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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를 포함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합의되면서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미칠 영향이 관심사다. 사진은 이건희 전 회장. | ||
지난 2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일반(비금융) 지주사가 금융 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금융사들은 일반 지주사 산하의 중간금융지주사로 편입돼야 한다’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3개 이상의 금융사를 거느리고 있거나 금융사 자산규모 합계가 20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재벌그룹)이 지주회사제 전환을 원할 경우 중간금융지주사를 설치해야 한다. 여기엔 삼성 현대차 롯데 한화 동양 동부, 6개 재벌이 포함된다.
이번 여야 합의를 통해 재계와 정치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삼성그룹이다. 그동안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선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3%대의 삼성전자 지분만을 갖고도 삼성전자를 장악할 수 있는 이른바 ‘환상형’ 순환출자구조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 재벌들 중 삼성이 지배구조와 관련해 가장 많은 논란을 낳아온 만큼 이번 여야 합의가 삼성 지배구조에 미칠 영향에 큰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삼성생명을 비롯해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화재 등 여러 금융 계열사를 보유한 만큼 지주회사제 전환의 경우 중간금융지주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 경우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들 중 중간금융지주사 요건에 가장 근접한 곳은 삼성생명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카드 지분 35.29%, 삼성증권 지분 11.38%, 삼성화재 지분 10.36%를 각각 보유해 이 회사들의 최대주주 자리를 꿰차고 있다. 삼성생명은 국내 1위 생명보험사로 오는 5월 상장을 준비 중이며 현재 장외시장에서 주가 100만 원을 넘나들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회사 규모나 가치를 볼 때도 중간금융지주사로서 손색이 없는 셈이다.
삼성그룹이 지주회사제로 전환하려면 현재의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서 핵심 축인 삼성에버랜드가 가장 유력한 지주사 후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삼성생명이 그룹 지주사 삼성에버랜드의 지배를 받는 동시에 다른 금융사들을 지배하는 중간금융지주사가 되려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현행법상 지주회사제하에서 보험·증권업을 하는 자회사(삼성생명)가 산업 자회사(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할 수는 있지만 최대주주로서 지배할 수는 없는 까닭에서다. 즉, 지주회사제 전환의 경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 지위를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현재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2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삼성전자 2대주주는 지분 4.02%를 보유한 삼성물산이다. 지주회사제 전환을 위해 삼성생명이 삼성물산에게 최대주주 지위를 넘겨주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선 삼성생명이 지분 3.19% 이상을 매각하거나 삼성물산이 3.19% 이상의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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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생명 건물 | ||
삼성생명이 삼성물산에 삼성전자 주식을 넘기든가 혹은 삼성물산이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추가로 사들이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삼성 측은 “가능한 방법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지분율 1%에 1조 원씩 하는 삼성전자 주식을 삼성물산이 한꺼번에 사들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설령 삼성물산에 그만 한 돈이 있다 해도 삼성전자 지분 매입 안건이 주주총회에서 통과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보탰다.
삼성물산이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보를 위해 회사 돈 수조 원을 삼성전자 지분 매입에 쏟을 경우 주주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주주들은 삼성물산이 그 돈으로 배당액을 늘리든지 아니면 신규 투자를 해서 회사 가치를 키우길 바랄 것이란 뜻이다. 회사 돈을 오너의 지배력 강화에 썼다는 비난여론 역시 피할 수 없을 듯하다.
결국 남는 방법은 이 전 회장 일가가 삼성전자 지배에 필요한 추가 지분을 확보하는 길뿐이다. 그러나 지금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 전 회장 일가가 지주회사제 전환을 위해 수조 원의 사재를 지분 매입에 투자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사로 삼는 과정에서 다른 더 큰 문제점들이 불거질 수 있기에 삼성은 이번 여야 합의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순환출자구조를 고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결국 삼성이 지주회사제 전환을 결심하기 위해선 또 다른 법 개정이 필요한 셈이다. 삼성 관계자는 “금융 자회사가 최대주주로서 산업 자회사 지분을 보유할 수 있게 돼야 가능할 것”이라 밝힌다. 결국 지주회사제하에서도 삼성생명이 최대주주로서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것이 가능해야 지주회사제 전환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지주회사제가 국내에선 가장 선진적인 지배구조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 해외에선 채택 사례가 높은 편은 아니다”라면서 “상당한 비용과 복잡한 절차를 감수하고 지주회사제로 전환했을 때 뭔가 실익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삼성 입장에선 그다지 얻을 것이 없다”고 못 박았다. 단지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지주회사제 전환’이란 엄청난 출혈을 감수할 때는 아니라는 뜻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