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LG텔레콤과 파워콤, 데이콤 3사 관계자들이 합병인가 신청서류를 제출했다. 연합뉴스 | ||
KT에서 잔뼈가 굵은 데다 정부 관료까지 지낸 이 전 장관이 KT와 SK의 통신 양강체제에서 밀려온 LG로 가게 된 것과 관련한 LG의 노림수와 KT에 미칠 영향, 그리고 통신업계 판도 재편 가능성까지 다양한 관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LG텔레콤과 LG데이콤, LG파워콤 등 통신 3사는 지난 15일 이사회를 열고 합병을 전격 결정,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합병인가를 거쳐 내년 1월 1일 통합법인 ‘LG텔레콤’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LG그룹 내 ‘3콤’(통신 3사)의 합병은 진작부터 예견돼 온 일이었다. 당초 그룹에선 LG데이콤과 LG파워콤의 합병을 먼저 추진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지난 6월 KT-KTF 합병, 그리고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 제휴 강화를 맞아 유무선 통합상품 시대에 걸맞은 거대 통신사 출범의 필요성이 그룹 안팎에서 제기됐다. LG는 결국 3콤 합병을 통해 KT와 SK가 양분하다시피 해온 통신업계 재편을 위한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LG가 뽑아든 또 하나의 카드는 바로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 장관 영입이다. LG는 일단 이 전 장관을 LG경제연구원 고문직으로 영입한 뒤 통합법인 LG텔레콤 출범에 맞춰 이 회사의 CEO(최고경영자)로 선임할 예정이다.
당초 재계에선 규모가 커질 통신계열사 수장을 누가 맡을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통합법인 LG텔레콤의 수장을 기존의 사장직으로 할지, 아니면 규모에 걸맞게 부회장으로 격상해야 할지, 부회장으로 한다면 누가 적임자일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던 것. 현재 LG그룹 내엔 구본무 회장의 복심으로 알려진 강유식 ㈜LG 부회장, 구자경 명예회장 때부터 오너 일가의 신망이 두터운 남용 LG전자 부회장, 그리고 구 회장 친동생인 구본준 LG상사 부회장과 LG화학의 김반석 부회장 등 총 네 명의 부회장이 있다.
“KT의 CEO와 정부 관료까지 거친 이 전 장관 같은 대어급 인사를 영입하면서 부회장직 정도는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 전 장관의 등장이 LG 내 세력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을 받는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LG가 이 전 장관 같은 거물을 영입하면서 얼굴마담으로 쓰려고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 전 장관에게 주어질 권한에 따라 그룹 내 권력구도 또한 달라질 것”이라 전망했다. 이런 기류와 함께 올해 50세인 조준호 ㈜LG 부사장의 내년 사장 승진이 유력시되는 등 세대교체 바람이 맞물리면 기존 60대 부회장단의 향후 입지에 한바탕 회오리가 불 수도 있다는 게 일각의 관측이다.
LG의 이 전 장관 영입은 그가 전형적인 ‘KT맨’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끈다. 이 전 장관은 KT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통신망연구소장 사업개발단장 무선사업본부장을 거쳐 한국통신프리텔 사장을 지낸 뒤 2001년 1월부터 2002년 7월까지 KT 사장을 역임했다. 2002년 7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그는 경영과 행정을 두루 경험했다는 점에서 전형적 관료 출신인 이석채 KT 회장과 비교되곤 한다.
이 전 장관의 LG행과 관련, KT 내에선 다소 어수선한 반응이 감지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KT 내 핵심계보인 ‘KS라인’(경기고-서울대 출신)의 대부 격 인사다. 그가 2002년 7월 KT 사장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영전하면서 후임 사장에 오른 이용경 현 창조한국당 의원, 그리고 다음 사장을 지낸 남중수 전 사장까지 모두 KS 동문들이다.
최근까지 KT 조직 내에서도 이 전 장관에 대한 신망은 여전히 높았다. 이용경-남중수 전 사장들에 비해 이 전 장관의 경영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직원들도 적잖다. KT 내에선 2000년대 초기부터 이 전 장관이 인터넷 시대 도래를 예견하고 그에 맞는 시스템 구축작업을 주도하는 등 미래지향적인 경영관을 가진 CEO라는 호평이 자자했다. 이렇듯 KT의 아이콘과도 같은 그가 경쟁업체로 간다는 소식은 KT 민심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셈이다.
지난해 남중수 전 사장이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났을 당시 ‘이 전 장관이 CEO로 컴백할 가능성’이 잠시 거론되기도 했다. 당시 ‘이석채 대세론’이 자리 잡으면서 이 전 장관 이야기는 금세 수그러들었지만 KT 내에선 “(이 전 장관이) 언젠가 다시 한 번 KT를 위해 공헌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이렇다 보니 이 전 장관의 LG행을 접한 KT 내에선 “배신감을 느낀다”는 등 격앙된 반응까지 나오기도 했다.
LG의 이상철 전 장관 영입으로 이석채 회장의 리더십 논란 또한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이석채 회장은 ‘낙하산 꼬리표’를 달고 올 초 KT CEO 자리에 입성하자마자 현 정부 성향의 외부 인사들을 대거 영입해 주요 보직에 앉히면서 논란을 불렀다. 한편으론 올 초 영입된 서울고검 검사 출신 정성복 윤리경영실장을 앞세워 강도 높은 내부감사를 통해 만성적 비리 척결에 나서면서 외부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KT 내 KS라인을 비롯한 주요 계보를 흔들고 자신의 장악력 극대화를 위한 자파세력 키우기에 주력한다는 비판론을 피할 순 없었다. 이석채 회장의 내부 개혁 작업 과정에서 일부 인사들이 정치권을 비롯한 외부세력에 SOS를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이렇다 보니 이상철 전 장관의 LG행이 KT 조직 내부 동요를 일으킬 가능성에 업계의 시선이 쏠린다. KT 조직의 ‘큰형님’인 이 전 장관의 LG행은 이석채 체제에 불만을 품은 인사들의 동반 LG행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KT의 미래성장동력으로 평가받아온 IPTV 사업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KT의 BC카드와 금호렌터카 인수 추진설이 불거지면서 이석채 회장 경영방식에 대한 찬반양론이 대립하고 있다. KT-KTF의 통합과 LG 3콤 합병에 자극받은 SK그룹이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의 합병을 추진할 것이란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전 장관 한 사람 영입한다는 이야기만으로 업계 전반이 들썩거리는 만큼 3콤 합병을 앞둔 LG 입장에선 이미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