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직전인 지난 6월 말께 한 청와대 관계자가 사석에서 풀어놨던 얘기다. 박 대통령의 방중을 불과 1주일도 채 남기지 않았던 당시는 한·중 양국 정부가 정상회담 의제와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 문안 등은 물론 중국 현지에서의 세부 일정 하나하나와 의전 등에 대해 조율을 끝마쳐 갈 무렵이었다. 이 관계자의 발언이 단순한 예상이나 희망사항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6월 27일 오후 박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그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박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내렸을 때 영접한 인사는 장예쑤이(張業遂)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이었다. 통상 차관급이 공항 영접을 나오는 것과 달리 장관급 인사가 등장한 것이다. 공항에서 숙소인 댜오위타이(釣魚臺)까지 약 40㎞ 구간 대부분은 차량이 전면 통제됐다. 이를 수행했던 한 인사는 “대통령의 해외 방문 때 현지 경찰이 에스코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처럼 대통령 일행이 지나는 모든 차도를 전면 통제한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라며 “더욱이 한낮에도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는 베이징에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통째로 막을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중 당시 양국정상 청년대표단 접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함께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특히 인민대회당이 지어진 뒤 금색대청 국빈만찬은 세계 최강대국 정상에게나 허용돼왔다. 최근에는 지난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2012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지난 3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이렇게 단 3명만이 이곳으로 초청됐다. 일반적으로 다른 국가 정상들에 대한 국빈만찬은 인민대회당 1층의 작은 홀인 서대청(西大廳)에서 열렸다.
만찬 메뉴에서도 박 대통령에 대한 극진한 예우가 묻어났다. 이날 메인 수프로 나온 것은 중국 햄을 곁들인 ‘흰목이국’이었다. 짙은 갈색 또는 검정색에 가까운 목이버섯과 달리 흰목이버섯은 구하기도 쉽지 않아 다채롭기로 유명한 중국 요리에서도 최상급의 재료로 통한다. 일반적으로 중국은 특별한 우방국 정상에게는 제비집 수프를,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오징어내장 수프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날 흰목이국을 제공한 것은 여성 대통령인 박 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배려가 담긴 것으로 해석됐다.
음식만이 아니었다. 만찬 도중 연주된 곡 중에는 ‘행복을 주는 사람’과 ‘고향의 봄’이 포함됐다. ‘행복을 주는 사람’은 박 대통령이 좋아해 지난 대선 당시 로고송으로까지 사용했던 노래다. 동요 ‘고향의 봄’은 박 대통령의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가 각별히 좋아했던 곡으로 알려져 있다. 또 중국 무용가 텅위는 만찬 도중 한복 차림으로 나와 만주 지역을 호령했던 옛 한민족 국가 부여의 전통무용 ‘영고(迎鼓)’를 공연했다. 중국 내에서 한민족을 연상시키는 상징을 극도로 경계해 온 중국 정부가 인민대회당 금색대청에서 열린 국빈만찬 도중 한민족의 민속춤을 선보인 것이다.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중국 경극 공연에서도 놀라움은 계속 이어졌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자룡의 ‘장판파(長坂坡)’ 전투가 경극으로 펼쳐진 것이다. 소녀 시절부터 삼국지를 숱하게 반복하며 읽었다는 박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어찌 보면 조자룡이 내게는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밝힌 바 있다.
이밖에도 박 대통령의 숙소로 댜오위타이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18호각을 제공한 점, 국빈만찬과 별도로 시진핑 주석이 댜오위타이 내 양원재(養源齋)에서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을 대동한 채 특별 오찬을 마련한 점,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석 설치를 허가해 달라는 박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인 점 등이 모두 중국 측의 각별한 예우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혔다.
