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업 진출을 위해 스타트를 먼저 끊은 건 SK텔레콤이었다. SK텔레콤은 애초 10월 출범할 예정이던 하나카드의 지분을 취득해 카드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알렸다. 하지만 하나금융지주와 SK텔레콤이 ‘지분 2%의 신경전’을 벌이면서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양측이 경영권을 위한 지분 51% 확보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의 경우 ‘통신이 주도하는 금융과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위해서 경영권 확보가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하나금융도 분사 형태를 통해 하나카드를 설립하는 만큼 경영권은 물론 임원 선임권 등의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 51%의 지분율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동상이몽’이 협상을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일요신문> 908호 보도).
지분율 줄다리기 외에 다른 문제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하나금융이 지분의 51%, SK텔레콤이 49%를 가지는 구조로 출범할 예정이었으나 하나금융이 매각가격을 높게 불러 협상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하나금융이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하나카드의 매각 가격을 예상가보다 높게 책정하자 SK텔레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결국 하나카드는 SK텔레콤과의 지분 협상을 매듭짓지 못하고 오는 11월 2일 하나금융의 100% 자회사로 출발하게 됐다. 하나금융은 지난 9월 29일 공시를 통해 자본금 3000억 원에 주식 수 6000만 주로 하나카드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협상의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양측 모두 “협의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금융 측이 ‘선 출범, 후 협상’의 공세를 취하자 SK텔레콤 측도 가만있지 않았다. SK텔레콤이 다른 카드업체의 문을 두드리며 하나금융을 압박하고 있다고 전해진 것. 지난 13일 신한금융이 ‘신한SK행복카드’를 통해 사실상 SK그룹 전용 신용카드를 출시하자 이런 설은 더 힘을 받았다. 이 카드는 SK그룹의 통신 주유 쇼핑 등을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고 OK캐쉬백포인트와의 연계도 가능해 카드시장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SK텔레콤이 하나금융과의 협상에 지친 나머지 신한카드를 새로운 파트너로 물색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07년 SK텔레콤이 신한은행과 합작운용회사 설립을 추진하다 중단된 경험이 있고, 신한SK행복카드가 SK텔레콤이 하나금융과 함께 구상했던 카드와 기능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SK텔레콤이 하나카드 진출에 성공할 경우 직접적 타격을 받을 신한카드가 유력한 미래의 경쟁사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혜택을 제공하는 SK 전용 카드를 출시한 것도 의아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관계자는 “기존 카드업계와 연계해 출시했던 다른 SK카드들처럼 단순한 사업 조인일 뿐 확대해석은 말아 달라”며 “금융업 진출을 위해 하나금융과의 협상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의 카드사업 진출에 위기를 느낀 라이벌 KT도 비씨(BC)카드 인수를 시도하고 있지만 난관에 부딪혔다. KT는 최근 공시를 통해 ‘금융사업 진출을 위해 자회사 KT캐피탈에서 검토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결정사항이 있으면 6개월 이내에 재공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KT의 꿈에 비씨카드 지분 27.65%를 가진 2대 주주 우리은행이 어깃장을 놓았다. KT의 지분 매각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진 것. 우리은행 관계자는 “사실상 KT의 제안을 거절했다”며 “추가로 KT의 제안이 없는 상황에서 비씨카드 지분매각은 현재까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14.65%를 보유한 3대 주주 신한금융도 비씨카드 지분을 팔지 않겠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앞서의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KT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카드업계 내에서 ‘통신사들이 카드사업에 진출하면 시장 주도권을 넘겨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SK텔레콤은 하나카드 진출시 초반부터 가입자 및 OK캐시백 회원 등 3200만 명에 이르는 막강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 무차별적인 고객 모집 공세에 들어갈 수 있다. KT의 경우도 카드사업에 진출하면 유선전화 1850만, 이동전화 1420만, 초고속인터넷 680만 가입자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업계의 판도를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SK텔레콤과 하나금융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KT의 비씨카드 인수도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자 일각에서는 SK텔레콤이 비씨카드를 인수하고 KT가 하나카드에 투자하기 위해 서로 물밑 접촉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두 거대 통신 라이벌의 과당경쟁에 카드사들이 매각 조건에 대한 욕심이 커지면서 경쟁 업체들과의 접촉을 통해 좀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석채 KT 회장이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통신과 금융의 융합은 지배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다”면서 “우리의 핵심 역량과 트렌드가 맞는다면 적극적으로 융합에 나서야 한다”며 금융업 진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자 KT가 하나카드 등 다른 루트를 통해 금융업에 진출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그러나 SK텔레콤의 우리은행 물밑접촉설 등 일각의 관측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비씨카드 지분 매각은 계획에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하나금융 관계자도 KT 접촉설을 부인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