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천청사 공무원들에게 올겨울 추위는 매섭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최근 정부 과천청사 공무원들은 연초 유난히 추운 겨울 날씨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절약 방침에 실내온도 기준이 19℃에서 18℃로 내려가면서 추위를 견디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겨우 1℃ 차이고 실내온도가 18℃라면 약간 추운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거대한 건물 전체를 18℃로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창이 많은 쪽이나 복도 쪽 자리는 온도가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올겨울 가장 추웠던 14일에는 청사 관리소에 “너무 춥다. 실내온도가 규정온도가 맞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1월 초 폭설 이후 눈이 녹지 않을 정도로 혹한이 지속되면서 과천 청사 공무원들은 담요와 방석, 스웨터 등으로 중무장하고 근무를 했다. 과거에는 개인 전열기나 전기방석 등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올해는 전력난으로 인한 청와대 지시로 야근이 시작되는 오후 6시 이후에만 사용할 수 있어 제대로 활용도 못한다. 각 부처의 운영지원과에서 수시로 암행 단속반을 가동하고 있어 누구라도 적발될 경우 난방기를 압수당한다.
사무실이 춥기는 오히려 장관이나 차관 국장 등 방을 혼자 쓰는 고위직이 더욱 심하다. 사무실에 혼자만 앉아 있다 보니 체온을 나눠줄 사람마저 없기 때문이다. 한 간부는 “사무실에 혼자 있다 보니 내복을 입고도 너무 추워서 스웨터까지 껴입고 버텼다. 양말도 2개나 신었다”면서 “평소에는 기자들이 와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갔지만 너무 추우니까 방에 잘 오지도 않고 와서도 금방 간다. 미안해서 누가 와도 앉아서 이야기하다 가라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추위가 몇 번은 더 올 텐데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에너지 절약도 좋지만 이래서는 오히려 일의 능률이 안 올라가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최근 기획재정부 고위 간부가 수습 사무관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애로 사항 한 가지씩 지적해보라’고 하자 수습 사무관들이 줄줄이 “너무 춥다”고 말을 했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다. 이 고위 간부는 “춥다는 이야기는 해결해줄 수 없으니 애로사항에서 빼달라”고 답했다고 한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이 얼마 전 위기관리 회의에서 청사관리를 맡고 있는 강병규 행정안전부 2차관에게 “종로 중앙청사를 갔는데 너무 추웠고, 청와대를 가도 똑같다. 과천도 너무 춥다, 잘 좀 봐달라”고 말한 데서 공무원들의 고충을 가늠할 수 있다.
여기에 폭설도 공무원들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다. 1월 초 윤 장관 등 장관 5명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가하지 못할 정도 폭설이 내렸을 때 과천 공무원들도 지각이 속출했다. 일부에선 눈길을 다니며 일 보기도 힘든데 심지어 쌓인 눈을 치우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한 공무원은 “청사 관리소에서 공무원들에게 청사에 쌓인 눈을 치우라는 요청이 있었다. 눈은 펑펑 쏟아지고 제설도구도 없는데 어떻게 눈을 치우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공무원들이 나가서 눈을 치우지는 않았지만 넓은 청사 곳곳에 눈이 쌓여서 건설장비까지 동원했는데도 제설작업을 하는 데 며칠이나 걸렸다. 이 때문에 눈이 그친 뒤 차를 몰고 왔던 공무원들은 차가 쌓인 눈에 미끄러지면서 곤욕을 치렀다. 정부 관계자는 “아마 다음 겨울에는 이번과 같이 18℃로 실내기온을 맞추라는 지시는 없을 것 같다. 눈도 수십 년 만에 폭설이었다니까 재발할 것 같지도 않고, 이번 겨울은 평생 잊지 못할 최악의 겨울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