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 이재용 부사장 | ||
올해 재벌 오너일가 인사들 중 가장 높은 배당액을 챙기게 된 인물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다. 재계 서열 1위 그룹 총수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준 효자종목은 지난해 실적이 호전된 삼성전자다. 이 전 회장은 삼성전자 보통주 498만 5464주(지분율 3.38%)와 우선주 1만 2398주(0.05%)를 보유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이 수령할 배당액은 약 374억 원.
이 전 회장은 삼성물산 주식 220만 6110주(1.41%)도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 1월 28일 보통주 1주당 500원씩의 현금배당을 결정해 이 전 회장은 여기서도 약 11억 원을 지급받게 됐다. 이로써 이 전 회장이 올해 챙길 배당 총액은 385억 원에 이른다.
이밖에 이 전 회장 부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은 삼성전자 보통주 108만 3072주(0.74%), 이 전 회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은 삼성전자 보통주 84만 403주(0.57%)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받을 배당액은 각각 81억, 63억 원이다.
이건희 전 회장 일가는 이번 배당을 통해 총 529억 원을 손에 쥐게 됐다. 그런데 이 돈이 계열사 지분 매입에 쓰일 가능성은 엿보이지 않는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재용 부사장이 삼성에버랜드 주식 25.1%를 보유해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는 데 큰 지장은 없는 상태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이 전 회장 일가가 턱없이 낮은 지분율로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문제점을 제기해 왔다. 지난 2월 17일 삼성전자 주식 종가 77만 9000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삼성전자 지분율 1% 늘리는 데 드는 비용은 1조 1490억 원이 된다. 이 전 회장 일가의 배당액 529억 원으로는 삼성전자 지분을 고작 0.05% 사들일 수 있다.
지난해 삼성 특검 수사를 통해 이재용 부사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를 가능하게 해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의혹’ 사건은 무죄로 결론이 난 바 있다. 수사당국이 사실상 이재용 부사장의 그룹 지배력 승계의 정당성을 공인해준 만큼 아쉬울 것 없을 이 전 회장 측이 이번 배당액을 삼성전자 지분 늘리기에 활용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현대·기아차그룹은 현재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형태의 순환출자구조를 지니고 있다. 정몽구 그룹 회장은 현대모비스(6.96%) 현대차(5.17%) 현대제철(12.58%)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두루 보유한 동시에 계열사 간 물고 물리는 지분구조를 활용해 그룹을 장악하고 있다.
문제는 정 회장의 뒤를 이을 외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부회장으로의 승진, 그리고 최근 현대차 등기이사 선임을 통해 경영권 승계 가속페달을 밟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대관식’으로 가는 필수 코스인 지분 확보 측면에선 그다지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위), SK그룹 최신원 회장, 최태원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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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분율로 치면 0.08%에 불과하다. 정 부회장이 승계용 실탄으로 쓰기 위해선 글로비스 지분 보유를 통한 배당액 수준을 넘어 글로비스 지분 매각대금 정도가 필요한 셈이다. 정 부회장 명의 글로비스 지분을 모두 처분하면 기아차 지분 10% 이상 확보가 가능하다. 그런데 지난 2006년 불거진 현대차 비자금 사건 수습과정에서 정 회장 측이 글로비스 지분을 통한 거액의 사회 환원을 약속했던 점이 걸린다.
재계에선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원활한 승계를 위해 정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간의 합병, 혹은 현대모비스가 보유한 현대차 주식을 글로비스에 전량 매도하는 방법이 거론되곤 한다. 글로비스-현대모비스 합병의 경우 ‘정의선→현대모비스·글로비스 합병법인→기아차→현대차’ 구조가 가능해진다. 글로비스가 현대모비스 명의 현대차 지분을 다 사들인다면 ‘정의선→글로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탄생도 기대해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정 부회장이 이번 배당액을 기아차 지분 취득보다 글로비스 지분 추가 매입에 투자하는 데 마음을 둘 거라 보는 시선도 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SK C&C 지분 44.5%(2225만 주)를 보유해 ‘SK C&C→SK㈜→SK텔레콤·SK네트웍스’로 이뤄진 그룹 지배구조를 장악하고 있다. SK C&C는 지난 1월 27일 보통주 1주당 330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이로써 최 회장은 73억 원의 배당액을 받게 됐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최 회장이 지주사 SK㈜가 아닌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SK C&C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는 것을 비판해 왔다. 현재 최 회장 명의 SK㈜ 지분은 1만 주로 지분율은 0.02%에 불과하다.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SK C&C를 통한 지배구조를 고수하려는 최 회장이 이번 배당액으로 SK㈜ 지분을 매입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SK 오너일가에서 배당액을 통한 지분 매입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은 최 회장 사촌형인 최신원 SKC 회장일 것이다. 최종건 SK 창업주 아들인 최신원 회장은 지난 1998년 최종현 2대 회장 사후 최태원 회장이 총수에 오르면서부터 줄곧 계열분리 관측을 낳아왔다. 그러나 지분율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율은 3.32%. 틈날 때마다 SKC 지분율을 높여왔지만 최태원 회장의 SK㈜가 보유한 SKC 지분 42.50%의 벽이 너무 높아 보인다.
