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개각을 거의 하지 않아 인사 적체를 부추기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이명박 정부 들어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는 기획재정부로 통폐합됐고,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는 교육과학기술부로 합쳐졌다.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는 지식경제부로, 건설교통부와 해양수산부는 국토해양부로 변신했다. 또 문화관광부는 문화관광체육부, 농림부는 농수산식품부,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가족부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부처가 통폐합된 지 2년 가까이 돼가고 있지만 부처내부 융화는 아직 요원하다는 평가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국토부다. 파워가 강했던 건교부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던 해수부가 합쳐지다 보니 해수부 라인이 인사에서 밀리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커서 구성원 간 융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거 해수부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국토부 2차관 산하 부서에서는 건교부 라인인 1차관 산하부서에 비해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적다는 점에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건설이나 교통 등의 내용만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해양 쪽 업무는 제대로 홍보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사교류도 거의 없어서 해수부 출신들이 건설이나 교통 등 건교부 업무를 맡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간혹 건교부 출신이 해양 쪽 업무를 맡고 있지만 연수를 나가거나 쉬러 오는 것이라고 보는 눈길이 강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새로 들어온 사무관들도 해양 쪽 업무를 꺼리는 상황이다. 최근 신임 사무관들에 대한 인사가 있었는데 해양 분야로 발령받는 한 사무관이 눈물을 보였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통합된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인사 불만이 적지 않다. 정통부 출신들은 방송위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직급을 받고 있다는 점과, 옛 정통부보다 조직이 축소돼 승진이 어려워졌다고 입이 나와 있다. 방송위 출신들은 통합 당시 할당된 정원보다 수가 줄었다고 불만이다.
국가청렴위원회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이 합쳐진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청렴위 출신들이 인사평가에서 대민업무가 많은 고충위 출신이 실적을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며 평가시스템 재정비를 요구하기도 했다. 게다가 국민권익위는 출신 부처별로 건물과 층을 따로 사용해 부서 통합 효과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비판도 있다. 지경부도 과거 재정부와 과기부 출신들이 1층 사무실에서 근무해 부내 의사소통에서 제외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부처 간 통합으로 부처가 지나치게 거대해지거나, 이리저리 쪼개지면서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후자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과학기술분야다. 과학기술분야는 이명박 정부 들어 방통위와 지경부, 교과부로 나눠졌다. 소프트웨어는 방통위가, 하드웨어는 지경부와 교과부가 맡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무너지는 하드웨어 불패(不敗) 신화-애플 사례로 본 성공의 법칙’ 보고서에서 “(하드웨어의 성공을 위해서는) 혁신적인 하드웨어 제품을 완성한 이후에도, 소비자와의 지속적인 교감을 통해 제품을 발전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결합되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담당부서가 세 개로 쪼개진 셈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정보통신부에서 우편 기능을 떼어낸 뒤 방송위원회와 합쳐 방통위를 만들어 냈다. 방송통신 융합 시대에 걸맞은 부처를 만든다는 당초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뤘지만 최근 스마트폰 열풍에서 드러났듯이 시대 변화를 뒤따라가는 데 급급한 상태다. 스마트폰의 성패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달려 있지만 소프트웨어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방통위는 방송통신 융합에만 매달려 있는 것. 특히 업계에서는 방통위가 공중파 추가 선정 등 정치적인 이슈에 매몰돼 소프트웨어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난이 적지 않다.
하드웨어를 담당하는 지경부는 과거 산자부 시절처럼 과학 연구개발 분야에서 산업정책처럼 ‘속도전’을 감행하다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지경부와 함께 하드웨어 분야를 맡고 있는 교과부는 대입과 사교육 업무 등 과거 교육부 일에 치여 과학기술 업무는 찾아보기 힘든 상태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외국어고 폐지, 대학 등록금, 사교육 규제, 자율고 파문 등 각종 논란거리가 넘치다 보니 과학기술은 소홀히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부처 통폐합으로 소홀히 다뤄지는 영역이 생기면서 관련 단체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나 반발이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최근 한국선급 회장 선거다. 한국선급은 선박검사와 연구개발, 품질인증, 외국 선급과의 업무협정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단체로 해외에 15개 지부를 두고 있을 정도로 힘이 강한 단체다. 정부는 오공균 회장의 사퇴를 은근히 압박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오 회장은 이를 거부하고 공개 재선에 나서 찬성 74표, 반대 4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재선됐다. ‘이명박 정부가 해수부를 공중분해시키고, 해수부 라인을 인사에서 물 먹이고 있다’는 해양업계의 평가와 반발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평가다.
IT(정보기술)업계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영국의 유명 경제분석기관 EIU가 세계 6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IT 경쟁력 순위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2008년 8위에서 2009년 16위로 추락했다. 또 같은 기간 세계경제포럼(WEF)의 네트워크 준비지수는 9위에서 11위, IBM 디지털 경제수용도 순위는 15위에서 19위로 떨어졌다. 이에 업계에서는 ‘IT단체 총연합회를 만들어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는 말마저 나오고 있다.
부처 통폐합에 따른 인사적체 불만도 적지 않다. 장·차관이나 국장 자리가 줄어들면서 올라갈 자리가 없어지자 그 여파가 과장급 인사에까지 미치고 있다. 가장 인사적체가 심한 곳은 재정부다. 과거에는 각 부처 장·차관 등으로 나갈 길이 많아 어느 정도 해소가 됐는데 현재는 타 부처들이 너무 커진 탓에 자리를 노리기 부담스러워졌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가 개각을 거의 하지 않는 것도 인사적체를 부추기고 있다.
중앙부처의 한 관계자는 “부처 통폐합에 따른 ‘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실’만 잔뜩 나타나고 있다. 부처 통폐합에 대해 내부인인 공무원들이 인사적체로 불만이 높은 데다 외부인인 관련단체들은 자신들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박탈감을 표출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상태로는 오래가기 힘들다. 이 정부가 끝난 뒤나, 끝나기 전에 일부 부처가 다시 쪼개지는 등 부처 간 합종연횡이 다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