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의 각별한 쌀 막걸리 사랑은 지난 8월 강화에 있는 쌀 국수 공장을 방문하면서부터다. 사진은 지난 5월 민생행보에 나선 이 대통령이 농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이명박 대통령의 쌀 막걸리 사랑이 시작된 것은 지난 8월. 계속되는 풍년으로 쌀이 남아돌 것으로 예상돼 농민들의 시름이 커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 대통령은 친 서민행보를 본격화하던 지난 8월 13일, 경기 강화군 소재 쌀국수 공장을 찾았다. 당초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하던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 겸 정책실장의 건의로 민생현장에서 개최했고 이번엔 쌀국수 공장을 찾아 쌀 소비 촉진 방안을 논의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현장에서 쌀을 원료로 한 제품인 쌀 막걸리, 쌀라면·국수, 쌀 건빵 등이 전시된 것을 보고 “쌀값이 2년 이상 지난 것은 싸지 않느냐. 이런 데 소비하면 된다”면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산학연이 공동으로 연구·개발하는 데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의 쌀국수 공장 방문에는 정부와 청와대 관계자들 외에 손욱 농심 회장, 배중호 국순당 사장, 박관회 대선제분 사장 등도 함께했다.
같은 달 말 청와대에서 열린 제16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에서도 막걸리가 등장했다. ‘우리술산업 경쟁력강화’를 위한 규제완화 및 육성방안에 대해 논의한 이 자리에 이동수 서울탁주제조협회장과 배중호 국순당 사장이 참석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이 제안한 쌀 소비 촉진의 핵심(?)인 쌀 막걸리 산업의 중심에 어느새 국순당이 자리를 잡았다. 대통령 행사에 초청될 정도로 국순당이 쌀 막걸리 대표주자로 인식된 셈이다. 자연스럽게 주가 또한 급등했다.
‘백세주’로 유명한 국순당의 주가는 올 상반기만 해도 3000원에서 4000원 사이 박스권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주가는 4월 말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 5월엔 5000원 선을 돌파하고 7350원까지 급등했다. 국순당 주가를 단숨에 끌어올린 것은 바로 ‘생 막걸리’. 국순당은 5월부터 주류업계 최초로 막걸리 발효제어 기술을 통해 유통기한을 30일까지 늘렸으며 생 막걸리로는 처음으로 전국에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때마침 불어 닥친 막걸리 열풍에 ‘생 막걸리’ 출시는 매출 급증으로 이어져 발 빠른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이후 국순당 주가는 5000원에서 6000원 사이를 오가다 8월부터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의 쌀 막걸리 사랑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정부의 전통주 육성 방안이 나오면서 주가 상승세는 날개를 달았고 9월 7일 9830원까지 올랐다. 연초대비 세 배 이상 뛴 셈이다. 이후 단기 급등에 따른 숨고르기가 이어지면서 국순당의 주가는 8000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MB 테마주’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선 당시 대운하 관련주가 급등했고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까지 상승세는 이어졌다. 이후 녹색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자전거 관련주가 큰 폭으로 올랐고 이젠 ‘친 서민·민생행보 관련주’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친 서민, 민생행보 현장에 함께한 기업들의 주가는 다른 기업들보다 프리미엄을 받는 셈이다.
지난 9월 2일 서울 상암동 DMC에서 열린 미래기획위원회 5차 보고회에서는 IT업계 대표자들이 총출동했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남용 LG전자 부회장, 이석채 KT 회장, 정만원 SK텔레콤 사장, 정일재 LG텔레콤 사장, 이현순 현대·기아차 부회장, 김종갑 하이닉스 사장, 민계식 현대중공업 부회장 등 110명이 참석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이 대통령이 보고회를 마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시스템반도체진흥센터를 방문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이 관람한 센터 홍보전시실에는 이곳 보육센터를 거친 엠텍비전 티엘아이 넥서스칩스 슬림디스크 등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체의 제품이 전시됐다.
이 자리에서 이성민 엠텍비전 사장은 자사 차량용 카메라칩 제품을 소개하면서 “우리 제품이 현대자동차에 공급된다”고 소개했고, 이 대통령은 “화면이 깨끗하다”며 관심을 나타냈다. 엠텍비전과 티엘아이는 상장회사. 특히 엠텍비전의 경우 연초 3000∼4000원에 머물던 주가가 현재 6000∼7000원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8일 이 대통령은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참석했다. 전기자동차 양산을 당초 2013년에서 2011년으로 앞당기고 우선 중점 육성이 필요한 배터리 등 전략부품 개발부문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 이현순 현대·기아차 부회장과 유기준 GM대우 기술연구소 사장, 윤정호 르노삼성 부사장 등 완성차 대표가 참석했다.
또한 배터리업체를 대표해 김반석 LG화학 부회장, 박영우 SB리모티브 사장, 박상훈 SK에너지 사장, 이동채 에코프로 사장 등이, 중소업체 대표로 이영기 CT&T 사장, 김재학 하이젠 사장, 성환호 피에스텍 사장도 배석했다. 이중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LG화학, SK에너지, 에코프로, 피에스텍 등이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어 관심이 더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에 따른 촛불집회 여파와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 위기 등으로 외부 일정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중도실용’을 내세운 이후 하반기부터 친 서민행보를 본격화하면서 민생현장과 기업을 찾는 일이 부쩍 늘었다. 이 대통령이 참석한 각종 행사에는 당연히 해당 분야 대표 기업이 함께 배석한다.
통상 대통령 행사에 참석하는 기업은 해당 업계의 추천을 받아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 일단 업계의 검증은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정부의 정책과 해당 기업의 잠재력이 더해진다면 말 그대로 숨은 진주인 셈이다. 단, 숨은 진주를 미리 발견한 고수들로 인해 주가가 이미 기업가치보다 오른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 듯하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