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사건 중간수사 발표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15일 김용판 전 청장이 4시간 동안 누구와 점심식사를 했는지 의혹이 일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김 전 청장이 점심식사를 한 곳은 종로구에 위치한 ‘백송’이라는 설렁탕집이다. 당시 김 전 청장 비서실의 업무일지에 따르면 ‘오찬간담회’라는 이름으로 김 전 청장, (서울청) 정보부장, 과장, 직원 외 12명이 식사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민주당 김민기 의원이 확인한 결과 김 전 청장을 제외한 이들 모두는 “당시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고 한다. 업무일지가 허위로 작성된 셈이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식당에 확인을 해보니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7명이 28만 원어치 식사를 했다. 1인당 3만 5000원짜리 식사를 했고 남은 3만 5000원으로 소주 2병에 맥주 5병으로 폭탄주를 만들어 먹은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15일 백송의 예약 내역에 따르면 ‘오후 1시 서울청 7인’이라고 적혀져 있다. 결국 김 전 청장을 제외한 6인을 밝혀내는 게 베일에 가려진 점심식사의 실체를 알아낼 열쇠인 셈이다. 이 6인을 두고 일각에서는 여러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는 중이다. 청와대 관계자일 것이라는 얘기부터 국정원 직원이나 박근혜 후보 캠프의 핵심 인사일 것이라는 설들이 오고 가는 것이다.
이 중 유력하게 떠오르는 의혹이 바로 청와대 관계자일 것이라는 얘기다. ‘백송’이 청와대 인근에 위치해 있고 청와대 비서관들이 자주 이용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백송은 이전 정부 때도 청와대 비서관들이 자주 이용하기로 유명했다. 청와대 비서관뿐만 아니라 기관 인사나 기자들도 자주 이용하던 집이기 때문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점심식사를 하기 직전 15일 오전에는 김 전 청장이 수사부장과 과장으로부터 국정원의 선거개입 증거들이 다수 포착됐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점도 청와대와의 교감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보고를 받은 후 향후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고민하던 김 전 청장이 청와대로부터 일종의 ‘조언’을 구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김 전 청장은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 “최소한 그런 모의는 결코 아니다”며 “대선 기간 중 어떤 정치인도 만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세웠고 만난 적도 없다”고 부인한 바 있다.
김용판 전 청장이 점식식사를 한 설렁탕집 백송. 최준필 기자
국정원 수사 축소 발표를 지시한 의혹이 있는 만큼 박근혜 후보 캠프 관계자와 향후 수사결과 발표에 대한 추가 논의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이다. 이중 김 전 청장과 점심식사를 한 인물로는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았던 권영세 주중대사 혹은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정도일 것이라는 추측이 일기도 했다. 당시 두 사람은 오후 3시부터 강남에서 열린 박근혜 후보 유세에 참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행사를 급히 끝내고 김 전 청장의 식사모임에 참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식사모임이 오후 5시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3시부터 시작된 유세에 30~40분 정도 참석하고 급히 식사모임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야권에서도 쉽게 수긍하지 않을 정도로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김무성, 권영세 등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 인사들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모두 추측일 뿐이다. 정치인과 만났는지 정보기관 인사인지 추측은 하고 있지만 청문회에서 더는 진전된 게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 18일에는 한 여권 관계자가 언론을 통해 “김 전 청장이 충북경찰청장 재직 시절 사적으로 알고 지낸 지역 인사들과 식사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라는 얘기를 슬쩍 흘리기도 했다. 이 여권 관계자는 “김 전 청장과 점심식사를 한 인물 중 일부는 부부 동반이었으며 김 전 청장이 이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은 사적 모임에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는 비판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김 전 청장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주기 위한 물타기용이 아니냐는 해석이 즉각 나왔다. 민주당 김민기 의원실 관계자는 “여권 관계자가 흘린 말이라 일종의 ‘물타기용’으로 파악된다”며 “청문회가 끝나도 김 전 청장이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답변한 바는 없다”고 전했다.
결국 4시간의 점심식사의 진실은 향후 재판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게 야권의 공통된 입장이다. 누구와 점심식사를 했는지 내내 기억이 나지 않는다던 김 전 청장은 “향후 재판에서 소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한 야권 관계자는 “백송에 설치돼 있는 CCTV도 올해 초 설치된 것이라 누구와 식사를 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게 답답하다”며 “당시 목격자나 제보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