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9월 실시된 1차 보금자리 주택 사전예약 접수처 현장. 연합뉴스 | ||
위례신도시 보금자리주택 일반분양 사전예약 신청 첫날인 지난 3월 17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가든파이브에 마련된 접수현장 인파 속에서 박 아무개 씨(64)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현장 접수는 노약자 등 인터넷 접수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마련됐지만 직접 찾아와 상담하는 사람은 수천 명이나 됐다. 박 씨는 “수도권 최고 입지의 아파트를 주변 시세의 50~70% 수준으로 분양받을 수 있으니 로또가 따로 없는 것 아니냐”고 보탰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박 씨와 같은 의견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 김춘오 부장은 “서울은 물론 성남·하남 등 경기도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더 붐볐다”며 “보금자리주택에 대한 관심이 예상보다 훨씬 높다”고 말했다. 이처럼 올 봄 주택시장의 관심은 온통 LH가 내놓는 보금자리주택에 쏠려 있다. 민간 건설사들은 이들 보금자리주택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보고 분양 일정을 조정해 맞대결을 피하고 있을 정도다.
보금자리주택과 민간 아파트의 인기 차이는 분양률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위례신도시 보금자리 사전예약의 경우 1999가구(기관추천 특별공급 351가구 제외) 모집에 2만 9547명이 신청해 평균 14.8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김포한강신도시, 고양 삼송지구 등 수도권 주요 택지지구에서 분양된 민간 아파트는 대거 미분양으로 남았다.
건설사들은 줄줄이 분양 일정을 뒤로 미루고 있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 금호건설 54가구(일반분양 기준), 김포시 한강신도시 일신건영 803가구, 수원시 율전동 동문건설 699가구, 수원시 입북동 벽산건설 521가구, 인천시 영종하늘도시 KCC건설 738가구 등이 당초 3월 분양예정이었다가 4월로 연기된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3월 고양시 삼송지구에서 분양을 계획했다 연기한 한 중견건설사 분양팀 관계자는 “공급 예정인 아파트가 중소형으로, 보금자리주택 수요자와 일치해 같은 시기에 분양하는 걸 포기했다”며 “일단 4월로 연기했지만 분양률을 높일 방법이 없어 상황에 따라 더 연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통계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지난 3월 26일까지 분양된 아파트(주상복합 포함)는 전국 4692가구로 2월 중순에 조사된 계획 물량(1만 7334가구)대비 27% 수준에 머물렀다.
닥터아파트 이영진 리서치연구소장은 “올 초 많은 건설사들이 높은 분양계획을 잡았지만 실제 분양 실적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보금자리주택은 한정된 주택 수요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고 말했다. 보금자리주택 영향으로 인한 민간 분양 위축 현상은 4월에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3차 보금자리주택 후보지 발표, 2차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 등 수만 가구의 보금자리주택 공급 일정이 4월에도 계획돼 있기 때문이다.
먼저 보금자리주택 3차 사업지구가 3월 31일 발표된다. 주택공급 물량은 2차 보금자리지구 때와 비슷한 4만 가구 정도 될 전망이다. 4월 초부터 시장의 관심이 온통 이곳에 집중되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개발제한구역을 풀어 공급하기 때문에 수도권의 웬만한 택지지구보다 입지가 좋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히 새로 지정되는 지역 인근에서 분양을 추진하는 민간 건설사들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4월 말에는 2차 보금자리주택이 사전예약을 받는다. 서울 강남 내곡지구(1130가구), 세곡2지구(1130가구) 물량은 위례신도시 보금자리주택과 비슷한 수준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또 서울 접근성이 뛰어난 구리 갈매지구(2348가구), 남양주 진건지구(4304가구), 부천 옥길지구(1957가구), 시흥 은계지구(3522가구) 등의 수도권 보금자리주택도 내 집 마련을 준비하는 무주택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이들 지역 인근에서 분양을 준비 중인 민간 건설사들은 분양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수요가 보금자리주택으로 몰려서다. 예컨대 1차 보금자리주택지역인 고양 원흥지구는 사전예약 당시 평균 3 대 1의 청약경쟁률을 보였지만 인근 삼송택지개발지구에서 분양한 3개 아파트 단지는 미분양 물량이 대거 남았다. 결국 2차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이 진행되기 전까지 남양주와 시흥 은계지구 등에서 분양을 준비하고 있는 건설사들은 사업승인을 받아 놨지만 보금자리주택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민간 건설사들이 모두 포기 상태인 건 물론 아니다. 보금자리주택과 상관없이 ‘흥행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물량은 적극 공급하겠다는 곳도 있다. 고급화 희소성 등의 장점을 내세운 차별화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운다는 얘기다. 서울 도심의 재개발 재건축, 광교신도시, 판교신도시 등 대형 택지지구 물량이 대표적이다.
서울 도심에서 앞으로 가장 발전 가능성이 큰 곳으로 평가되는 서울 용산구 국제업무지구 인근 3개 사업장에서 동부건설, 대림산업, 삼성물산이 조합원 물량을 제외하고 각각 주상복합 아파트 48가구(121~191㎡), 135가구(164~312㎡), 119가구(185~290㎡)를 분양한다. 왕십리뉴타운(대림산업 GS건설 일반분양 1109가구), 동대문구 답십리16구역(삼성물산 두산건설 일반분양 674가구) 등에서 공급되는 대규모 재개발 아파트도 있다.
광교신도시와 판교신도시 등에서도 분양 물량이 나온다. 광교신도시에서는 대림산업, 한양 등이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 중심으로 분양을 준비하고 있고, 판교신도시의 경우 호반건설이 대형 주상복합 아파트 176가구를 분양할 예정이다. 유앤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올 봄 분양시장은 공공의 보금자리주택과 민간의 도심 재개발 재건축 아파트 등이 주도할 것”이라며 “타깃 수요층이 명확하고 경쟁력이 있는 주택만이 살아남는 양극화 현상이 계속 심화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내 집 마련을 준비하는 수요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청약저축 납입액이 높은 무주택 실수요자라면 당연히 2차 보금자리주택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울 도심과 가까운 수도권에서 이만큼 저렴하게 주택을 마련하긴 앞으로 어려울 전망인 까닭에서다. 다만 전매제한이 최고 10년이고 5년간의 의무거주기간까지 적용되므로 철저히 실거주 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청약예금이나 청약부금 가입자 가운데 중대형 중심으로 서울 도심의 알짜 재개발 물량을 원하는 사람은 왕십리뉴타운, 용산구 용산역 일대, 흑석뉴타운 등에서 새 아파트를 찾아보는 것이 좋다. 다만 이들 물량은 중대형이 많아 분양가가 다소 높을 전망이므로 자금 마련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