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지난달 28일 수출입 동향 확대 점검회의 직후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가능성을 밝혀 그 배경이 주목을 받고 있다. | ||
포스코는 매물로 나왔거나 곧 매각일정에 돌입할 옛 대우 계열사들의 잠재적 인수 후보군에 단골손님으로 거론돼 왔지만 지금껏 “관심 없다”거나 “검토한 바 없다”고 일관해온 터. 그런데 돌연 옛 대우 계열사 매물 중에서도 큰 규모가 아닌 대우인터내셔널에 관심을 표명하고 나서면서 이에 대한 갖가지 추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포스코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한 것은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다. 지난 9월 28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수출입 동향 확대 점검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다음날인 29일 유가증권시장본부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추진 보도’에 대한 조회공시 요구에 포스코 측은 “대우인터내셔널의 전략적 투자가치에 대해 검토가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는 구체적인 사항을 확정한 바가 없다”고 답변했다.
인수전 참여를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종전까지만 해도 대우인터내셔널에 대해 “전혀 검토한 바 없다”던 입장을 스스로 뒤집은 셈이다.
포스코가 올 들어 국내 대형매물에 대한 인수 검토 의사를 공시를 통해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8월 12일 유가증권시장본부의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보도’에 대한 조회공시 요구 때도 포스코 측은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동안 재계와 금융권에선 대우건설 하이닉스 같은 대형매물들의 주요 잠재적 인수 후보로 주저 없이 포스코를 꼽아왔다.
5조 원 이상의 현금동원 능력과 더불어 10월 말 포스코건설 상장을 통해 1조 원 이상의 투자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강하게 어필돼온 까닭이다.
‘오너 없는 기업’ 포스코에 대한 정부의 기대감도 컸다. 국내 시공능력 평가 1위 대우건설과 반도체 업계 강자 하이닉스를 해외자본에 넘기지 않기 위해선 포스코 같은 국내 거대자본이 움직여야 한다는 정서가 관가에 강하게 자리잡아왔다.
올 초 정준양 회장 선임을 둘러싼 정치권발 인사개입 논란에서 드러났듯이 ‘외풍’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포스코가 어떻게든 대형매물 중 한 곳 인수전에 참여할 것이란 관측이 팽배했다.
그럼에도 포스코는 “철강산업과의 시너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요지부동이었다. 외인주주가 50%에 달하는 특성상 정준양 회장을 비롯한 그룹 수뇌부는 국부유출 논란 못지않게 주주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눈치를 꽤나 살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포스코가 갑자기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 참여 가능성을 흘리게 된 배경은 뭘까. 일단 대통령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의 하이닉스 매각 단독입찰이 거론된다. 효성이 신용등급 악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하이닉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마당에 곳간을 가득 채워놓고 있는 포스코가 대형매물 인수전에 등을 돌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셈이다.
정 회장이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의사를 밝힌 날이 대우건설 인수의향서(LOI) 제출 마감 하루 전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어떤 국내자본도 대우건설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자칫 대우건설 인수전 흥행 부진 책임론이 ‘한사코 손사래만 쳐온’ 포스코를 향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 회장은 옛 대우 계열 중 하나인 대우인터내셔널을 언급하고 나섰다. 매각가가 2조~3조 원 정도로 거론되는 대우인터내셔널은 적어도 3조~4조 원의 인수비용이 필요한 대우건설에 비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대우인터내셔널의 주력인 종합상사와 세계 각지에서의 광물 개발은 철강재 수출을 하는 포스코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솔직히 대우건설은 검토 안 했다”면서도 “대우인터내셔널은 업무적 측면에서 포스코에 이익이 될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대우건설을 피하고픈 마음이 결국 대우인터내셔널에 대한 전향적 검토를 이끌어낸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옛 대우 계열 대형매물 M&A(인수·합병)에 소극적이지 않다”는 메시지를 정부 측에 보낼 수 있는 동시에, 업무 시너지를 통한 매출·이익 극대화를 주요 주주들에게 역설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정 회장의 결정을 거든 대목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포스코 측이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 참여에 대한 확답을 내놓은 게 아닌 이상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만을 노릴 것이라 단정 지을 순 없다. 포스코는 여전히 지난해 인수전 막판에 고배를 마신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GS와 인수 컨소시엄을 구성했다가 인수가격에 대한 견해 차이로 결렬돼 결국 우선협상대상자 자리를 한화에 빼앗긴 것에 대한 아쉬움이 짙어 보인다.
재계 일각에서는 가격 문제 등으로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무산돼 조만간 인수전이 재개될 터라 인수 준비를 오랫동안 했던 포스코가 이를 수수방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지난해 당시 매각가격이 최고 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평가받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포스코가 다시 참여할 경우 대우인터내셔널까지 함께 인수하려 들 가능성은 낮다. 포스코 측 또한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 “여전히 지켜보는 중”이라고 밝혀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재개 일정이 주목을 받는다.
한편 조만간 본격화될 대우인터내셔널 매각 일정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2라운드’가 될 공산도 엿보인다.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단 회의 직후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대우인터내셔널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눈길을 끌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교보생명 지분 24%를 갖고 있어 대한생명을 보유한 한화와 금융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여기에 얼마 전 종합상사 ㈜쌍용을 인수한 GS그룹이 대우인터내셔널의 종합상사 노하우와 해외 자원개발 인프라에 눈독을 들인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맞붙었던 ‘포스코-한화-GS’가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을 통해 불편한 조우를 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