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과 판 니스텔로이. 판 니스텔로이 트위터 캡처
행선지가 문제였을 뿐, 사실 이적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박지성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시즌 간 활약하다 2012~2013시즌을 앞두고 QPR로 이적했지만 이곳에서의 1년은 최악의 시간이었고 수모의 연속이었다. 휴즈 전 감독의 권유로 원치 않던 주장 완장을 찼지만 이는 족쇄였다. QPR이 대대적인 전력 보강을 꾀했음에도 저조한 결과를 내자 온갖 비난을 받아야 했다. 박지성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나마 휴즈 전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을 때는 괜찮았다. 휴즈 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뒤 후임자가 된 해리 레드냅 감독은 박지성과 코드가 맞지 않았다. 팀의 부진 이유를 오직 ‘고액 연봉자’ 탓으로 돌렸다. 심지어 주장 완장까지 박탈하기도 했다.
그래도 자신이 QPR 소속임은 잊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건만 레드냅 감독은 지난 시즌 중반 이후부터 박지성의 역할을 크게 축소시켰다. 박지성은 교체 투입을 포함, 25경기에 나섰지만 불과 4차례 어시스트에 그쳤다. 그렇게 프리시즌이 열렸다. 박지성은 이적이 숙명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명예로운 은퇴를 준비하는 시점에 챔피언십에서 한 시즌을 보내기란 차선책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좋은 선택이 될 수는 없었다. 다양한 진로를 모색했다. 최근 아시아 선수 시장을 주도 중인 중국 슈퍼리그와 중동 프로축구 무대에서 수많은 러브콜을 보냈지만 이는 예외였다. 본인은 떳떳하더라도 혹시 모를 “돈 보고 행선지를 정했다”는 평가는 피하고 싶었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K리그 클래식 구단들도 거론됐지만 최우선 목표는 ‘유럽 잔류’였다. 이에 수많은 채널을 돌렸고, 독일 분데스리가와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등이 새 행선지로 거론됐다. 이와 함께 새 시즌 1부 리그로 승격했고 ‘제2의 박지성’이라 불린 김보경이 몸담은 카디프시티도 언급됐지만 계약 성사 단계까진 가지 못 했다.
이때 박지성이 에인트호번행을 굳힌 계기는 전화 한 통이었다. 에인트호번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네덜란드 선배 필립 코쿠가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코쿠 감독은 물론, 맨유 시절 좋은 추억을 나눴던 뤼트 판 니스텔로이도 에인트호번 보조 코치로 활동하고 있어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휴식기에 중국 상하이에서 연 자선경기를 위해 박지성은 판 니스텔로이와 접촉을 하다가 코쿠 감독과 연락이 닿게 됐다는 후문이다.
다행히 QPR도 몽니를 부리지 않았다. 사실 프리시즌이 열린 뒤에도 박지성을 에어아시아 홍보에 활용했던 그들이었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짧은 휴식을 마친 박지성이 런던으로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7월 중순 에어아시아의 부산 노선 취항을 기념하는 국내(부산) 행사에 참석시키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취했다. 이에 앞서서는 QPR의 프리시즌 한국 투어를 계획한 뒤 K리그 경남 FC와 친선경기에 “박지성이 반드시 출전한다”는 조항을 넣어 지탄을 받기도 했다. 다행히(?) 친선경기가 불발됐지만 QPR은 더 이상 한국 땅에서 ‘축구 클럽’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선 QPR이 박지성으로 하여금 구단 마케팅 활동에 적극 동참하는 조건으로 이적 절차를 쉽게 해줬다는 분석도 있다. 아울러 ‘보스만 룰(계약 만료 6개월 이하가 남을 경우, 전 소속 팀 동의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새 팀을 물색할 수 있다는 규정)’에 의거, 에인트호번 임대 기간을 1년으로 하되, 내년 6월까지 돼 있는 QPR과 계약을 좀 더 연장했거나 차후 이적에 대한 권리를 양도했다는 설도 있다. 어찌됐든 몹쓸 곳에서 고생하던 박지성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자 선물이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