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이자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핵심 인물로 거론되는 이창석 씨. 사진은 이 씨가 1988년 11월 14일 회사 공금 횡령과 탈세 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 씨의 핵심 재산은 단연 ‘부동산’이다. 전 전 대통령의 장인이자 5공 시절 대한노인회장을 역임했던 이규동 씨가 다수의 부동산을 물려줬기 때문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온갖 이권을 쥐락펴락했던 이규동 씨는 특히 부동산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고 전해진다. 이창석 씨는 그런 이규동 씨의 아들이다.
이규동 씨가 이창석 씨에게 물려준 대표적인 부동산이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에 위치한 일대 땅이다. 수십만 평에 달하는 이 땅은 등기부상으로는 모두 이규동 씨가 1984년 12월 5일에 증여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이 땅 역시 5공 비리 청문회 당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사들인 은닉재산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오산시 양산동 일대 임야는 현재도 지역 주민 사이에서 ‘전두환 땅’으로 통칭되고 있는 중이다.
이창석 씨는 오산시 양산동 일대 임야를 적절히 활용하며 톡톡히 재산을 불려왔다. 무엇보다 이 씨는 이 땅을 통해 전 전 대통령 일가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다는 게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씨는 특히 전 전 대통령 차남 재용 씨와 활발한 거래를 이어갔다.
2006년 12월 이 씨가 재용 씨에게 오산시 양산동 일대 46만㎡(14만 평)의 땅을 공시지가의 10분의 1도 안 되는 28억 원에 팔았던 사실은 이미 유명한 얘기다. 당시 재용 씨는 “외삼촌(이창석)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정리해주는 대가로 오산 땅을 28억 원에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재용 씨가 이 씨의 회사 경영난을 해결해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 씨. 이종현 기자
그런데 재용 씨와 이 씨와의 거래에서 수상한 점은 또다시 포착됐다. 이 씨가 재용 씨에게 땅을 팔았음에도 등기이전을 하지 않은 점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 등기이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3자에게 땅을 파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재용 씨는 이와 같은 ‘미등기전매’를 통해 양도소득세 수백 억 원을 탈루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씨가 그동안 등기이전을 숨길 수 있었던 배경은 ‘부동산 신탁회사’를 이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부동산 신탁은 부동산을 관리하기 어려운 소유자가 전문 업체에 부동산을 위탁, 관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신탁 회사는 부동산을 위탁자와 의논해서 제3자에게 임대하거나 판매하기도 하는데, 위탁하는 기간만큼은 등기상으로 소유권자가 신탁 회사로 나타나기 때문에 거래 내역을 쉽게 알 수 없다는 점이 있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등기부등본이 아닌 신탁회사 계약서에 거래 내역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다른 개인에게 명의를 신탁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신탁회사에 부동산을 맡겨 운영하는 것은 합법이다”라며 “신탁을 하다보면 또 돈이 들기에 자산가가 아닌 이상에야 웬만한 개인은 신탁 회사를 잘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신탁업체는 총 10군데로 알려져 있다. 이중 이 씨는 ㅅ 부동산신탁회사와 꾸준히 계약을 맺어왔다. 특히 이 씨는 오산시 양산동 일대 땅을 관리하면서 해당 신탁회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이 씨가 지난 2010년 (주)오산랜드마크프로젝트에 판매해 4666억 원의 거액을 챙긴 양산동 19-91 일대 땅(이규동씨로부터 물려받은 4개 필지)은 2004년부터 부동산신탁회사가 운영하면서 2010년 오산랜드마크프로젝트에 매매한 것으로 밝혀져 있다. 오산랜드마크프로젝트는 앞서 언급한 박정수 전 사장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로 이 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이 씨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오산시 양산동 19-84 일대 역시 마찬가지다. 7만 평에 달하는 이 땅 또한 2004년부터 부동산신탁회사가 관리하고 있는 중이다. 2006년과 2007년, 이창석 씨의 아들인 이원근 씨에게 일부 소유권이 넘어가며 땅이 공유되기도 했지만, 2008년 다시 소유권이 전부 부동산신탁회사로 이전됐다. 향후 또 다른 부동산 거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셈이다.
오산시 양산동 일대뿐만 아니라 이 씨가 한때 소유했던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임야를 2006년 전 전 대통령의 딸 효선 씨에게 증여하는 과정에서도 부동산신탁업체는 어김없이 동원됐다. 애초 이순자 씨가 소유하고 있던 이 땅은 1984년 이 씨에게 넘어간 후 다시 효선 씨에게 증여되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의혹이 이는 대표적인 땅으로 지목되어 왔다. 이 씨는 이 과정에 신탁회사를 끌어들여 전 전 대통령 일가를 향한 직접적인 증여를 회피한 셈이다.
민주당 전두환 전 대통령 불법재산 환수특위 최재성 위원장과 5·18역사왜곡대책위 강기정 위원장 등이 지난 6월 20일 전두환 전 대통령 연희동 자택 앞에서 불법 재산 환수를 촉구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실제로 2011년 이 씨의 압구정동 자택은 고액의 재산세를 안냈다는 이유로 강남세무서에 의해 압류된 바 있다. 하지만 이 씨 소유의 오산시 양산동 땅은 별 이상 없이 소유권이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부동산신탁회사에 맡기지 않은 자택과 달리 오산시 양산동 땅만큼은 신탁회사에 맡겨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이 씨의 ‘재산 관리 수법’은 재용 씨에게도 일부 전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용 씨 소유의 이태원 빌라가 바로 그것이다. 2008년 재용 씨는 이 씨가 이용하는 부동산신탁회사를 통해 이태원 빌라에 ‘담보신탁’을 걸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향후 검찰이 이태원 빌라에 대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유입 사실을 발견하더라도 강제집행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씨가 버젓이 합법을 가장해 전두환 비자금을 은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그냥 손 놓고 볼 수 없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다. 앞서의 황재걸 변호사는 이에 대해 “부동산신탁회사와 맺은 계약은 일단 합법이기 때문에 전두환 추징법이 통과됐다고 하더라도 검찰에서 갑작스럽게 압류나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이 씨의 부동산을 강제집행하려면 일단 합법적으로 맺은 부동산신탁회사와의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 신탁회사 입장에서는 합법적으로 맺은 계약을 손해를 보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만약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이 씨에게로 유입되고 이 씨가 재산을 은닉하려고 일부러 신탁계약을 맺었다면 ‘통정허위표시’라고 해서 계약해지사유가 될 수 있다. 계약 자체가 강제 집행을 면탈하려는 의도이기 때문에 위법으로 보는 것이다. 검찰에서 이를 보고 계약해지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상당히 쉽지 않을 것이다. 검찰이 최근 전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압수수색을 해도 부동산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건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전두환 비자금과 관련한 이창석 씨의 신탁회사 부동산의 경우 특별법을 제정해 압수할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전두환 비자금의 핵심 관리자로 지목되고 있는 이창석 씨는 부동산신탁제도라는 합법적인 ‘방패막이’를 이용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자금을 버젓이 숨겨 놓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뻔히 그 사실을 알면서도 당장 손을 쓸 수 없다는 게 전두환 비자금 규명의 또 다른 맹점이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