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주)대우증권그린코리아기업인수목적회사의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기념식을 개최했다. 연합뉴스 | ||
스팩(SPAC·Special Purpose Aquisition Company)은 주식공모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바탕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명목회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스팩은 법인 설립, 기업공개 및 상장, M&A라는 3단계를 통해 목적을 달성한다. 다른 기업과의 M&A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이에 따라 자본이득을 투자자에게 분배하기 위해 설립된 일종의 특수회사로 미국에서 개발돼 유럽에서 대체 투자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증권사로서는 투자은행(IB) 역량을 강화하는 블루오션이 될 수 있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스팩의 서막은 일단 시장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미래에셋 스팩 청약 결과 최종 경쟁률이 163.68 대 1을 기록했고 일반청약자 증거금으로 8184억 원이 들어왔다. 대우증권 스팩도 86.9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청약 자금이 1조 1415억 원 몰렸다. 단 2개의 스팩 공모시장에 2조 원이 넘는 자금이 쏠린 것이다.
스팩 열풍은 이미 지난해 설명회 등 세미나에서 예고된 바 있다. 지난해 한국거래소 1층 대회의실에서 첫 공청회를 열었을 때 300석 규모의 대회의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스팩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에도 귀가하지 않고 끊이지 않는 질문 공세를 펼쳤다. 당시 업계에선 생각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특히 비상장 기업들도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다. 세미나장 한쪽에 마련한 스팩 개별 상담 코너에는 “어떻게 하면 스팩과 M&A를 할 수 있느냐”며 상담을 요청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매일 30∼40명씩 줄을 이었다.
스팩 상장은 개인투자자들이 M&A시장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스팩은 공모를 통해 개인투자자로부터 기업 합병자금을 수혈받게 된다. 이후 3년 내 우량기업을 합병하고 차익을 얻는 것이 목표. 개인투자자들이 합병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주목된다. 스팩이 합병 대상을 결정하더라도 주주총회에서 참석 주주의 3분의 2,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을 얻지 못하면 합병이 무산된다. 그만큼 개인투자자의 영향력이 커진 셈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운영자금을 제외하고 최소 90% 이상을 별도 예치토록 하는 규정이 있는 것도 특징이다. 만약 스팩이 기업 합병에 실패하더라도 투자자들이 원금의 90~95%(이자 포함시)가량을 건질 수 있도록 하는 것. 도입 초기인 만큼 투자자들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조치다.
블룸버그 조사에 따르면 스팩 초기 시장일수록 수익률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에서 M&A 이후 재상장할 당시 스팩의 단순 평균 수익률은 2003년 98.1%. 그러나 추후 감소세로 돌아서 2004년 18.9%, 2005년 24.8%, 2006년 4.9%, 2007년 3.2% 등 점차 하락세를 보였다. 이는 초기일수록 정보와 경험 부족으로 공모가 산정에 어려움을 겪어 스팩 공모가가 낮아지므로 높은 수익률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스팩 투자가 본격화된 2005년부터 투자자 보호가 강화되면서 과거 중소형 증권사가 참여하던 것과 달리 시티그룹, 도이체방크 등 대형 투자은행이 참여했다. 2001년부터 2007년 9월까지 M&A를 완료한 32개 스팩은 39%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하며 미국에서 괄목상대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유럽 역시 스팩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 지난 2005년 시작돼 지난 2008년까지 유럽 내 거래소에 12개 스팩이 상장해 거래되고 있다. 캐나다도 스팩 상장을 허용했으며, 일본 역시 도입 타당성을 검토하는 등 세계 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서 스팩 상장을 준비하는 곳은 총 8곳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올해 15개 안팎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가장 먼저 상장한 대우증권을 비롯해 미래에셋, 동양종금, 현대, 신한금융투자, 이트레이드, 키움, 부국증권 등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녹색성장과 신성장동력 중심의 기업을 합병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로 인해 합병 대상에 대해서는 특색을 발견하기 어렵다. 따라서 스팩 투자 전에 설립되는 스팩의 내부 특징 파악이 중요하다.
스팩은 얼마나 우량한 비상장사를 발굴해 인수에 성공하느냐에 성패가 갈린다. 바꿔 말하면 1~2년 이상 소요되는 M&A가 현실화되기 전까지는 ‘껍데기’에 불과한 셈. 이로 인해 공모가에 이어 적정 주가 등에 대해 논란이 이어질 수 있다. 상장 프리미엄에 주가가 심한 변동성을 보일 가능성이 있지만 원론적으로만 보자면 최종 목표인 기업 인수에 나서기 전까지는 주가가 상승할 요인이 많지 않다. 김성봉 삼성증권 연구원은 “대표이사의 기업 발굴 및 인수 역량이 관건이 되겠지만, 인수 대상 업체가 없는 상황에서는 적정 가치를 분석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투자 전에 액면가 대비 공모가격 비교를 포함해 임원진에 대한 전문적인 능력 요건 등을 따져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미래에셋증권의 미래에셋1호는 희망공모금액이 200억 원에 임원진을 최소화하고 회사 운영비 등 비용절감을 극대화해 그 몫을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구조다. 따라서 M&A가 성사되지 않아도 개인투자자에게 최대한 원금 환급을 보장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비용절감에 치중함으로 인해 경영진에 대한 전문능력 평가에서는 다소 미흡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단기 투자자금이라면 스팩 투자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규정상 M&A 유예기간은 3년. 결국 M&A가 성사되기 전까지 스팩 주가는 공모가보다 더 떨어질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스팩 주가는 초기 상장시 가장 높았다가 M&A 전까지는 점차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승현 토러스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스팩 자체의 본질 가치에는 정답이 없다”며 “적정주가는 M&A가 이뤄질 때 판단하는 것이고 이전까지는 횡보하는 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 등 선진국 경우에도 주가가 횡보하다가 M&A ‘딜’이 발표되고 나서 움직였다”고 보탰다. 전문가들은 초기에 성급한 투자를 하기보다 스팩 규정 등을 충분히 학습한 이후 장기투자의 자세로 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입을 모았다.
류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