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주업계 선두주자 진로의 경우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며 행정소송 제기를 검토할 방침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편 공정위의 이번 소주업계에 대한 처분이 지난해 LPG업계에 수천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뒤에 이어진 담합 과징금인 탓에 재계에서는 ‘과연 다음에는 어디가 타깃이 되는 것일까’라며 긴장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공정위가 소주업계의 가격담합 의혹 실사에 나선 것은 지난해 가을. 2007년 5월과 2008년 12월 가격 인상을 실시한 소주업계가 당시 가격담합으로 부당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한 공정위는 이와 관련한 국내 11개 소주업체를 대상으로 심사를 했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공정위는 11개 소주업체에 총 2263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당시 가장 많은 과징금을 통보받은 쪽은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진로(1162억여 원). 뒤를 이어 두산 246억여 원, 대선주조 206억여 원, 금복주 172억여 원, 무학 114억여 원, 선양 102억여 원, 롯데주류 99억여 원, 보해 89억여 원, 한라산 42억여 원, 충북 19억여 원, 하이트주조 12억여 원 순이었다.
하지만 지난 2월 4일 열린 공정위 전원회에서 결정된 과징금은 총 272억여 원으로 당초 예상액을 훨씬 밑돌았다. 지난 11월 심사과정에서는 담합에 따른 매출액이 2조 원을 넘는다고 여겼지만 공정위 전원회에서 매출규모를 1조 2000억여 원 수준으로 판단한 데 따른 결과였다.
가장 많은 과징금을 부과당한 곳은 역시 진로. 전체 과징금의 61%에 달하는 166억여 원을 부과받았다. 뒤를 이어 무학 26억여 원, 대선주조 23억여 원, 보해양조 18억여 원, 금복주 14억여 원, 선양 10억여 원, 충북소주 4억여 원, 한라산 3억여 원, 하이트주조 2억여 원, 롯데주류 1억여 원, 두산 3800만여 원 순이었다.
이처럼 지난해부터 예고됐던 소주업계의 과징금이 당초 예상액보다 9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자 무엇보다 그 축소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정위 측에서는 이를 “소주업체들이 국세청의 물가안정대책에 맞춰 가격 인상폭을 낮추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전했지만 일각에서 ‘고무줄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우선 이번 수위 축소 배경을 두고 “공정위가 국세청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징계 수위를 낮춘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이후 국세청이 소주업체들의 편을 들고 나선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세청에서는 최근 공정위에 “소주 가격 인상 과정에서 국세청의 행정지도가 있었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공정위가 수천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정부기관끼리 충돌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과징금 액수를 대폭 낮춘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 일각에서는 “심사보고서에서 제시됐던 2263억 원의 과징금이 애초에 현실성이 없는 수치였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공정위의 성과중심주의가 엉터리 행정을 부른 것”이란 소주업계의 비판도 비슷한 맥락이다. 공정위가 성과에 급급해 애초에 터무니없는 액수를 산정했고 이로 인해 정작 알맹이는 없는 결과가 나왔다는 지적이다.
기존에 통보된 과징금 액수보다 현저히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업체들의 반발은 극심하다. 소주업체들은 가격 인상이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의한 것이었지 결코 담합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시장점유율 50%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던 진로가 국세청에 가격을 인상해 신고했기 때문에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가격을 올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에서는 “가격의 신고가 ‘사후신고’로 이뤄지기 때문에 소주업체들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1999년 9월부터 소주의 가격은 기존의 사전신고제도에서 사후신고로 바뀐 상태다. 때문에 시장에 이미 제품의 가격이 결정돼 나간 후 국세청에 신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업체들이 사전 합의를 거쳐 소주가격을 담합한 후 국세청을 핑계거리로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며 “소주업체들이 사장들 모임인 ‘천우회’를 통해 사전 가격담합을 한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과징금 부과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과징금이 액면 그대로 다 납부될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과징금을 부과 받은 소주업체들이 이의신청과 행정소송 제기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진로의 경우 소주업계 선두주자로 공정위의 이번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진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까지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았던 기업들 중 행정소송을 거쳐 공정위 결정이 잘못됐다는 법원 판결을 받은 경우가 30건 중 11건에 이른다”며 “내부적으로 검토를 거쳐 빠른 시일 내에 행정소송을 진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과징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곳은 ‘처음처럼’으로 업계 2위를 달리고 있는 롯데주류가 유일하다. 지난 11월 받았던 심사보고서보다 예상액을 훨씬 밑도는 과징금이 부과됐기 때문이라는 게 주변의 해석이다. 공정위 측에서는 “롯데가 두산주류BG를 인수한 시점이 2009년 3월이었기 때문에 가격인상 담합의 근거가 된 2007년 5월과 2008년 12월에서 빠졌기 때문”이라고 과징금이 크게 줄어든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공정위가 지난해 LPG 가격담합에 수천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이어 올해 소주가격 담합까지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자 ‘과연 다음에는 어떤 업계가 타깃이 될까’가 재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일부 ‘외식업체’가 다음 타깃이 될 것이란 설들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사안들에 대해 알려줄 수는 없다”며 “다만 제약업계 리베이트에 관해 경실련의 신고로 제약업계의 담합 사실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맞다”고 전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