박 대통령은 중국 도착 직후부터 관례를 깬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사진제공=청와대
하지만 이 같은 박 대통령의 방중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중국에서 받은 환대에만 취해 있어선 안 된다”며 중국 측의 극진한 대접에 담긴 속뜻을 알아채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에 밝은 중국인의 특성, 철저히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지는 외교전을 감안할 때 예상을 뛰어넘은 중국 측의 환대는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 측이 한국에 최대한 성의를 보였다는 것은 곧 ‘한국도 중국에 성의를 보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박 대통령의 방중 성과를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박 대통령의 방중에서 최대 목표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중 공조 강화에 있었다. 한·중 양국 정부는 ‘북핵 불용,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똑같은 목소리를 내면서도 미묘한 입장차를 보여 왔다. 한국은 북한이 진정성을 보여야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인 데 비해 중국은 일단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라는 쪽이었다. 어쩌면 박 대통령에 대한 극진한 환대 이면에는 역설적으로 ‘보다 전향적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라’는 중국 정부의 압박성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 내용 중 북핵 관련 부분을 자세히 뜯어보면 이 같은 분석이 결코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양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한국 측은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와 관련, 양측은 유관 핵무기 개발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하였다.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및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가 공동이익에 부합함을 확인하고 이를 위하여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당초 우리 정부가 담으려 했던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공동선언 내용 중 ‘유관 핵무기’의 ‘유관’이라는 표현이 영어로 ‘Concerned’로, 결국 북한 핵을 지칭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설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중국이 의도적으로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피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공동성명에서 무시할 수 없는 또 다른 부분은 “양측은 6자회담 틀 내에서 각종 형태의 양자 및 다자대화를 강화하고, 이를 통하여 한반도 비핵화 실현 등을 위한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 긍정적인 여건이 마련되도록 적극 노력하기로 하였다”는 대목이다. 한국 정부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진정성 입증’을 주장해 왔는데, 한·중 양국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막연히 6자회담을 통한 해결 원칙에 공감한 것이다.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요구사항이다.
한편 박 대통령 방중 직후인 지난 3일 북한이 개성공단 기업인과 우리측 관리위원회 인원들의 방북을 허용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보내오자 정부가 전격적으로 북한 측에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역제안, 6일 회담이 열렸다. 일각에서는 이를 한·중 정상회담과 무관치 않다고 보면서 더 나아가 6자회담 재개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
중국 국빈방문 둘째날인 6월 28일 가진 수행 경제사절단 조찬 간담회.
박 대통령 방중 첫 날인 6월 2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금색대청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주최 국빈만찬에 참석한 우리 측 경제사절단은 30여 명. 71명에 달한 사절단의 절반이 채 못 된다. 특히 방중 경제사절단에 포함된 18곳의 대기업 회장 가운데 정준양(포스코), 이석채(KT), 조석래(효성그룹), 현정은(현대그룹), 구자열(LS), 김윤(삼양홀딩스), 이웅열(코오롱) 회장, 7명이 만찬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정몽구(현대차), 구본무(LG), 신동빈(롯데), 김창근(SK), 조양호(한진), 박용만(두산), 박삼구(금호아시아나) 회장과 강호문(삼성전자), 홍기준(한화케미칼), 정용진(신세계), 박성경(이랜드) 부회장 등이 참석한 것과 대비됐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국빈만찬에는 장소 문제와 상대국과의 조율 등의 문제로 인해 모든 경제인을 다 참석시킬 수 없었고, 이에 따라 경제단체장과 큰 기업 위주로 참석자를 정했을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국빈만찬 참석자 선정에 정치적 의미가 있다면 애초에 방중 사절단에 포함시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만찬에 초청받지 못한 기업 측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과 상관없이 구구한 억측과 해석이 나돌았다. 지난 5월 박 대통령의 방미 때 경제사절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CJ그룹이 이후 강도 높은 검찰 수사를 받고 급기야 이재현 회장이 구속되는 사태에까지 이른 것과 연결 짓는 해석이 대두된 바 있어 대통령 방중을 앞두고도 재계가 전전긍긍했다.
특히 이번 만찬에 참석 못한 포스코와 KT의 수장은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자리여서 유난히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