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고 최종건 SK 창업자의 평전 출판기념회에서 최태원 회장(왼쪽)과 악수하는 최신원 회장. | ||
SK그룹 지주회사 SK㈜는 지난 12일 주주총회 결과 공시를 통해 부동산사업 강화를 골자로 하는 ‘사업목적 추가’ 내역을 알렸다. 이번 주총 의결을 통해 SK㈜가 새롭게 추가한 사업 내역은 ‘주택 건설사업 및 국내외 부동산의 개발 투자자문 운영업’과 ‘(국책사업인) 마리나 항만 시설의 설치 운영 및 이에 수반되는 부대사업’ 등 두 가지다.
SK텔레콤도 12일 주총 이후 사업목적 변경 공시를 통해 기존의 ‘동산 및 부동산 임대업’을 ‘부동산업(개발 관리 임대 등) 및 동산 임대업 신규사업 진출’로 확대한다고 알렸다. SK네트웍스 또한 12일 주총 직후 ‘종합 휴양업 및 체육시설 운영업(유원지 및 테마파크 운영업, 식물원 운영업, 골프장 체육시설 수영장 및 그 외 기타 운동시설 운영업) 진출’ 의사를 밝혔다. 지주사와 주력 계열사들을 총동원해 그룹 차원에서 부동산사업에 뛰어들 것임을 알린 셈이다.
그런데 SK그룹 내엔 이미 부동산업을 주로 하는 계열사 SK D&D가 있다. SK D&D는 실내건축 공사 및 부동산 개발 등을 주된 목적으로 지난 2004년 4월 설립된 회사다. SK D&D는 그동안 최태원 회장 사촌동생이자 고 최종건 SK 창업주 아들인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경영을 맡아온 회사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최 부회장은 SK가 맏형 격인 최신원 SKC 회장의 친동생이다.
지난 1998년 최태원 회장의 선친 최종현 2대 회장이 타계하면서 최 회장이 총수직을 물려받은 이후로 최신원-최창원 형제 계열분리설은 줄곧 재계의 관심을 끌어왔다. 분가설이 나도는 사촌동생이 주도하는 사업과 중복된 투자에 나서는 최태원 회장의 속내에 시선이 쏠릴 법하다.
사실 SK D&D는 지분구조만 놓고 보면 최창원 부회장이 아닌 최태원 회장 영향력하에 있는 회사다. 현재 최창원 부회장은 SK D&D 지분 38.76%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최 부회장이 아닌 SK건설로, 보유 지분은 44.98%에 이른다. SK건설의 최대주주는 지분 33.4%를 보유한 그룹 지주사 SK㈜. 2대 주주가 지분율 15.1%의 SK케미칼이고, 최창원 부회장도 SK건설 지분 8%를 보유하고 있지만 SK㈜의 지분율에는 크게 못 미친다. 원래 SK건설은 SK케미칼의 자회사였다가 지난해 SK케미칼이 SK㈜에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서 SK건설이 SK㈜의 자회사로 편입된 상태다.
▲ 최태원 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 ||
최태원 회장의 부동산사업 진출과 관련해 ‘최신원-최창원 형제에 대해 최태원 회장이 다른 대응법을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지난 1월 27일 SK그룹은 서울 용산역 실내광장에서 국제구호단체인 ‘기아대책’과 함께 ‘2010 SK 행복나눔 바자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SK그룹을 대표해서 나간 것은 최신원 회장이었다.
그동안 SK그룹이 주관하는 대부분의 사회공헌 행사엔 최신원 회장이 그룹 대표 자격으로 줄곧 얼굴을 내밀어 왔다. 지난해 7월 그룹 주최 바자회 자리에 참석했던 최신원 회장은 기자들에게 “(최태원 회장 계열의) SK증권 지분율을 15%까지 늘리겠다”고 밝혀 그룹 안팎을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 입장에선 속이 편치 않은 일이었겠지만 이후로도 그룹 차원의 사회공헌 행사엔 항상 최신원 회장이 나서왔다. 그동안 수많은 기부로 인해 ‘기부영웅’ 칭호를 받은 최신원 회장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예우로 풀이되곤 한다.
또 한편으론 계열분리 가능성이 희박한 최신원 회장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달래기 차원’이란 해석이 제기되기도 한다.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율은 3%대에 불과해 최태원 회장의 SK㈜가 보유한 42.5%를 넘어서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해 ‘최신원 회장이 최태원 회장에게 기존의 SKC와 더불어 SK네트웍스 경영권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최신원 회장의 계열분리 의지엔 변함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최신원 회장이 원하는 계열분리를 위해선 최태원 회장이 거액의 지분을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 최태원 회장이 무리한 계열분리를 위해 ‘제 살 깎기’를 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선은 거의 없다. 이런 까닭에 최태원 회장이 계열분리와 관련된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차원에서 최신원 회장을 극진하게 예우하려 한다는 시각이 제기되곤 한다.
반면 최창원 부회장은 SK케미칼 지분 10.18%를 보유하는 등 계열분리 여건을 갖춘 상태다. 그럼에도 최 부회장은 계열분리와 관련한 어떤 행보도 취하지 않고 있다. 계열분리 선언을 할 경우 지금까지 SK건설-SK D&D에 행사해온 지배력을 최태원 회장 측에 넘겨줘야 할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최태원 회장이 부동산사업을 본격 장착하면서 최 부회장을 향한 화력시위에 나섰다는 관측이 대두되기도 한다.
재계에선 최태원 회장이 최신원-최창원 형제에 대해 또 다른 의미의 ‘따로 또 같이’ 셈법을 들이대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사업 영역과 지분 관계와 관련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최태원-최신원-최창원 오너 사촌형제의 ‘따로 또 같이’ 경영이 향후 어떤 화음을 빚어낼지 재계의 궁금증은 날로 커가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