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은 손흥민, 이청용, 김보경을 활용한 제로톱 전술도 고려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축구계 현장을 오가다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예나 지금이나 이동국(전북 현대)만한 국내 공격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틀린 말이 아니다. 1990년대 후반 혜성처럼 등장해 차범근(현 SBS 축구 해설위원)-황선홍(현 포항 스틸러스 감독)으로 이어진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어간 선수는 이동국이었다.
그랬던 이동국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각인돼 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여전히 K리그 무대를 주름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전후해 안정환(지도자 준비 중)-설기현(인천 유나이티드) 등이 있었지만 축구 팬들에게 가장 많이 거론되고 언급되는 선수는 단연 이동국이다. 그는 K리그 그라운드에서 전혀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내고 있고, 온통 외국인 선수들이 주름잡았던 공격 포인트 판도에 국내 공격수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박주영(아스널)은 참 아쉽다. FC서울을 거쳐 AS모나코(프랑스)로 진출할 때만 해도 박주영에 버금가는 공격수는 눈에 띄지 않았다. 누가 봐도 최고 선택이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이적도 충분히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거의 2년을 공쳤다. 아스널에서의 1년, 임대 이적했던 셀타 비고(스페인)에서의 1년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작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면제를 받을 때에도 ‘축구 천재의 부활’이라며 떠들썩해졌지만 금세 열기는 가라앉았다. 절치부심이 현재의 박주영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표현이다.
지동원(선덜랜드)도 안타까운 케이스다. 요 근래 한국 대표팀이 가장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은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지동원은 기량을 인정받고 전 소속팀 전남 드래곤즈를 떠나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에 안착했지만 박주영과 마찬가지로 연착륙에 실패했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다면 극성맞은 영국 언론들의 십자포화에서는 상당히 벗어났다는 점이다. 지난 2012~2013시즌 후반기에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돼 맹활약을 펼치면서 다시 희망을 불어넣었다. 선덜랜드도 지동원을 다음 시즌에는 어느 정도 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간 잃어버린 시간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믿었던 토종 골게터들의 부진은 곧 대표팀의 화력 저하로 이어진다. 7월 국내에서 열렸던 2013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에서 홍명보호는 2무1패의 저조한 성과를 냈다. 유난히 아팠던 결과도 결과였지만 가장 많이 지탄을 받은 대목은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 부족이었다. 홍명보호 1기에 뽑힌 선수들이 죄다 침묵시위(?)를 했다. 윤일록(FC서울)이 일본과의 대회 최종전(1-2 한국 패)에서 한 골을 넣은 게 전부였다. 최근 K리그에서 물 오른 기량을 펼치며 대표팀에 승선한 서동현(제주 유나이티드)도, 김동섭(성남 일화)도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허공에 날렸다. 신장 196cm의 장신 공격수 김신욱(울산 현대)도 가장 확실한 타깃맨이었지만 지나치게 짧은 출전 시간에 뭔가 보여줄 만한 상황을 연출하지 못했다.
많은 축구인들은 “동아시안컵은 대부분 출전국들이 국내파와 아시아권 프로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주축이 됐는데, 여기서도 통하지 않았다는 건 상당히 유감스럽다. 판단 기준이야 제각각이겠지만 최강희호 체제로 치른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때와 크게 달라지지 못했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최강희호 투톱이었던 이동국과 김신욱.
킬러들의 침묵이 잦아지면서 전술적인 선택에도 시선이 모아진다. 요즘 대세가 된 4-2-3-1 포메이션을 변형시킨 일명 ‘제로(0)톱’ 전술이다. 최전방에 고정된 전담 타깃맨을 세우지 않고 대신, 여러 선수들을 고루 투입시켜 공간을 확보하고 득점 찬스를 노리는 전략이다.
홍명보호도 실제로 이 실험을 동아시안컵 한일전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선보였다. 전형적인 공격수를 투입하지 않고, 측면과 섀도 공격수 성향이 짙은 선수들을 두루 투입해 다양한 공격 루트를 개척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상당히 신선한 시도였다.
요즘 국내외 무대에서 활발히 소식을 전하는 선수들 상당수는 측면 요원(윙 포워드)들이다. ‘대세’ 손흥민(바이엘 레버쿠젠)이 있고, 김보경(카디프시티)-이청용(볼턴)도 있다. 홍명보호 1기에 뽑히지 못했던 이근호(상주 상무)도 역시 그 대상이다. 지동원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측면으로 돌릴 수 있다. 붙박이 공격수가 없다보니 전방위적으로 공세를 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격수 토레스가 부진하자 다양한 대체 자원들을 돌려가며 공격 루트를 찾아 효과를 봤던 스페인의 경우에서 가능성이 확인됐다.
그래서인지 K리그에서도 종종 ‘제로톱’을 찾을 수 있다. 홍 감독의 고민처럼 역시 공격수 부족이 원인이다. 수원 삼성이 그렇다. 모기업(삼성전자)의 지침에 따라 팀 운영비 절감에 돌입한 수원은 올 시즌 후반기를 용병 한 명(산토스)에만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라돈치치와 스테보 등 기존 용병 공격수들이 빠지면서 부담이 커지자 서정원 감독은 전형적인 타깃맨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북한 공격수 정대세가 원톱 자원이긴 하지만 정규리그 대부분을 오직 한 명에게 올인하기는 어렵다. 돌려가며 쓸 수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나온 차선책이지만 평가는 나쁘지 않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