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9월 당시 한승수 총리로부터 4대강살리기 녹색성장컵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위)과 설을 앞두고 장보러 나온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요즘 정부 경제부처들은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불거진 경기침체 극복과 일자리 창출, 서민생활 안정이라는 정책 조합을 구성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급격히 줄어든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지만 올해부터 본격화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도 대비해야 하는 등 상호 충돌하는 정책들이 동시에 추진되면서 공무원들은 어느 곳에 더 무게를 둬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는 분위기다.
금융위기 이후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5~29세 청년층 실업자는 34만 7000명으로 전년 대비 3만 3000명이 늘어났다. 특히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29세 층의 경우 늘어난 실업자 수가 3만 명으로 전체 연령층 가운데 가장 컸다.
반면 청년층 취업자 수는 지난해 40만 명대 아래로 떨어졌다. 2007년 42만 2000명이었던 15~29세 취업자는 2008년 금융위기 여파에 40만 8400명으로 하락한 뒤 지난해 39만 5700명을 기록했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전체 연령층의 ‘쉬었음’ 인구는 2008년 3만 1000명에서 2009년 12만 3000명으로 약 네 배 늘어난 반면, 청년층은 2008년 4000명에서 2009년 4만 8000명으로 12배나 증가했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이 “직장을 가져본 경험이 있는 실업자는 고용시장이 어려워도 다시 직장을 구하려 하지만, 월급 한 번 못 받아 본 청년층의 경우 아예 취업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것처럼 청년들이 일자리 찾기를 중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1월 21일 1차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단기 일자리 대책을 통해 올해 신규 일자리 목표를 당초 20만 개에서 ‘25만 개+α(플러스알파)’로 높였다. 이를 위해 고용에 앞장서는 중소기업에 세제혜택은 물론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구직자에게도 세제혜택을 주기로 했다. 또 공공부문에서 유연근로제를 도입하고 단시간근무 채용도 허용키로 하는 등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문제는 청년층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기존 인력을 정리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이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1차 베이비붐세대의 대규모 은퇴 도래다. 올해부터 향후 9년간 은퇴할 1차 베이비붐 세대는 전체 베이비붐 출생자 713만 명 중 311만 명에 달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들을 충분히 소화해낼 만한 재정적 안전판을 갖추고 있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청년 실업에 고령 빈곤층이라는 문제까지 껴안을 수 있다.
이런 고민에서 나온 해결책이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다. 임금피크제를 통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임금을 낮추되 정년을 연장해 고령층 인력을 흡수한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전력의 경우 노사합의를 통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정년을 2년 연장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다른 기업들에서도 노동조합이 이런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렇게 고령 근로자에 대한 안전판이 강화되면 청년 일자리 공급에 주력하고 있는 정부 정책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고령 노동인력을 대거 퇴직시킬 수도 없어 정책 조합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관련 정책에서도 이러한 정책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가 목표대로 5% 성장하면 에너지 소비는 지난해보다 4.7% 늘어난 2억 5200만TOE(석유환산톤)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정부는 이럴 경우 탄소가스 배출량 감소 등 정부가 추진해온 녹색성장 기조를 맞출 수 없다고 보고 에너지 소비를 전년 대비 3%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가격체계를 손보기로 했다. 즉 에너지 가격을 올려 절약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대통령도 “에너지 가격이 현실화되면 절약하고 전기료를 아낄 수 있게 되니 잘 추진될 수 있도록 하라”면서 “에너지 빈곤층을 위한 에너지 복지 정책을 철저히 강구하고 에너지 복지 정책과 가격 정책을 정부가 동시에 발표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위해 오는 3월부터 국제 원유가격에 맞춰 도시가스 공급가를 결정하는 에너지 가격 연동제를 도입키로 했다. 또 전기요금도 시범시행을 거쳐 내년부터 에너지 가격 연동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3월부터 공공요금이 급등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럴 경우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친 서민정책은 일거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가 직접 전기·가스요금 인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청와대 미래전략비서관실이 보도 참고자료를 내고 “급격한 요금체계 조정은 물가상승, 산업계 악영향 등 국민경제에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므로 단계적으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해 에너지 가격 연동제 시행 시기를 연기한 것”이라며 “에너지 절약이나 한전 가스공사 적자를 생각하면 올릴 수밖에 없지만 물가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현실화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머리 아픈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망신살이 뻗쳤던 아이티 지원문제도 정책혼선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면서 원조 받는 나라(수혜국)에서 원조하는 나라(공여국)로 바뀐 유일한 국가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그러나 올해 초 대규모 지진이 일어난 아이티 지원을 놓고 망신만 당했다. 유럽연합이 6억 달러, 미국 1억 달러, 브라질 2000만 달러, 일본 500만 달러 및 구호품 4000만 엔 지원을 밝힌 뒤 우리 정부는 지원금과 구조활동비를 모두 포함해 1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질 출신 슈퍼모델 지젤 번천의 기부금 150만 달러보다 적다는 비난과 원조 공여국으로 국격을 높이겠다는 당초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자 뒤늦게 500만 달러로 올렸고, 다시 1000만 달러로 늘렸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해외원조를 늘려 국격을 높이겠다는 정책기조를 밝히고도 긴급구호예산은 800만 달러만 준비해놓는 바람에 망신만 당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