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실종된 이윤희 씨의 과거 사진. 작은 사진은 사례금 1억 원을 내건 전단지.
다음날인 7일 이윤희 씨는 수업에 출석하지 않았다. A 씨 역시 학교에 오지 않았다. 평소 수업을 빼먹지 않았던 둘에겐 무척 특이한 일이었다. 그 다음날인 8일에도 이윤희 씨는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윤희 씨가 일주일 전 학교 근처에서 휴대전화를 날치기 당해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걱정이 된 친구들이 그의 원룸을 찾았다. A 씨 역시 따라나섰다. 그러나 원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평소 이윤희 씨의 원룸 근처에 살며 자주 왕래한 A 씨에게 현관 비밀번호를 물었지만 그는 모른다고 했다. 경찰을 불러 현관문 디지털 도어락을 부수고 방안에 들어갔다. 방 안에는 이윤희 씨가 키우던 애완견 한 마리가 있었고, 몹시 어질러져 있었다. 경찰도 친구들도 실종이라고 판단했다. 경찰이 가족에 연락하고 보고를 위해 현장을 떠났다. A 씨와 친구 한 명은 경찰의 허락을 받고 방을 치웠다. A 씨는 방 안을 물걸레질하고, 방안에 흩어진 물건들을 20L 쓰레기봉지에 가득 담아 100여m 떨어진 쓰레기장에 내다버렸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친구들이 방 안을 말끔히 청소하는 바람에 초기 증거 확보에 실패했다”고 회상했다. 경찰의 실종사건 초동수사에 허점이 있었다는 지적은 여기에서 나온다. 이윤희 씨의 컴퓨터에는 그가 방에 들어온 지 몇 분 되지 않은 시점인 6일 오전 2시 59분에,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112’와 ‘성추행’이라는 단어를 3분간 검색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컴퓨터는 그 후 한 시간이 지난 오전 4시 21분에 꺼졌다.
남양주의 집에서 가족들이 달려왔지만 이윤희 씨의 행방은 찾을 수가 없었다. 경찰은 주변인물 수사와 탐문 수사 등을 실시했다. 경찰은 1만 5000여 명의 연인원을 투입, 1년 동안 전북대 인근에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렇게 이윤희 씨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생사조차 알 수 없이 만 7년이 흘렀다.
기자는 지난 4일 강원도 철원에 살고 있는 이윤희 씨의 아버지 이동세 씨(76)를 찾아가봤다. 고령의 나이에 농번기 일하랴, 딸 사건 추적하랴 지친 모습이었다. 그는 이윤희 씨 실종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윤희 씨의 실종사건을 다룬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한 카페에는 80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해 이윤희 씨의 행방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이 씨는 술자리에서 나와 이윤희 씨를 원룸까지 데려다 준 A 씨를 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왔다. 그가 마지막 목격자일 뿐만 아니라 정황상 여러 가지 의심스러운 점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전주 경찰도 A 씨에 대해 집중 조사를 펼쳤지만 실종과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그는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받았지만 ‘진실’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A 씨에 대한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씨는 전북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 등을 통해 A 씨를 추궁했다. 참다못한 A 씨는 친구 아버지인 이 씨를 명예훼손으로 5번이나 고소했고, 이 씨는 200만 원 벌금(명예훼손 혐의)을 내기도 했다.
실종된 이윤희 씨의 부친 이동세 씨가 취재기자에게 “주범은 따로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그런데 아버지 이 씨는 지난해부터 A 씨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심증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 씨는 인터넷 카페에서 지속적으로 회원들과 누가 진범인지에 대해 토론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씨는 최근 들어 제3의 인물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이번 사건의 몸통은 따로 있다. A 씨는 관련만 있을 뿐 주범은 새로운 인물 B 씨다”라고 주장했다.
B 씨 역시 당시 전북대 수의대를 다니고 있던 학생으로 집에 돈이 많다고 한다. 이 씨는 “전북대 수의대 건물 앞에서 A 씨에 대해 1인 시위를 해도 당시 교수나 교직원, 학생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유일하게 B 씨만 내 앞에 와서 따지며 협박을 했다. 그는 나에게 심지어 ‘일류 변호사를 고용해 5년 동안 감옥에서 썩게 하기 전에 A 씨를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다. B 씨는 집도 서울이라 A 씨와는 연고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 딸과 관련점이 많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A 씨를 감쌌던 것일까”라고 의심했다.
