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수상자들. 왼쪽부터 가작 허재호 작가, 일요신문 신상철 대표이사, 대상 김영오 작가, 가작 송동근 작가, 우수상 김경민 작가.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힘들면 내가 네 만화책 열 권 사줄까?”
시골에 계신 늙은 어머니가 막내를 걱정해 전화를 했다. 막내라고는 하지만 서른을 훌쩍 넘긴, 어디 가서 힘 하나는 밀릴 것 같지 않은 건장한 사내다. 그런 그를 어머니는 늘 걱정하신다. 밥은 먹고 다니느냐고,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고…. 막내아들은 그 마음이 항상 고마우면서도 서글프다. 만화가 김영오 씨(36)의 이야기다. 어머니의 지성 덕일까. 그는 사상 최대, 총 상금 5000만 원이 걸린 제2회 ‘창간 20주년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의 주인공이 됐다.
침체된 한국의 출판만화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만들어진 ‘창간 20주년 기념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제2회 대회가 지난 12일 시상식을 끝으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 4월 중순부터 9월 16일, 약 5개월 동안 총 70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이는 제1회 40여 편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 작품들의 수준도 골고루 올라갔다. 제효원 한국만화가협회 사무국장과 일요신문 만화공모전팀은 예심(9월 25일)을 통해 수상작의 2배수인 8편을 추려냈다. 최종심에서는 윤준환 이두호 이현세 최훈,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들이 심사를 맡아 엄정한 잣대로 4편을 뽑았다. 그리고 대망의 시상식이 지난 12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거행됐다.
상금 3000만 원이 걸린 대상의 주인공은 김영오 작가의 <DEAD BLOOD-731>(데드 블러드-731).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중국의 하얼빈에 주둔시켰던 세균전 부대인 ‘731부대’를 배경으로 좀비(Zombie, 살아있는 시체)와 한·중·일 주인공들이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내용. 요즘 뜨고 있는 ‘B급 문화’에 주목한 심사위원단은 “좀비와 마루타 부대라는 소재를 조합한 전형적인 B급 액션물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며 “빠른 전개와 완성도 높은 작화가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상을 받은 김영오 작가. 상금 3000만 원과 상패가 주어졌다. 김 작가의 작품은 <일요신문>에 연재될 예정이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개인적으로 좀비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는 김영오 작가는 시상식에서 “기뻐해야 하는데 너무 믿기지 않는 일이라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지난 1996년 출판사 신인 만화공모전에서 수상하며 데뷔한 그는 군복무 후 1999년 학원물 <발작> 연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지난해엔 <주홍나비>를 출간하기도 했다. 김 작가는 “더 잘 그리시는 분들이 많은데 과분하게 제가 수상하게 되어 기쁘면서도 죄송하다”며 겸손해 하면서도 “앞으로 <일요신문> 연재를 통해 정말 재미있는 만화를 선보이겠다”고 당차게 밝혔다.
대상작과 각축을 벌이다 아쉽게 우수상(상금 1000만 원)을 받은 작품은 김경민 작가(34)의 <붉은 알약>. 사이비 종교 단체에 가입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조카와 이를 저지하려는 삼촌의 이야기가 뼈대를 이루는 작품. 심사위원단은 “응모작들 중 단연 스토리라인이 돋보이고, 흡입력 있는 문장과 부드러운 연출도 보인다”며 호평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만화에 대한 꿈은 포기할 수 없었다”는 김경민 작가는 수상자 중 가장 신예다. 경력은 대학(순천대학교 만화예술학과)을 졸업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유명 만화가 문하생 생활을 한 게 전부. 이후에는 침대나 가구를 파는 등 만화와 무관한 일을 했다. 그러나 주위의 격려와 응원으로 자신의 꿈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그때 인연으로 지금의 아내도 만나 지난 5월 백년가약을 맺었다. 시상식도 함께한 그의 아내에 따르면 “<붉은 알약>은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다”니 이후 <일요신문> 연재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개성 있는 캐릭터와 빠른 전개, 재치 있는 대사 처리가 돋보이는(심사위원단)” 허재호 작가(43)의 가작(상금 500만 원) <고리>는 외딴 섬에 불시착한 사람들과 먼저 불시착해있던 UFO의 외계인이 만나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장르는 ‘코믹 SF 미스터리물’. 작품은 ‘조직을 서로 연관되게 하는 하나하나의 구성 부분 또는 그 이음매’를 뜻하는 우리말 ‘고리’와, ‘유혈의, 유혈과 폭력이 난무하는’을 뜻하는 영단어 ‘Gory’를 동시에 구현하고 있다.
허재호 작가는 “지금껏 아이들 관련 만화만 그리다 오랜만에 하고 싶은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니 정말 재미있었다”며 “좋은 결과까지 얻으니 그저 기쁠 따름”이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1996년 서울문화사 <영점프>에 <도망자>로 데뷔한 허 작가는 2007년과 2009년 <파이팅>과 <페이스오프>로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작에 당선되기도 했다. 최근엔 만화사이트와 학습지 등에 연재 중이었다. 그는 “좋은 기회를 얻은 만큼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보탰다.
신상철 일요신문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축사를 한 조관제 만화가협회장.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또 다른 가작 <환향>(還鄕)은 병자호란이 있기 전 만주에서 벌어진, 알려지지 않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조선군과 오랑캐에 납치됐다가 도망친 조선 여인의 고군분투 귀향기다. 심사위원단은 “극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여유로움이 매력적”이라며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템포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환향>의 송동근 작가(42)는 중견이다. 1997년 SICAF(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애니메이션 공모전 부문상을 수상하고 각종 매체 연재와 <지문사냥꾼>, <어린이를 위한 경제의 역사> 등 단행본 출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역사 학습만화 <피터 히스토리아>로 ‘부천만화대상’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확신보다는 미련이 많은 작품이었는데 수상하게 돼 큰 힘이 된다”며 “앞으로 <환향>을 꼭 완성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신상철 일요신문 대표이사는 인사말을 통해 “만화는 꿈입니다. 그 꿈을 함께 만들어갑시다”라며 “앞으로도 지원을 계속해 만화 그리는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관제 만화가협회장은 축사에서 “<호빵맨>을 그린 야나세 다카시(柳瀬嵩)와 <게게게노 기타로>의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 같은 만화가는 65세에 빛을 봤다”면서 “한국만화시장이 많이 침체됐다고는 하지만 끝까지 남아 만화계를 빛내주기를 바란다”고 젊은 후배들을 격려했다.
지난해 <Long Live the King>(롱리브더킹)으로 제1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대상을 받은 임규빈 작가(33)도 제2회 수상자들에게 “고생 많이 하셨다. 축하드린다”고 전해왔다. 그는 “꾸준히 연재해야 할 곳이 있으니 아무래도 작품에 집중하게 된다”고 수상 이후 변화상을 소개했다. <롱리브더킹>은 건달 출신 장세출이 정치에 도전하는 줄거리로 현재 <일요신문>에 연재 중이다. 제2회 공모전 당선(응모)작들도 역시 작가와 협의를 통해 향후 <일요신문>과 온라인 <일요신문i>에 연재될 예정이다.
제3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은 창간기념일인 내년 4월 15일 전후 응모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고혁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