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얼마 전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이력서 내용이다. 물론 우스개로 만든 것일 테지만 취업 시즌, 수천 통의 이력서(자기소개서)와 마주하는 인사담당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에 버금가는 것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성의 없는 내용부터 입사할 생각이 있는지 의심이 가는 이력서도 존재한다. 인사담당자 입장에서는 촉박한 상황에서 이런 이력서들이 달갑지 않다. 상식 밖의 이력서들은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시간낭비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인사담당자들을 괴롭힌 ‘황당 이력서 열전’을 소개한다.
리서치 관련 회사에서 팀장급으로 부서 직원 선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H 씨(여·35)의 얘기다.
“이력서를 보면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알려요. 간혹 지나친 지원자들도 보이죠. 수염을 예쁘게 다듬고 찍은 사진을 붙인 지원자는 그래도 개성 있다고 봤지만 여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붙인, 다소 어이없는 지원자도 있었어요.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심지어 누가 봐도 셀프 카메라로 찍은 티가 나는 사진을 붙인 지원자도 있다더군요. 요새 지원자들은 프로그램도 잘 다뤄서 본인의 얼굴과 유럽 도시를 합성해서 마치 그곳에서 찍은 양 내기도 하는데 합격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H 씨는 “기본에 충실한 사진이 오히려 낫다”고 충고한다. 튀는 사진만으로는 면접까지 무사히 통과할 수 없기 때문. 그는 “개성이 있는 건지, 개념이 없는 건지는 인사담당자들도 바로 구분 한다”고 말했다.
보안 프로그램 회사 인사팀에 근무하는 L 씨(36)도 지원자들의 사진 때문에 면접 볼 때 어리둥절한 경험이 많다.
“특히 여성 지원자들에서 나타나는 경우인데요, 사진과 실제 눈앞에 있는 사람이 다른 겁니다. 화장만으로도 얼굴이 달라진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영 모르겠는 사람이 앉아 있는 거예요. 성형이 입사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고 해도 담당자 입장에서는 최근 사진을 제출했으면 하는 바람이죠. 한 남자 지원자의 경우는 머리카락이 별로 없는 사진을 붙였던데 면접 볼 땐 숱이 많아졌더군요. 아마도 사진을 다시 찍는 게 번거로웠거나 이력서를 제출하고 급하게 면접용으로 가발을 마련했나 봅니다.”
쓸데없는 내용만 나열된 자기소개서는 일말의 기대를 안고 끝까지 읽어 내려간 담당자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게임 기획자로 일하는 S 씨(34)는 “회사에서 원하는 건 이 사람이 얼마나 쓸모 있는 인재냐는 거지, 그리 파란만장하지도 않은 인생사를 듣고 싶은 게 아니다”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업종의 특성상 이력서에 자기소개서, 개인 포트폴리오까지 봐야 하는 입장에서 시간낭비만큼 짜증나는 일이 없단다.
“유치원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때는 반장도 했고, 친구들과 한 번 싸우지도 않고 사이좋게 지냈고 뭐 이런 이야기를 주절주절 두 장 이상 풀어놓은 자기소개서도 있었어요. 무슨 게임을 좋아했다고 나오기에 봤더니 그저 게임 이름만 나열하더군요. 제목은 다들 ‘인재를 놓치지 마세요’라고 쓰는데 놓치고 싶지 않은 인재는 드물죠.”
게임음악을 만드는 K 씨(33)도 S 씨와 의견이 같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줄지가 궁금한데 핵심을 빗겨간 자기소개서들이 태반이라고.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인지 유난히 독특한 친구들이 눈에 띕니다. 가진 재능을 활용해 직접 샘플 음악을 만들어 첨부한 사람은 누가 봐도 탐나죠. 하지만 포트폴리오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만 늘어놓은 이력서도 많습니다. 한 번은 정말 어이없게도 자신에 대해 100문 100답을 적어놓은 지원자도 있었죠. 물론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웃자고 힘들게 이력서 받는 건 아니니까요. 혈액형이 뭐고,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회사가 원하는 사항만 밝혀도 충분해요. 무조건 양으로 승부하는 건 요즘 대학 리포트 쓸 때도 안 통한다던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인사담당자들은 개인사보다는 지원자가 가진 능력을 궁금해 한다. 그래서 회사 적응 여부도 잘 드러나지 않는 길고 긴 ‘성격 설명’은 그냥 지나치고 경력사항에 눈을 돌린다. 하지만 이마저도 담당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때가 많다. 외식기업에 근무하는 C 씨(35)는 얼마 전 매장관리 직원을 뽑을 때 기억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매장 근무 경험이 많이 나열된 이력서에 눈이 가죠. 한 이력서가 딱 눈에 들어왔는데 경력이 쭉 아래로 이어지는 게 엄청 났습니다. 대단한 친구구나 했죠. 그러다가 자세히 보고 실망했어요.
근무 기간이 2개월에서 3개월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잦은 이직을 숨기는 건 일종의 불문율 아닙니까. 당당히 밝힌 점은 높이 사지만 썩 끌리진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머리 아픈 인사 담당자를 더욱 피곤하게 만드는 이력서도 있다. 식품 수입회사에 근무하는 M 씨(37)는 읽기 힘든 이력서는 뽑기도 싫어진다고 털어놓았다.
“화려한 이력에 대해 ‘있어 보이게’ 적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죠. 하지만 수십 통의 이력서를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선 반갑지 않습니다. 영어도 아니고 불어나 일어로 잔뜩 경력 란을 채우면 바쁜 와중에 일일이 사전으로 한 단어씩 찾아가며 볼 수도 없고 낭패죠. 나이에 비해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이력서도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 경험상 과장되거나 허위일 때가 많거든요. 차라리 진짜 자신 있는 경력 몇 개만 당당히 밝히는 게 나아요.”
경기일자리센터 블로그기자단으로 활동하는 E 씨(여·34)는 “이력서는 취업을 위해 넘어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이지만 생각 이상으로 많은 지원자들이 이력서 작성에 실패하고 있다”며 “일단 상식이 지켜지지 않은 이력서들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