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안팎에서 당내 최고 파워맨인 김무성 의원을 중심으로 한 조기전대론이 확산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2014년 5월 임기가 만료되는 황우여 대표는 대대적인 당직개편 안으로 당권교체 여론을 잠재웠다. 당 주류인 친박 역시 황 대표를 지원사격 했다. 당시 친박 중진 이완구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됐는데 불안정한 요소가 당내에 있거나 일사불란한 모습을 못 보여주면 대통령의 국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그런 것(조기전대)을 논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조기전대론이 새누리당 안팎에서 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황우여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당이 청와대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고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이은 인사실패, NLL(서해 북방한계선) 대화록 공개, 국정원 댓글 국정조사, 세제개편안 등 중요한 정치적 이슈마다 당이 청와대 눈치 보기만 급급해 할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근 새누리당 의원들 식사 자리에선 “이대로 가다간 10월 재·보궐 선거, 내년 6월 지방선거 다 망한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많이 오간다고 한다. 한 초선 의원은 “10월 재·보궐 선거가 끝나자마자 새로운 지도부를 꾸려 당을 재정비한 뒤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며 “황 대표 임기가 끝나는 5월은 지방선거를 준비하기에 너무 늦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기전대가 재점화된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당의 역학구도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른바 ‘김무성 대표론’과 맞닿아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대선 승리를 이끈 뒤 4월 부산 영도 재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복귀한 김 의원은 현재 자타공인 새누리당 ‘1인자’다. 김 의원은 친박 주류는 물론이고 친이계 및 비주류와의 교류 폭을 넓히며 당 내에서 가장 많은 우호 세력을 갖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초선 의원들 중에서 ‘보스 기질’이 강한 김 의원을 따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중 대부분은 김 의원을 ‘무대(김무성 대장)’, ‘형님’으로 부른다. 이러한 당내 절대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현재 김 의원은 유력 대선후보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8월 21일 종료된 국정원 댓글 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는 김 의원의 정치적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김 의원 증인 채택을 끝까지 거부했다. 19일 청문회에선 야당이 김 의원을 거론하자 새누리당 위원들이 이에 항의하며 회의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새누리당 특위위원들 사이에선 “권영세 주중대사는 내주더라도 김 의원 증인 채택만은 절대 안 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지난 6월 말 새누리당 중진연석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지난 대선 때 이미 입수했다고 말해 ‘대형사고’를 쳤던 김 의원을 청와대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조기전대가 현실화될 경우 자연스레 김무성 대세론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6월 임시국회 1차 본회의에서 김무성 의원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김 의원 측의 한 관계자는 “(조기전대를) 언급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당내에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 쌓여 있다. 박 대통령이 민생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조기전대는 국민들 눈에 한가한 짓거리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김 의원 인식”이라면서 “이를 무릅쓰고 조기전대를 강행할 경우 주류인 친박이 김 의원으로부터 등을 돌릴 우려가 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김 의원 주변에서 조기전대를 밀어붙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치러지는 내년 5월 전대에서 김 의원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익명을 요구한 친박 재선 의원의 얘기다.
“지금은 김 의원이 여권 최고 실력자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주류임에도 불구하고 대선 승리 후 소외됐던 친박과 오갈 데 없는 비주류들이 김 의원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보내고 있지만 정치 속성상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박 대통령이 지방선거 헤게모니를 놓고 김 의원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려고 하겠느냐. 10월 재·보선 이후 조기 전대를 개최해 일찌감치 당을 장악,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당 내에 마땅한 대항마가 없고, 세가 쏠리고 있는 상황을 김 의원이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최근 새누리당 내에서 일고 있는 조기전대의 진원지가 김 의원 측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청와대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황우여 대표, 최경환 원내대표 임기가 끝나는 내년 5월까지 현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특정 세력이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갖고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김 의원 측을 염두에 둔 듯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 입장에서 ‘관리형 대표 황우여, 충성심 강한 실세 원내대표 최경환’ 조합은 아쉬울 게 없다. 홍문종 사무총장,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 김태흠 원내대변인 등 친박이 당 주요 보직에 포진해 있다는 점도 국정 운영을 위해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박 대통령으로서는 친정체제가 확실하게 구축된 지금의 지도부가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이러한 반응은 김 의원이 대표로 선출되면 당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김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위기에 빠졌던 캠프를 구한 일등공신이지만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한때 ‘탈박’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김 의원이다. 청와대 몇몇 참모들은 박 대통령에게 김 의원의 세가 더 확산되기 전에 견제를 해야 한다는 보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엔 “김 의원을 신뢰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내용도 포함됐다고 한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임명한 이유가 김 의원을 겨냥한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김 의원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친박 중진 서청원 전 대표가 10월 재·보선 출마를 결심한 것도 친박의 역량을 모아 김 의원에게 맞서기 위한 시나리오라는 소문도 돈다.
정가에서는 당권, 나아가 대권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의원이 마이웨이를 선언할 경우 박 대통령에게도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김 의원이 역설적으로 ‘박근혜 케이스’를 따라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김 의원 역시 박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권 인사”라면서 “박 대통령은 김 의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조기전대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여러 채널을 통해 조기전대를 거론하는 의원들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와는 별개로 김 의원과 겨룰 만한 중량감 있는 인사 영입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