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 전경. 용을 모티브로 한 혁신적인 설계로 멋진 외관을 자랑하지만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공간이 비효율적이라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 7월 24일 내려간 세종청사는 겉으론 꽤 안정되고 단장된 모습이었다. 6개 동을 4층 높이에서 한 번에 연결한 용을 모티브로 한 혁신적인 설계, 인근에 개관한 국립세종도서관, 국내최대의 인공호수 등이 눈에 띄었다. BRT(간선급행버스체계:도심과 외곽을 잇는 주요 도로에 급행버스가 운행되는 교통시스템)도 20분당 1대로 배차간격을 줄였고 시내버스도 확충했다.
하지만 곳곳에 자리 잡은 공사장의 소음과 먼지, 비좁은 청사내부와 턱 없이 부족한 주차공간에 기인한 불법주차 차량들, 마트 하나 없는 주변환경 등이 황량하고 삭막한 느낌을 줬다. 취재팀이 만나본 세종청사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행정 비효율성과 정주 기능 개선을 최대 현안으로 꼽았다. “국·과장급은 물론이고 일선 사무관도 서울~세종을 오가며 길바닥서 시간을 다 보낸다” “출장비 예산이 벌써 바닥났다” “실·국장 급 이상은 일주일에 1번 내려온다”는 등 행정이원화에 따른 비효율성과 사기 저하를 염려했다.
취재팀이 오송역 플랫폼에서 우연히 마주친 정홍원 국무총리도 국무회의 및 국회 일정 등의 업무를 소화하기 위해 서울로 향하는 것 같았다. 취재팀이 그가 탄 객차로 가보니, 정 총리는 옆 좌석만 비워놓고 뒷좌석에 경호원 2명, 객차 바깥에 경호원 1명이 임무를 수행중이었다. 다음 객차에는 수행원 3명이 따로 탔다. 한 나라의 국무총리치고는 소박하고 단출한 거동이었으나, 아마도 세종청사보다 서울청사 집무실에 더 머물기 때문일 것이다. 자주 세종청사와 서울청사를 왕복하다 보니 수행인원도 최소화한 것으로 보였다.
# ‘삭막한’ 첫마을
언론보도와는 달리 세종시엔 유흥시설이 단 한 곳도 없다. 가장 먼저 조성된 첫마을 1단계가 워낙 협소한 지역이다 보니 학교경계선 200m 내 청소년 유해업소 금지를 정한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취재팀이 확인한 바로는 첫마을엔 현재 스크린골프장 1개와 노래방 2개가 성업 중이다. 첫마을의 현재 인구는 2만 1000여 명. 종합병원과 대형마트 등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기엔 다소 적은 인구다.
현재 아름동에서 건설 중인 한 공사 관계자는 “식당은커녕 음료수 한 잔 먹을 곳도 마땅찮다”며 “마트 은행 우체국 약국 병원 등이 부족해 불편하다. 상권 형성이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민보다 공사하는 인구가 더 많다. 삭막한 느낌이다. 5㎞는 나가야 민간인을 본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전국적인 전세난이 세종시에도 불고 있다.
첫마을 소재 아파트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잉된 상태로, 미분양이 줄을 잇고 있지만, 정작 전세는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인근 대전 반석동, 조치원 역시 전세 매물이 귀하다. 전국적인 전세난이 세종시에도 불고 있는 것. 이렇듯 전세가 귀하다 보니 이주 공무원 중 전세 계약을 했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반 전세’로 전환당한 예가 많다. 한 부처 관계자는 “서울 광화문 생활을 접고 가족과 함께 내려와 조치원읍에 전세를 구했다”며 “처음엔 전세 8000만 원에 계약했는데 갑자기 말을 바꾸더라. 2000만 원에 대한 이자를 월세로 물고 살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이어 그는 “나 말고도 이렇게 반 전세로 전환당한 동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개발지역과 편입지역의 분위기도 극과 극이다. 국무총리동과 국내 최대 인공호수가 나란히 보이는 최고 전망의 모 아파트는 웃돈이 1억 원 이상 붙었다는 전언이다. 반면 인근 편입지역의 다가구·원룸은 빈집이 많다. 공무원 이주에 대한 원주민의 기대심리 탓인데, 결국 부채 부담과 난개발로 이어진 셈이다.
