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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년 6월 <중앙일보> 기자들이 구속 기자의 석방을 요구 하며 밤샘농성을 하고 있다. <94보도사진연감> | ||
문제의 기사가 보도된 시점은 6월11일. <중앙일보>는 권영해 당시 국방장관이 율곡비리 사건과 관련, 출국금지됐다는 사실을 1면 머릿기사로 ‘특종’ 보도했다. 담당기자가 공항 출입국 관련업무에 종사하는 경찰 공무원으로부터 입수한 ‘법무부 출국규제자’라는 명단이 기초가 됐다. 그러나 법무부와 감사원의 공식 부인으로 이 기사는 결과적으로 ‘오보’로 판명됐다.
이에 권 장관은 다음날인 12일 즉각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담당기자는 14일 새벽 전격 구속되고 말았다. 시간상으로 고소한 지 하루 반나절 만에 구속된 셈이다. <중앙일보>는 다음날 보도에서 권 장관에 대한 사과와 해명기사를 냈다. 명예훼손 등의 고소사건의 경우 당사자들간의 합의를 위해 3개월 정도의 처리기준시한이 있는데도 검찰이 이처럼 신속하게 수사를 전개해 언론계의 충격은 상당했다.
도주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전혀 없는 상태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상황. 이런 정황상 이 사건이 검찰 자체판단과 의지에 의해 처리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게 당시 언론계의 중론. 자연 무성한 추측이 난무했다. 그런데 아리송했던 그 배경에 청와대가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장병용 당시 국방부 특명검열단 단장은 최근 <일요신문>과의 단독 면담에서 “당시 <중앙일보> 기자가 전격 구속된 것은 청와대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장 전 단장은 “당시 권 장관은 평소 성격이나 언론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고소까지 가지는 않으려고 했으나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지시해 어쩔 수 없이 고소하게 됐던 것”이라면서 “결국 그 때문에 언론과 사이가 나빠져서 몇 개월 후 보복성 기사로 ‘집중포화’를 맞고 경질되고 말았다”고 전했다.
한편 장 전 단장은 권 장관의 퇴임 직후 국방부에서 다시 시작한 율곡비리 재감사 등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은 할 말이 없다. 앞으로 10년 후에나 보자”며 구체적인 언급 자체를 피했다. [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