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목포 축복동 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 당시 사건을 목격한 이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 씨가 범인으로 지목됐다. 술에 취한 정 씨가 유 씨를 상대편으로 오인하고 돌려차기를 했다는 것이 목포경찰서의 수사 결과였다. 이어 정 씨가 쓰러진 유 씨의 머리를 몇 차례 더 밟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경찰 조사에서 목격자로 나선 이들은 안 씨와 그의 연인 A 씨, 그리고 중간에서 싸움을 말리던 B 씨였다. 직접적으로 사건에 관여된 세 명이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정 씨는 술에 취해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의 추궁에 결국 정 씨는 유 씨를 죽였다는 혐의를 인정하게 됐고, 2008년 1월 광주지법 목포지원 1심에서 상해치사죄로 5년 형을 선고받았다.
경찰의 유도심문 의혹이 제기된 정 씨 조사 기록과 원린수 소장이 경찰의 사건 조작 등을 고발한 진정서.
원 소장은 조사 과정에서 수상한 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우선 사건 당시 주변의 목격자들이 안 씨 등 3명뿐이 아니라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검찰은 사건 당사자인 3명의 증언만을 인정했던 것이다. 원 소장은 “A 씨 역시 경찰 조사에서 ‘싸움을 목격한 이들이 수십 명은 됐다’고 진술한 기록이 있다. 나도 현장 수사를 통해 6명의 목격자를 찾아내 목격담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한 여관 주인은 사건 직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목포 역전지구대 소속 경찰 3명에게 ‘정 씨는 술이 너무 취해 맞기만 했다’고 목격 내용을 전했다고 했다. 하지만 목포경찰서는 그러한 증언은 다 빼버리고 안 씨 등의 진술만을 근거로 정 씨를 범인으로 몰았다”고 설명했다.
정 씨에 대한 경찰의 유도심문 의혹도 제기됐다. 원 소장은 “경찰 조서를 보니 처음에는 ‘유 씨의 뒤통수를 돌려 찬 사실이 있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정 씨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경찰은 ‘유 씨가 당신이 돌려차기로 차서 넘어뜨리고 계속해서 땅바닥에 누워 있는 유 씨의 머리를 발로 찼다고 하는데 기억이 없나’라고 질문했고 정 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경찰은 유 씨가 사망했음에도 마치 유 씨에게 들은 것처럼) 정 씨에게 정 씨가 유 씨를 찼다는 사실을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정 씨의 답변을 유도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이를 근거로 정 씨는 사실도 아닌 내용을 자백하게 됐다. 경찰이 거짓말로 자백을 유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살인 누명을 벗은 정 씨의 가족 사진.
정 씨는 혐의를 벗고 무죄로 풀려났지만 유 씨를 죽인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원 소장은 목격자였던 안 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안 씨는 여성 A 씨와 연인관계였던 사이로, 정 씨와 유 씨가 A 씨를 치근덕대자 화를 내며 몸싸움을 벌였던 인물이었다. 원 소장은 “정 씨가 대법원까지 가서 유 씨를 죽였다는 혐의를 벗어냈다. 그렇다면 유 씨를 죽인 범인은 누구인가. 당시 정 씨를 포함해 안 씨, B 씨가 사건 현장에 있었다. 정 씨가 범인이 아니라면 2명 중 한 명이 범인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다른 목격자들도 안 씨가 발로 유 씨의 머리를 가격해 쓰러뜨렸다는 증언을 했다. 원 소장은 지난 2009년 9월 안 씨를 상해치사 및 위증혐의로, 연인 A 씨와 행인 B 씨는 위증 및 범인은닉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안 씨에 대한 경찰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오히려 사건 초기 수사를 담당하며 정 씨를 범인으로 내몬 수사팀에 재조사를 배정했다. 원 소장은 “안 씨 등을 고발하고 얼마 뒤 경찰로부터 안 씨가 도주를 하는 바람에 사건을 기소중지하고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렸다는 통보를 받았다. 재조사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황당한 일이 생겼다. 그는 “2010년 6월 다른 사건을 조사하던 중 지명수배자 전단을 봤는데 안 씨가 보이지 않았다. 목포경찰서의 담당경찰에게 물으니 2010년 3월 안 씨를 부산의 한 PC방에서 검거했는데 검사가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비롯해 증거를 다 제출했는데 증거불충분이 말이 되느냐고 화를 냈다. 이후에 검찰은 안 씨를 풀어준 이유와 명분에 대해 설명도 내놓지 않고 만나주지도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정 씨가 범인으로 지목돼 5년 형을 선고 받은 판결문.
정 씨는 무죄로 풀려난 이후 몇 군데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과 같이 사법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유 씨 살인사건의 재조사를 철저히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정 씨는 사건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했다. 정 씨는 기자와의 최근 통화에서 “사건이 대중들에게서 잊혀가고 있는데 또다시 들춰지는 것이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부담스럽다”고 말을 아꼈다.
정 씨는 살인범의 오명을 벗었다. 하지만 유 씨를 죽인 범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용의자는 다툼이 벌어진 그 자리에 있던 정 씨와 안 씨, 그리고 B 씨. 경찰과 검찰이 용의자 안 씨의 행방을 파악하지 않고 사건 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정 씨 처음엔 자백… CCTV 확보 했어야”
정 씨 부인이 남편이 살인죄로 수감 당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시위하는 모습. MBC
그러나 이에 대해 경찰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의 한 관계자는 정 씨가 범인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건이 벌어지고 정 씨가 파출소에 처음 와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부터 자신이 유 씨를 죽였다고 자백을 했다. 한번만 봐달라고 애원을 하기도 했다. 모든 정황이 정 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다만 진술을 받던 경찰이 질문을 잘못해 유도심문처럼 돼 정 씨의 진술이 증거로서 법적 효력을 잃었을 뿐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정 씨가 처음부터 상해치사 혐의를 부인했다면 경찰이 수사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을 것이다. 경찰 조사에서는 인정하다가, 나중에 번복해 우리도 황당할 따름이었다”고 토로했다.
처음 목격자로 나섰던 사건 관련자 여성 A 씨는 자신의 위증혐의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A 씨는 “나는 정 씨가 유 씨 머리를 발로 차는 것을 봤고, 경찰 조사에서 내가 본 대로 증언했을 뿐이다. 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거짓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사건 이후 이상한 유언비어까지 퍼지면서 협박까지 당하는 등 나도 피해를 많이 봤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당시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한 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A 씨는 “내가 파출소와 목포경찰서에서 정 씨가 조사받는 장면 CCTV를 확보하라고 경찰들에게 당부했다. 정 씨는 처음 조사를 받으면서 자백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들이 내 말도 안 듣고 결국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