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장을 앞둔 삼성생명의 장외주가는 벌써부터 100만 원을 웃돌고 있다. | ||
생보상장계약자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위원장 정성일)는 지난 2월 22일 삼성생명 유배당 계약자 2802명이 삼성생명을 상대로 ‘미지급 배당금 10조 원을 지급해 달라’는 내용의 소장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했다고 밝혔다. 조만간 상장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될 삼성생명이 회사 이익 발생에 기여한 계약자들의 배당 기회를 배제하고 주주들에게만 이익을 분배했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생보사에서 발생한 이익이 주주들뿐만 아니라 생보사 자금 밑천이 된 보험 계약자들에게도 돌아가야 한다’는 논리는 지난 10년여 동안 생보사 상장을 둘러싸고 갖은 논란을 낳아왔다. 그런데 지난 2007년 한국거래소 산하 생보사상장자문위원회(자문위)가 계약자들에게 배당액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삼성생명을 비롯한 생보사들의 상장작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에 대해 대책위의 주축인 보험소비자연맹(보소연) 조연행 사무국장은 “거래소 산하 기관이 단지 자문해준 결과일 뿐인데 (삼성 측이) 마치 법적 구속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여긴다”고 주장했다. “계약자들에게 마땅히 지급돼야 할 이익을 분배하라는 취지의 소송인데 제3자인 자문위의 결론이 법적 잣대로 적용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 측은 “(계약자 배당 문제는) 거래소 산하 자문위에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1년 3개월 동안 심도 있게 연구한 끝에 내린 결론이며 국회 공청회까지 거쳐 확정된 것”이라 밝혔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오히려 그동안 계약자들에 비해 주주들이 더 적은 이익을 배분받아 왔다”며 “계약자들이 피해를 봤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번 소송으로 인해 5월로 예정된 상장이 지연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대책위 측은 “(삼성생명) 상장이 쉽게 진행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상장을 준비하는 회사가 중대한 소송에 직면해 있을 경우 당국에서 상장심사를 유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조연행 사무국장은 “(삼성생명이) 거액 소송을 당한 상태라서 상장을 위한 주식 공모 흥행에 성공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외국 자본도 끌어들여야 할 텐데 10조 원 소송이 걸린 회사에 누가 쉽게 투자하려 하겠는가”라고 밝혔다. 조 사무국장은 “만약 한국거래소가 이번 소송에 대한 검토 없이 상장을 승인해줄 경우 상장금지가처분소송도 고려할 것”이라 덧붙였다.
▲ 지난 2월 22일 삼성생명 유배당 보험 계약자 2802명의 대표와 소송 대리인들이 ‘삼성생명은 상장 전에 유배당 계약자들에게 이익 배당금 10조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소장을 접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상장은 삼성생명의 20년 숙원 사업. “1990년대엔 주식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아 상장을 미뤘으며 2000년대에 들어선 이번 배당 논란 같은 문제들에 발목을 잡혀왔다”는 것이 삼성생명 측 입장이다. 이에 대해 대책위 측은 “우리는 지금 삼성생명의 상장 이익을 내놓으라는 게 아니다”라면서 “상장 이전에 적법한 배당액을 내놓으라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라 밝힌다.
이 같은 논란에도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을 상장시키려는 데는 10년여 동안 지속돼온 삼성자동차 채권단과의 갈등을 털어버리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지난 1999년 삼성차가 법정관리에 들어서면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부채 2조 4500억 원 탕감 대가로 삼성생명 주식 350만 주를 주당 70만 원으로 계산해 채권단에 넘겼다. 이는 삼성생명을 주당 70만 원 이상에 상장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였다.
그런데 상장이 지연되자 채권단은 지난 2005년 12월 이 전 회장과 계열사들을 상대로 삼성차 부채 2조 4500억 원과 연체이자 2조 2880억 원 등 총 4조 7380억 원 상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지난 2008년 1월 1심 재판부는 삼성 측에 “(채권단에) 2조 3000억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현재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과 채권단을 상대로 조정절차에 나선 상태로 삼성생명 상장 이후에 최종결론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그룹 측은 삼성생명이 주가 100만 원을 넘는 상태로 상장되면 채권단과의 소송을 원만하게 마무리 지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장외주식시장에서 삼성생명 주가는 100만 원을 웃돌고 있다. 그러나 대책위 측 장담대로 이번 삼성생명 소송 같은 외부 요인이 삼성생명 상장을 위협하거나 주가 상승을 저해할 경우 자칫 이 전 회장 일가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 이건희 전 회장 일가. 부인 홍라희 씨 뒤로 아들 이재용 부사장이 보인다. 사진공동취재단 | ||
이 경우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지주사 선정이 불가피해진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이루고 있다. 현행법상 특정 회사가 보유한 금융자회사 주식 가치가 그 회사 자산의 절반이 넘을 경우 그 회사는 금융지주사로 지정되며 금융지주사는 비금융 자회사(손자회사)를 보유할 수 없다.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사가 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7.21%)을 처분해야 하는 셈이다.
삼성전자 지분율이 3.38%에 불과한 이 전 회장이나 고작 0.57% 지분을 갖고 있는 이재용 부사장이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인 셈이다. 지난 2월 18일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차 부채 소송 결과에 따라 삼성생명 최대주주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서 삼성에버랜드로 바뀔 수 있으며 이 점이 상장심사요건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생명 적정 주가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온 점 또한 눈길을 끈다. 지난 2월 16일 대법원 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삼성차 채권은행인 국민은행이 서울중부세무서를 상대로 낸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삼성생명 주식을 1주당 70만 원으로 전제해 법인세를 부과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도 위와 같은 이유로 하나은행 신한은행 한국씨티은행 등이 서울남대문세무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이 ‘상장되지 않은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70만 원 가치로 본 것은 부당했다’는 해석을 내려준 셈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생명 측은 “상장에 영향을 미칠 판결은 아니다”고 밝힌다. 그러나 삼성차 채권단 소송 등 오랜 고민을 삼성생명 상장을 통해 털어버리려는 이 전 회장에게 삼성생명 상장을 둘러싼 각종 잡음이 그다지 편하게 다가가진 않을 듯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