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두 번 물먹고 사표 쓸 각오까지 했었다”며 “지금의 내 자리는 덤 이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13일 대검청사 를 나서는 안대희 중수부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사실 안대희 중수부장을 가리켜 야당 일각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의 최고 실세”라고 칭하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까지 쑥밭으로 만들고 있는 ‘SK 비자금’ 사건의 수사를 맡고 있는 대검 중수부에 대해 ‘브레이크 없는 페달을 밟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대검 중수부의 한복판에 안대희 중수부장과 남기춘 중수1과장이 있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한국 정치를 재신임 정국의 태풍권에 몰아넣은 ‘SK 비자금 사건’은 중수부의 핵심인 안-남 두 검사의 정치권에 대한 ‘보복’이라는 말도 오가고 있다.
최근 안대희 부장에 대한 검찰 안팎의 시각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대검 관계자는 기자에게 대뜸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을 아느냐”고 질문했다. 심 전 고검장은 YS정권 말기인 지난 97년 대검 중수부장으로 있으면서 좌우 살피지 않는 원칙주의로 정치권과 맞선 바 있는 인물이었다.
당시 심 부장은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씨를 구속하기도 했다. 요즘 중수부 내에서는 “심 전 부장 이후 5년 만에 제대로 된 ‘중수부장’이 떴다”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지난 3월 강금실 법무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 내정자가 협의한 새 검찰 인사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곳도 대검 중수부였다. 중수부의 수장으로 임명된 안대희 부장이 주목받은 것은 당연했다.
중수부는 공직자나 거물급 인사가 연루된 각종 비리를 전담 수사하는 부서.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간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하면서 중수부는 검찰 내에서도 가장 막강한 파워를 갖게 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런 중수부의 수장으로 안대희 부장(당시 부산고검 차장)이 임명되자 검찰과 정치권은 ‘무난한 인사’로 받아들였다. 물론 일각에서는 “안 부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 17회 동기이고, 고향도 경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특수 수사부의 수장에 대통령 측근을 배치했다”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 부장을 잘 아는 검찰 안팎의 인사들은 “심상치 않다”며 향후 중수부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사실 안 부장은 특수부 검사로서는 누구보다도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YS정권 시절 인천지검과 부산지검 특수부장을 거쳐, 대검 중수부 3, 1과장과 서울지검 특수 3, 2, 1 부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하지만 안 부장은 DJ정부들어 내리막길을 걸었다. 안 부장의 강골 기질에 부담을 느낀 DJ정부 실세들에 의해 그는, 5년 동안 변방을 전전해야 했다. 17회 동기들 가운데 선두주자로 평가받았던 그는 검사장 승진에서도 두 차례나 물을 먹었다. 이를 두고 검찰 일각에서는 “DJ정권 초기 한 건설회사의 하도급 비리 수사를 하며 정권 실세들에게 칼을 들이댄 것이 화근”이라는 수군거림도 오갔다.
▲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이 지난 14일 대검에 출두 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임준선 기자. | ||
남 과장은 검찰 내에선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 사단’의 핵심 멤버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심 전 고검장이 서울지검 강력부 초대 부장을 맡았던 지난 90년, 이 강력부의 창설 멤버였다. 그런 남 과장도 지난 DJ정권에서는 외곽을 떠돌았다. 역시 심재륜 사단으로 꼽혔던 조승식 검사와 이훈규 검사도 지난 정권에서 한직으로 밀려났었다. 당시 검찰 내에서는 이를 두고 ‘심재륜 사단의 몰락’이라고 표현했다. 이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모두 ‘통제 불가능한 원칙주의자’라는 점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단행된 첫 검찰 인사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심재륜 사단과 안 부장의 부상이었다. 조 검사는 대검 강력부장으로, 이 검사는 법무장관 직속의 정책기획단장으로 핵심 요직에 올랐다. 그리고 안 부장과 ‘리틀 심재륜’으로 불리는 남 과장은 중수부에서 손을 잡았다.
이들의 만남에 대해 당시 민주당 구주류측은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치권의 불안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한광옥 권노갑씨 등 민주당 구주류 핵심 인사들이 줄지어 구속됐다. 당시 동교동계 인사들은 ‘청와대와 중수부의 교감설’까지 제기했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 함승희 의원이 “현대 비자금을 수사하던 중 검찰이 정몽헌 전 회장에게 무리한 강압수사를 가했다”는 폭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함 의원의 이같은 폭로는 중수부의 감정을 폭발시켰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강압수사의 당사자로 지목된 남기춘 과장은 함 의원의 폭로내용에 거세게 반발했다. 그는 “이는 검찰 전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문제”라며 함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려 했다.
대검 관계자에 의하면 당시 중수부에서는 함 의원에 대한 고소장 작성까지 마쳤으나, 송광수 검찰총장이 강력히 만류해 고소 사태로까지 번지진 않았다는 것. 그러나 당시 남 과장의 고소 움직임에 대해 송 총장이 직접 나서 만류했다는 점에 미뤄, 직속 상관인 안대희 부장도 남 과장의 입장을 묵시적으로 지지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번 ‘SK 비자금’수사의 시발점이 이때의 ‘모욕’에 대한 대검 중수부의 보복 차원이라는 추측은 그래서 불거졌다. 하지만 이미 지난 2월 최태원 SK 회장이 분식회계 및 부당내부거래 혐의로 구속되는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 관련 부분의 꼬리를 포착했다는 얘기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검 중수부의 칼 끝이 최근 민주당 구파에서 청와대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가 오가고 있어 주목된다. 대검의 한 관계자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요즘 안 부장과 청와대의 갈등설은 검찰 내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되고 있다는 것.
이 관계자는 “안 부장의 철저한 원칙 수사는 송 총장도 인정하지만, 내부에서도 사실 좀 아슬아슬할 때가 많다”며 “듣기로는 최근 청와대 측에서 매우 불쾌해 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노무현 정권 출범부터 불거져 나온 나라종금 사건 수사를 강력히 주장한 것도 안 부장이었다는 얘기가 정설. 안 부장은 “검찰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나라종금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며 송 총장의 허락을 받고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염동연, 안희정씨에 대해 칼날을 들이댔다.
그러나 당시 안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자 안 부장은 곤혹스러워 했다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의 검찰 독립 선언 이후 공식적으로 청와대와 검찰간의 핫라인이 완전히 단절됐지만, 문재인 민정수석과는 어느 정도 교감이 있지 않겠느냐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한낱 기대에 불과했다는 것. 중수부가 정치권 전반에 대한 사정은 물론 안희정, 염동연, 최도술씨 등 노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에 대해 수사의 칼날을 휘두르자 청와대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청와대 관계자는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임을 전제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했다. “아직까지 검찰의 주요 간부를 아군, 적군식의 이분법적 사고로 바라보는 것은 분명 잘못된 시각이지만, 솔직히 안 부장에 대해서는 초기의 분위기와는 달리 ‘아군’은 아니라는 생각이 청와대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