지난해 SK 주변에선 “최신원 회장이 경영을 맡아온 SKC와 SK텔레시스 외에 SK네트웍스와 워커힐에 대한 경영권을 최태원 회장에게 요구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지난해 9월 SK네트웍스의 워커힐 흡수 합병 결정 이후로 최신원 회장은 SK네트웍스 지분율을 조금씩 높여왔으나 아직은 지분율 0.07%(16만 2688주)에 불과한 상태다.
SKC는 지난 1월 27일 보통주 1주당 250원 배당을 결정했다. 최신원 회장이 수령할 배당금은 약 3억 원. 최신원 회장은 그밖에 SK네트웍스의 보통주 125원 배당 결정으로 약 2000만 원을 받게 된다. 이는 SKC 2월 17일 종가 1만 7350원 기준으로 볼 때 1만 8000여 주, 같은 날 SK네트웍스 종가 1만 450원 기준으로 3만여 주를 각각 사들일 수 있는 금액이다. 이를 통해 최신원 회장은 SKC와 SK네트웍스의 지분율을 각각 0.05%, 0.01%씩 늘릴 수 있다. 경미한 양이지만 최신원 회장의 독립 경영 의지 표출을 위해서라도 계열사 지분을 높이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있다.
▲ LG그룹 구본준 부회장, 구광모 씨 | ||
SK 측은 “최기원 이사장이 SK C&C 지분을 팔거나 다른 계열사 지분을 사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2900억 원대 SK C&C 지분을 갖고 있는 최기원 이사장이 마음만 먹으면 최신원 회장을 능가하고도 남을 SKC·SK네트웍스 지분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 재계 인사들이 주목하고 있다.
LG그룹의 지분구조에선 구본무 그룹 회장 양아들 구광모 씨의 지분율 증가 추이가 최대 관심사라 할 수 있다. 그룹 측은 지금껏 구광모 씨의 경영권 승계를 공식화한 적이 없지만 재계에선 ‘구인회 창업주-구자경 명예회장-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지는 LG가 의 장자승계구도를 구광모 씨를 통해 4대째 이어갈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구광모 씨는 그룹 지주사인 ㈜LG 지분 4.72%(814만 6715주)를 보유해 구본무(10.68%)-구본준(7.63%)-구본능(5.03%) 형제에 이은 4대 주주에 올라있다. ㈜LG는 지난 2월 11일 보통주 1000원의 현금 배당을 결정했다. 이로써 구광모 씨는 약 81억 원을 배당받게 됐다. 구 씨는 LG상사 지분 1.52%(58만 8461주)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월 28일 LG상사가 보통주 200원 배당을 결정함에 따라 구광모 씨는 LG상사에서도 1억 원이 넘는 배당액을 받게 됐다. 구광모 씨의 이번 배당 총액은 ㈜LG 2월 17일 종가 6만 5300원을 기준으로 볼 때 12만여 주를 매입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는 ㈜LG 지분율 0.07%에 해당하는 수치로 구광모 씨는 지분율을 종전의 4.72%에서 4.79%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그동안 LG 오너일가에선 구광모 씨의 지분율을 늘리는 데 적극적이었다.
구광모 씨 못지않게 그의 삼촌인 구본준 부회장의 지분율 추이에도 눈길이 쏠린다. 구 부회장은 현재 그룹 경영에서 구본무 회장 다음 가는 영향력을 지닌 오너 경영인으로 평가받는다. 구 부회장은 ㈜LG 지분 7.63%(1316만 9448주) 보유를 통해 약 132억 원의 배당액을 받게 된다.
구 부회장은 LG상사 지분 3.01%(116만 5829주)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로 여기서도 2억 원이 넘는 배당액을 수령하게 된다. 구 부회장이 이번 배당 총액을 전부 ㈜LG 지분 매입에 투자한다면 20만여 주를 살 수 있다. 이는 ㈜LG 지분율 0.12%에 해당한다. 구 부회장이 ㈜LG 지분율을 현재의 7.63%에서 7.75%까지 높일 수 있는 셈이다.
지난 2004년 말 구광모 씨가 구본무 회장 아들로 입양된 이후 그의 지주사 지분율이 수직상승해온 반면 구 부회장 지분율엔 큰 변동이 없었다. 그런데 올 초 구광모 씨가 9만 3000주, 구본준 부회장이 9만 주를 나란히 사들이면서 향후 지분경쟁 전망을 낳고 있다. 이번 현금 배당이 조카 삼촌 간 지분경쟁을 부채질하게 될지 재계의 시선이 쏠릴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