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시투자세액공제 수혜 여부를 두고 논란을 빚었던 삼성전자 기흥반도체공장 전경. | ||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감세 기조를 유지하면서 세수는 늘린다는, 반대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심을 했다. 이러한 모순된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이 임시투자세액공제(임투공제)를 둘러싼 기획재정부와 여당, 재계 간 공방이었다. 이러한 공방은 임투공제 존속이 결정된 뒤에도 수혜지역으로 정해진 ‘지방’을 어디로 할 것인지를 놓고 마지막까지 벌어졌다.
임시투자세액공제란 기업이 기계장치나 설비 등 사업용 고정자산을 신규 구입한 경우 투자금액의 일정액을 세금에서 감해주는 제도로 불경기시 기업 투자활성화를 위해 시행되는 제도다. 재정부는 지난해 세제개편안을 내놓으면서 임투공제가 1982년 도입된 뒤 지금까지 28년 중 20년이나 운용되는 등 기업에 대한 단순 보조금 성격으로 변질됐다며 지난해 말로 종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10대 대기업이 전체 임투공제액의 54%의 혜택을 받는 등 의미 없이 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당장 재계에서 임투공제가 폐지될 경우 올해 기업들의 투자가 급감할 것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매년 기업별로 수천억 원대의 세금이 왔다 갔다 하는 만큼 손 놓고 있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여당에서도 임투공제가 폐지되면 중소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이 문제는 법인세 인하 문제와 얽히면서 복잡하게 흘러갔다.
정부는 법인세를 당초 계획대로 2010년에도 인하하겠다고 밝혔지만 여당은 법인세를 인하할 경우 정부의 재정 건전성 회복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유예를 주장했다. 법인세를 낮춰 감세 기조는 유지하면서 임투공제를 폐지해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정부와 법인세를 유지해 세수를 확보하고 임투공제를 존속해 감세 기조를 유지하자는 여당의 안이 맞선 셈이다.
이 문제는 정부와 여당 간 타협으로 간신히 해결책을 찾았다. 즉 당초 22%에서 20%로 낮추기로 했던 과세표준 2억 원 초과 기업(중견기업 이상 모든 대기업이 이에 포함된다)에 대한 법인세 세율을 2년 유예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2년 동안 연간 3조 2000억 원의 세수가 늘어나게 됐다. 다만 임투공제의 경우 올해 1년 동안만 ‘지방’에 투자한 기업들에 한해서 투자금액의 7%를 세액공제 해주기로 결론 내렸다. 지방을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는 정부가 정하는 시행령에 따라 정하기로 했다.
여기서 다시 고민거리가 불거졌다. 지방에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이 포함되느냐, 아니냐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사전적 정의로 지방이라고 하면 수도인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회에서 정한 지방의 속뜻이나 그동안 정부가 주장해온 지방균형발전론 등을 생각할 때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이라는 의미가 훨씬 걸맞은 것이다.
그동안 시행령에서 임투공제 혜택이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은 3%, 그 외 지역은 10%로 진행되어왔다는 점에 미뤄보면 일부 수도권을 포함할 수도 있는 의미였다. 다만 기존 시행령이 정한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은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 세 곳으로 분류한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것인데 이 법이 1990년대 만들어진 것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수도권 일대를 세 권역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현재의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지방이라는 정의를 이렇게까지 고민할 필요가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녹록한 문제가 아니다. 국회에서 정한 지방이라는 정의를 흔히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듯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으로 할 경우 기흥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파주에 있는 LG디스플레이 공장, 이천에 자리 잡은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공장들이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반면 과거처럼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이외 지역으로 하게 되면 이들 공장은 임투공제 혜택을 받게 된다. 현재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은 서울과 인천 의정부 구리 남양주 하남 고양 수원 성남 안양 부천 광명 과천 의왕 군포 시흥, 이렇게 16곳이다. 지방을 어디로 정하느냐에 따라 이들 기업은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천억 원의 세금을 추가로 부담할 수도 있는 판국이 된 것이다.
국회에서 세제개편안이 통과된 초기 정부 일각에서 국회가 정한 지방을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으로 해서 시행령을 개정하려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국회에서 정한 기준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이것이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후 지자체와 재계에서 이러한 정부 흐름에 반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경기와 인천 등 지자체 입장에서는 수도권에 투자한 기업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고, 기업으로서는 당장 돈이 달린 문제였던 탓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삼성이나 LG 등이 임투공제 수혜지역에 수도권 일대를 넣으려고 뛰고 있다는 이야기는 간간이 들었다”면서 “정부에 찾아오는 관련 업계 사람들은 없었지만 분위기에 신경이 쓰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삼성이나 LG 하이닉스 등 대기업에서 보면 임투공제는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법인세 인하가 2년간 유예되면서 추가 세금 인하가 물 건너간 상황에서 임투공제 혜택마저 받지 못하게 되면 2중으로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문제로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지난해 막대한 추경 예산을 통해 경기 하향세를 막았다. 이로 인해 정부의 재정건전성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플러스(+) 성장에 이어 올해 5%의 성장을 장담했고 기업 등 민간에서 성장을 이끌어줘야 하는데 법인세 인하 유예와 임투공제 종료 등 2중 부담에 기업들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부 당국자가 “정부의 재정지출은 한계가 있고, 그 효과도 민간에 비해 적은 만큼 올해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 등이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다. 올해 성장률은 민간 분야 투자와 소비가 얼마나 회복되느냐에 달려있다”고 지적할 정도로 정부 입장에서는 민간부문 투자가 절실했다.
결국 기업들의 호소와 정부의 고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재정부는 지난 13일 ‘2009년 세제개편 후속조치 대통령령 개정사항’을 발표하면서 임투공제 지역을 과거와 같이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을 제외한 지역’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이외 지역에 위치한 기업들은 1년간 임투공제 혜택을 받게 됐다. 줄여 말하면 삼성전자 기흥반도체공장과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하이닉스반도체 이천공장 등이 결국 수혜대상이 된 셈이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