B 씨는 사건 당시 수의대 종강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모임이 있었던 술집 근처의 다른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B 씨는 이윤희 씨의 실종사건 발생 이후에도 자신은 사건과 관련해 아무런 혐의가 없다며 알리바이 진술 및 거짓말 탐지기 조사 등에 응하지 않았다. 또한 당시 종강모임 술자리에 있었던 한 학생은 “A 씨가 사건 당일 ‘누가 날 이용해 먹으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며 “그날따라 A 씨는 유난히 말이 없이 앉아있었다”고 기억했다. 이에 이 씨는 B 씨가 A 씨를 이용하거나 또는 지시해 딸을 불러낸 뒤 어떤 해를 가한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했다.
그렇다면 A 씨가 그러한 일을 저지를 이유가 있었을까. 이 씨는 돈 때문이라고 봤다. 현재 A 씨는 서울에서 한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씨는 동물병원을 개업한 돈이 B 씨에게서 나왔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이 씨는 “서울에 아무 것도 없던 A 씨가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 건물 1층을 통째로 쓰는 동물병원을 개업할 수 있었겠느냐”며 “만약 B 씨에게 어떤 (대가에 대한) 약속을 받아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이윤희를 그가 시키는 대로 곤경에 빠뜨린 것이라면 정말 상식 이하의 인간이다”라고 분노했다.
7년 동안 단 하루도 딸의 생각을 잊어본 적이 없는 아버지 이 씨. 그는 딸과의 마지막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윤희 씨가 사라지기 일주일 전인 5월 30일은 아버지 이 씨의 생일이었다. 생일을 맞아 집에 찾아온 이윤희 씨는 그날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에게 “얼마 전에 내가 이가 모조리 다 뽑히는 꿈을 꿨다. 이건 죽는 꿈 아니냐”라고 했다는 것. 부모는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딸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이 씨는 딸이 사라진 후 모든 관심을 딸의 행방에 집중했다. 한때 모든 일을 놓고 딸의 원룸에서만 4년을 지내기도 했다. 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는 것부터 네티즌들에게 도움 호소, 관련단체 협조요청 등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가족들의 고생도 말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이 씨는 “범인을 모른다면야 잊고 살 수도 있겠지만,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버젓이 잘 살고 있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겠나. 속에서 열불이 날 지경이다”라며 “A 씨는 사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 사람만 입을 열면 사건은 해결할 수 있다”라고 토로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수사팀 교체…경찰도 포기했나”
지난 6년 동안 전북 전주와 강원도 철원을 오가며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이윤희 씨의 아버지 이동세 씨. 하지만 지난 4일 기자와 만난 이 씨는 올해부터는 전주에 내려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이상 전주 경찰이 이윤희 씨 실종사건을 해결하려는 수사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씨는 “지난 2012년 가을부터 전주 덕진경찰서의 실종수사팀에 이윤희 사건의 수사를 담당하던 수사관이 교체됐다. 사건 초기부터 담당했던 주력형사 3명이 빠지고 지금은 형식상으로 1명만 배치됐다. 지난 7년 동안 1만 5000여 명이 투입돼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어도 못 찾았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한 명이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겠나. ‘이제 전주 경찰은 내 딸 사건은 포기했구나’라고 판단돼 더 이상 전주에 갈 필요를 못 느낀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전주 경찰이 이윤희 씨 실종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기 부담스러워 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이 씨는 “전북대는 전주에서는 큰 영향력을 끼치는 학교다. 전주시 주요 기관 곳곳에 전북대 졸업생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라며 “그런데 행여 이윤희 실종사건에 전북대 교수나 학생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게 무슨 망신인가. 그래서 수사를 진행해 사건을 해결하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주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 씨의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그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윤희 씨 실종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면서도 “단서가 거의 없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또한 이 씨가 새롭게 주장하고 있는 제3의 용의자 B 씨에 대해 경찰은 “당시 조사를 했지만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