# ‘꽃뱀’ 단속 집중
가족을 서울에 두고 외로운 기러기 생활을 하는 공무원이 많다 보니 청사 각 부처는 자체교육을 통해 기강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중앙행정기관공무원노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정부대전청사 이전 때는 (꽃뱀 사건이 발생해) 징계자도 나왔고, 합의금을 주고 무마한 공무원도 좀 있었다”며 “세종시는 아직 그런 예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총리실 소속 공직복무관리관실이 가장 먼저 ‘세종시 선발대’로 이전했다. 당시 관계자는 “근무지 변화에 따른 공무원의 부적절한 행동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남자 공무원에게 접근하는 이른바 ‘꽃뱀’ 단속에 집중했다는 뜻이다.
세종시 인근 오송역, 조치원읍, 유성온천관광특구, 대평리 등지에는 주점, 노래방, 안마시술소, 단란주점 등이 있다. 특히 유성특구는 불야성을 이루는 지역의 대표적 환락가다. 앞서의 관계자는 “유성은 공무원보다 세종시 건설업자, 원주민 벼락부자가 많이 간다”고 귀띔했다.
# 인근 식당만 호황?
세종시가 조성되고, 정부 부처 공무원이 서울에서 이주하면서 실제로 주변 음식점과 유흥업소 매출이 크게 올랐다. 구내식당의 경우 1700여 개 좌석이 마련돼 있으나, 5500여 명의 공무원을 다 수용할 수 없고, 음식의 질에 대한 불평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1단계 이전 6개 부처는 모 업체가 구내식당 계약을 모두 독점하고 있어 음식 질 개선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불평도 있다. 점심시간이 임박하면 청사 주변 음식점에서 보낸 승합차가 대기하는 모습은 청사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모 부처 소속 공무원은 “인근 식당 매출은 2배 정도, 유흥업소는 30% 정도 오르지 않았겠느냐”라고 예측했다.
청사 내부 모습과 통근버스를 타고 출퇴근 하는 공무원들. 장거리 이동이 허리 통증을 유발한다며 요가교실을 개설해 달라는 민원도 생겨나고 있다.
청사 입주 6개 부처 중 4개 부처에는 체력 단련실이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타워팰리스를 능가하는 호화판 체력단련실이라는 보도가 나간 적이 있어 보여 드리기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실제로 취재팀에겐 사진촬영은 물론 접근도 금지됐다. 하지만 정작 공무원들은 체력관리실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장거리 출퇴근족이 많아 시간이 부족하고, 6개동이 외부복도를 통해 모두 연결돼 있어 업무를 보는 중 운동량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도 주요 이유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은 체력관리실이 그 호화로움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출퇴근의 운동효과 때문에 정작 이용 빈도가 낮은 셈이다.
# “요가교실 열어 달라”
세종청사가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곳은 ‘하늘정원’이다. 1.3㎞에 이르는 1단계 6개 부처 옥상을 한 번에 연결한 정원으로 ‘시민친화적인 열린 청사’라는 세종청사의 콘셉트를 잘 구현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청사관리소 관계자는 기자에게 장거리 출퇴근족들의 황당(?) 민원을 들려줬다. 요가교실 개설 및 통근 버스 내 여성전용칸 신설을 요구했다는 것. 서울~세종시를 오가는 장거리 이동이 허리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요가교실이 필요하다는 것. 여성 전용칸은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일부 남직원으로 인해 불편이 가중되기 때문이란다. 현재 서울·경기·충청 지역으로 출퇴근버스가 약 100대 가량 운영중이며, 전체 5500여 공무원 중 출퇴근 족은 900~1000명 정도다. 관계자에 따르면 요가교실은 강사를 채용해 문을 열 예정이다. 하지만 장거리 이동에 따른 허리통증 유발을 요가교실 개설로 완화시킬 수 있을지, 그런 요구를 한 공무원들의 세금에 대한 인식이 편의적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여성전용칸 또한 버스마다 앞쪽에 8개 좌석을 마련했으나, 정작 뒷자리를 선호하기 때문인지 여성공무원들이 잘 이용하지 않아 유야무야된 실정이다.
