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매에 나온 물품들을 살피는 외국인. 이종현 기자. | ||
이 경매는 사상 처음 전직 대통령의 물품이 경매에 부쳐졌다는 점 때문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매 당일 전 전 대통령의 물품들은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대부분이 낙찰되는 등 호응이 컸다. 그런데 이날 경매에서 눈길을 끈 사람은 경매 물품을 싹쓸이한 김홍선씨(50)였다.
7개 품목에 대한 일곱 차례 경매에서 세 차례를 김홍선씨의 대리인이 낙찰받았던 것. 김씨는 대리인을 통해 ‘고미술품 매매업자’라고 자신의 직업을 밝혔으나, 김씨는 고미술품 상인들뿐만 아니라 관련 단체에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또한 고미술품 매매업자가 자신의 직업과는 상관없는 진돗개와 TV, 가구 등을 왜 사들였는지도 의문이다. 지난 2일 오후 4시부터 시작된 경매에서 첫 번째 경매로 나온 물건은 TV와 냉장고, 응접세트, 에어컨, 피아노, 책상 등을 비롯해 전씨가 친척한테 선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진돗개 두 마리 등 모두 21개 품목이었다.
감정가 6백33만원부터 경매가 시작됐는데 응찰자 4명이 경쟁을 벌인 끝에 고미술품 매매업을 한다는 김홍선씨의 대리인 정아무개씨(34)가 7천8백만원에 낙찰받았다. 김씨는 네 번째 경매에서도 감정가 3백70만원인 병풍과 서예작품 6점을 2천만원에, 이어진 다섯 번째 경매에서는 감정가 1백90만원이던 동양화 6점을 놓고 2천50만원을 불러 최종 낙찰받았다.
이밖에 두 번째 경매에선 랭스필드 골프채(감정가 30만원)가 무려 30배인 9백만원에 조용민씨(62)에게, 도자기 5점(감정가 5백50만원)은 2천5백만원을 부른 한상용씨(41)에게, 서양화 5점(감정가 3백60만원)은 1천5백만원에 장개환씨(51) 손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경매에선 주전자 등 6점(감정가 1백52만원)이 1천2백만원을 부른 김흥치씨(57)에게 팔렸다. 이로써 이날 감정가 1천7백90만원 상당의 물품 49점은 열 배가 넘는 1억7천9백50만원에 모두 팔려나갔다.
그런데 이날 경매에서 가장 눈길을 끈 김홍선씨는 총낙찰가 1억7천9백50만원 가운데 무려 1억1천8백50만원어치(66%)를 구입했다. 물건으로는 49점 가운데 33점을 사들여 전체의 3분의 2 이상을 손에 쥔 셈이다.
경매 현장에서는 전씨의 물건을 대부분 싹쓸이한 김씨를 놓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이 아니냐”는 쑥덕거림이 있었다.
이런 의혹은 낙찰자인 김씨의 정체가 묘연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대리인으로 경매에 참가했던 정씨는 경매를 마친 다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김홍선씨는 고미술품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적인 가치에 비하면 싸게 산 것”이라며 “김씨는 전직 대통령의 물건을 모아서 박물관을 만들 계획이며, 진돗개는 전씨에게 돌려보낼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김씨와 전씨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는 “(김씨는) 전씨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며 더 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 낙찰된 가구, 골프채와 진돗개 두 마리. 이들 을 낙찰받은 김홍선씨는 개들은 전 전 대통령 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 ||
고미술품 매매업자 2백30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한국고미술협회에 따르면 회원 명부에도 김홍선씨는 등록돼 있지 않았다. 협회 관계자는 “전국에서 활동하는 고미술상인들이 대부분 협회 회원으로 가입해 있지만 간혹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고미술품 매매업자는 애초 관할구청에서 허가를 받아야만 영업할 수 있었으나, 지난 98년부터는 신고제로 전환돼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관할구청에는 반드시 신고를 해야만 고미술품을 거래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래서 김홍선씨의 거주지인 서울 갈현동을 관할하는 은평구청에 확인했으나, 김씨는 ‘고미술품 매매업자 신고 대장’에 등록돼 있지 않았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고미술품 상가가 가장 많은 지역인 인사동을 관할하는 종로구청 문화진흥과에도 확인했으나, 역시 김씨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김씨가 과연 고미술품 매매업자인지 의문이 생긴다. 단순히 그의 대리인이 그렇게 얘기했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믿을 수만은 없는 상황.
게다가 고미술품 매매업자인데 왜 전씨가 사용했던 TV와 에어컨, 응접세트, 냉장고, 가구 등을 사려고 했느냐는 점이다. 그의 직업과는 다소 거리가 먼 물건들을 사려고 했던 의도가 무엇인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또한 경매장에서 김씨의 대리인 일행 3명은 주전자와 과자 그릇 따위를 파는 일곱 번째 마지막 경매에도 응찰했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부리나케 뛰어서 달아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만약 김씨가 당당했다면 대리인들이 마치 ‘큰 죄’라도 저지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달아날 필요까지 있었겠느냐는 것.
게다가 고미술품 상인이 왜 주전자 따위의 생활용품을 구입하려고 시도했느냐는 점도 의문. 한편 김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선 특별한 호감도 악감정도 없다”고 잘라 말하며 “난 원래 잘나가는 광고회사 직원이었는데 1998년 외환위기로 명예퇴직을 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물건 수집에 뛰어들었다”라며 “언젠가 전직 대통령 기념관에 전시돼 과거 대통령들의 생활상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전 대통령도 물건은 모르지만 개에 대한 애정이 있을 것으로 보고 돌려드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그의 말대로 그가 단순한 ‘골동품 애호가’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두고볼 일이다. 한편 서울지법 서부지원 경매부 관계자에 따르면, 6일 현재 김홍선씨는 낙찰 받은 물건들을 찾아가지 않았다. 경매부 관계자는 “원래 동산에 대한 경매가 끝나면 바로 물건을 가져가는 게 관례인데 김씨는 아직 물건을 찾아가지 않았다”며 “조만간 찾아가지 않겠느냐”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