK네트웍스-워커힐의 경우 ‘최태원 회장→SK C&C→SK㈜→SK네트웍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 묶여 있다. 결국 최태원 회장이 ‘그냥 건네줘야’ 가능한 셈이다.
최태원 회장이 최신원 회장의 SK네트웍스-워커힐 경영권 행사에 대해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관심사다. SK네트웍스는 최태원 회장의 어마어마한 개인 돈이 들어간 회사다.
지난 2007년 4월 자신이 보유해온 1200억 원 상당의 워커힐 주식 40.7%(325만 5598주) 전량을 당시 워크아웃 중이었던 SK네트웍스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무상으로 출연한 것. 이런 회사의 경영권을 지분 하나 없는 최신원 회장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려 할지 의문이다.
계열분리설과 관련해 최근 SK네트웍스의 워커힐에 대한 흡수합병 선언 또한 관심을 끈다. SK네트웍스는 지난 9월 21일 지분 50.4%를 보유한 자회사 워커힐에 대한 흡수합병을 이사회에서 결의했다고 공시했다.
목적은 적자상태에 놓인 자회사 워커힐의 재무상태 개선. 최근 SK그룹은 지난해 증시악화로 중단했던 SK C&C 상장작업을 재개해 연내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 C&C 지분을 15%(750만 주) 보유한 SK네트웍스가 상장을 앞둔 SK C&C 지분 처분을 통해 3000억 원 정도를 손에 쥘 것으로 전망된다.
이 자금이 합병 대상인 워커힐 재무개선 작업에 투입될 수도 있는 셈이다. 최 회장이 사재 출연에 이어 추가로 거액이 투입될 SK네트웍스-워커힐을 순순히 최신원 회장 휘하에 두려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선이 현재로선 드물다.
이런 최태원 회장의 속내에 아랑곳하지 않고 최신원 회장의 계열분리 의지는 계속 불타오르는 듯하다.
▲ 최태원 SK 그룹 회장. | ||
이 발언은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 “최신원 회장이 자신의 상징성을 강조한 것”이란 해석을 낳았으며 SK 계열분리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부추기는 효과도 불렀다.
재계 일각에선 “지분으로 안 되는 최신원 회장이 명분으로 승부를 건다”는 해석이 등장하기도 했다. 친동생인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계열분리 요건을 이미 갖췄다는 점도 최신원 회장의 잰걸음을 독려하는 대목일 것이다.
최신원 회장의 최근 지분 보유내역 변동 역시 분가 관련 관측을 거들고 있다. 최신원 회장은 지난 8월 4일과 9월 21일 두 차례에 걸쳐 SK㈜ 주식 3510주를 처분해 현재 SK㈜ 주식 3000주 만을 남겨놓은 상태다. 주력 계열사인 SK에너지 대주주 명부에선 아예 이름을 내려버렸다. 7월 30일과 9월 15일 두 차례에 걸쳐 4500주 전량을 매각한 것이다.
수천 주에 불과하지만 지주회사제 전환을 앞둔 SK의 지주사 주식과 주력 계열사 지분을 처분한 것에 대해 “최태원 회장과 선을 긋기 시작한 것”이란 해석이 따라붙기도 한다.
최신원 회장은 9월 15일과 17일, 18일 세 차례에 걸쳐 SK네트웍스 주식 2만 2400주를 장내매수했다. 보유 주식 수는 종전의 1만 8000주에서 4만 400주로 늘어났다. SK네트웍스의 워커힐 합병 이사회 결의는 9월 21일에 있었지만 그 전에 이 사실을 알았을 법한 최신원 회장이 워커힐에 대한 의지를 미리부터 표출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밖에도 SK 계열분리설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최신원 회장 계열의 SK텔레시스가 최근 휴대폰 사업에 진출하면서 만든 새 브랜드 ‘W’가 W호텔(W서울워커힐호텔)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지난 8월 28일 SK텔레시스의 새 휴대폰 ‘W’ 론칭 행사 때 SK텔레콤을 대표해서 정만원 사장과 더불어 손길승 명예회장이 최신원 회장과 자리를 함께한 장면 또한 여러 뒷말을 낳았다.
지난 1998년 최종현 2대 회장 타계 직후 오너일가 맏형이던 최신원 회장 대신 고 최종현 회장 아들 최태원 회장이 3대 총수직에 오른 장면과 오버랩된 것이다.
사실 재계에서는 이러한 승계가 가능했던 배경에 ‘손길승 명예회장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최신원-손길승 두 사람 사이가 불편할 것이란 관측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지난해 손 명예회장을 SK텔레콤에 북귀시킨 최태원 회장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말들도 많았다.
다수의 재계 관계자들은 두산이나 금호아시아나 같은 형제간 다툼과 비교하긴 이르더라도 SK가 내걸어온 ‘따로 또 같이’ 행보에서 최근 ‘같이’보다는 ‘따로’에 더 무게가 실린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