# ‘화장실’ 찾아 삼만리
용을 콘셉트로 설계된 구불구불한 청사 안을 돌아다니던 취재팀의 눈에 의아한 점이 발견됐다. 화장실 배치 간격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남성의 경우 평균 보행시간 6분, 여성은 보행시간 8분이 소요돼야 화장실을 찾을 수 있다. 이주 초기, 내부를 잘 모르는 방문객은 물론이고 직원까지도 업무중 화장실을 찾아 헤맨다는 민원이 급증했다. 게다가 천신만고 끝에 찾은 화장실은 소변기·대변기 각 2칸씩뿐. 앞서의 노조 관계자는 “외국인 건축가가 유럽식 화장실로 설계해 그런 것 같다”며 “한국 실정엔 맞지 않다”고 푸념했다. 최근 청사관리소는 공무원들의 불만을 수렴해 화장실 용역공사를 발주했다.
세종특별시=신상미 기자 shin@ilyo.co.kr
이보라 인턴기자
여성 방문객 몸 검색 전담
배병국 관리과 계장은 “문을 최대한 적게 하고, 높은 건물일수록 방호 소요가 최소화된다”면서 “한데 청사가 이전 중에 있어 시스템이 완전하지 않고 시민친화적인 열린 청사로 설계돼 방호도 그만큼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방호실은 중앙통합상황실을 통해 24시간 청사의 보안을 책임지고 있다. 기상상황, 총리 및 국무위원 일정, 부처행사, 출입 인원 및 차량 현황, 집회 및 시위계획 등 제 상황을 24시간 체크하고 있다. 또 580개의 CCTV 및 적외선 감지기 등의 과학화 장비를 통해 일일 평균 1000여 명이 드나드는 청사 내·외부를 감시하고 있다. 적외선 감지기가 이상 징후를 발견하면 중앙통합상황실의 경보가 작동하고 해당지점의 CCTV 4대가 해당 상황을 포착한다. 동시에 상황실의 3D입체영상에도 클로즈업되고, 근처에 경계를 서던 방호원이나 경찰이 해당지점으로 급파된다.
청사 방호를 담당하고 있는 특수경비 및 방호원들의 약 40% 이상이 군 경력 출신자로, 높은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청사 관리 및 방호에 임하고 있다. 정맥인식기·수하물 검색기·금속탐지기·차번인식기·적외선 감지기·카드리더기·가스분사기 등 최첨단 과학장비를 운용하고 있으나 배 계장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그는 “아무리 과학화된 장비가 많아도 사람의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입주기반이 미약하다 보니 여러 민원이 많지만 모든 종류의 불만과 민원을 긍정적으로 다 안아서 최대한 해결해 주는 것이 대원칙”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사관리소 소속 70여 명의 직원들은 5500여 공무원의 환경·의료·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휴일도 없이 근무하고 있다. 안내동 울타리 안쪽에서 출입증을 교부해 각 부처로 가던 것을 방문객들이 불편해 하자, 각 부처 입구에서 출입증을 교부받도록 고친 것도 시민친화행정의 실천이다.
현재 세종청사는 300여 명의 방호원 및 특수경비가 근무하고 있는데, 오는 8월 1일부터 27명의 여성 특수경비가 일하게 된다.
게이트에서 검색봉을 이용해 금속탐지업무를 담당하게 되는 것. 배 계장은 “남성이 여성 방문객의 몸을 검색하면 불쾌해 할 수 있는데, 여 특경이 남성을 검색하는 것은 괜찮다고 여겨져 여성 특수경비를 채용했다”고 설명했다.
신상미 기자 sh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