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2월 2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JP모건이 주최한 ‘한국 CEO 콘퍼런스’에 참석해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공모가액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유 주식 중 일부가 구주 매출에 포함될 수 있도록 협의할 예정”이라 밝혔다. 신세계가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을 팔아 투자 확대와 수익성 개선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신세계는 삼성생명 주식 271만 4400주를 갖고 있다. 지분율 13.57%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20.76%) 삼성에버랜드(19.34%)에 이은 3대 주주다. 최근 삼성생명 주식의 장외시장 가격이 100만 원을 웃도는 것을 감안하면 삼성생명 상장 이후 신세계 보유 지분의 주식가치가 최소한 2조 7000억 원은 될 전망이다. 이건희 전 회장과 계열사들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이 45.76%에 달해 신세계가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해도 삼성 지배구조에 피해를 줄 우려는 없어 보인다.
정 부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매각을 통한 투자 언급은 올해 들어 신세계가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확장경영을 펼칠 것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신세계가 지난 2월 25일 공시한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신세계 매출액은 10조 16억 원, 영업이익은 9193억 원, 당기순이익은 5680억 원이었다. 상장을 앞둔 삼성생명 지분을 전량 처분할 경우 신세계가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의 5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손에 쥐는 셈이다. 신세계는 올해 매출 목표를 13조 9000억 원, 영업이익 목표를 1조 100억 원으로 올려 잡고 있다.
항간에는 삼성생명 상장으로 거액을 쥐게 될 신세계가 금융업 등 비유통 업종에 진출해 포트폴리오를 넓히려 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와 관련해 신세계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상장될 경우 주식을 팔아 투자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은 이전부터 갖고 있었던 것”이라며 “어떤 분야에 투자할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고 밝혔다.
신세계 안팎에선 정 부회장의 경영에 대한 의욕이 그 어느 때보다 넘친다고들 입을 모은다. 그동안 전문경영인들에 가려져 ‘조언자’ 역할에 머물렀던 정 부회장은 지난 11월 신세계 총괄 대표이사직을 꿰차면서 경영 중심에 서게 됐다. 종전까지 경영을 쥐락펴락해온 전문경영인 구학서 부회장은 회장으로 승진했지만 대표이사직을 정 부회장에게 넘겨주면서 ‘정용진 체제’의 본격 개막을 알린 상태다.
최근 유통 라이벌 롯데가 GS마트와 GS백화점을 인수한 것은 정 부회장에게 큰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GS마트 인수전에만 참가한 신세계에 비해 GS마트와 GS백화점 동시 인수를 추진했던 롯데가 유리했다는 전망이 애초부터 제기됐지만 정 부회장이 대표이사가 된 이후 첫 대형 M&A 도전에서 쓴잔을 마셨다는 게 달갑지 않을 듯하다.
재계에선 정 부회장 체제로 접어든 신세계가 대형 M&A는 물론 광고 마케팅에도 투자를 늘려 정 부회장 체제 안착에 최선을 다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울 충무로에 있는 신세계 본점에 수십억 원대 초대형 전광판 설치를 통해 신세계 이미지 마케팅 강화에 나설 것이란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지난해 신세계 본점 인근의 회현고가차도 철거로 주변의 넓은 시야를 확보한 까닭에서다. 이에 대해 신세계 백화점 관계자는 “(전광판 설치는) 몇 번 논의된 사안이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정 부회장은 오는 3월 5일 주주총회를 통한 정식 선임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정 부회장의 신세계 지분율은 현재 7.32%(137만 9700주)로, 이명희 회장의 17.30%(326만 2243주)에 한참 못 미치는 상태다. 대표 경영자로서의 안착과 추가 지분 매집이란 두 마리 토끼를 좇아야 하기에 이명희 회장과 주주들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기 위한 사업 실적과 명분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인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