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는 지난 18일 과학기술단체 초청 토론회에서 “도청에 대한 우려 때문에 엊그제 비화기가 장착된 휴대전화를 입수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비화기란 원래 쌍방 전화기에 모두 설치해야 하지만 이 후보가 구입한 새 휴대전화에는 한쪽에만 설치해도 도청을 막을 수 있는 기능을 지닌 신기술 칩이 내장돼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후보측은 ‘보안’을 위해 업체명이나 구체적인 모델명은 밝히지 않았다.
국내 통신보안기술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단 이 후보측에서 구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비화기는 ‘007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첨단기기’라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보안업체인 S사도 아직까지 유선전화용 비화기만 다루고 있을 정도. 물론 국내 벤처기업 가운데 휴대전화 비화기 개발능력을 지닌 업체가 서너 곳 있기는 하다. 실제로 A사는 지난 5월 비화기 휴대전화 개발에 성공, 출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A사는 또 이미 한 달여 전에 이 후보측에 비화기 휴대전화에 대한 설명서를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이 후보측도 이에 적잖은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 이회창 대통령 후보가 당직자들과의 티타임 도중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다. | ||
이 업체의 비화기 휴대전화는 겉보기에 일반 휴대전화와 다른 점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내부에 보안 알고리즘 기능의 고성능 칩이 탑재돼 있어 비화기 역할을 하게 된다. 워낙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제품이라 소비자가격도 1백만원을 넘는 선으로 책정돼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이 후보측에서 입수했다는 비화기 휴대전화가 바로 이 업체 제품일까. 이에 대해 A사 관계자는 “이 후보측에 제품설명서를 보내기는 했지만 아직 시제품을 판매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다른 몇몇 비화기 휴대전화 개발업체 역시 ‘아직 제품을 출시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이들 업체가 비화기 휴대전화의 판매 여부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법적 문제 때문. 비화기가 범죄 등에 악용될 것을 우려해 일반인의 비화기 사용은 법적으로 제한된 상태다. 다른 문제도 있다. 정보통신부 이종훈 사무관은 “휴대전화도 하나의 독립된 무선국인데 원래 허가된 상태에서 (임의로) 어떤 장치를 첨부하거나 부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된 사항”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은 또 있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후보의 비화기 휴대전화는 상대 전화기의 종류에 상관없이 도청을 막을 수 있는 기능을 지닌 신제품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통신보안기술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의 기술로는 쌍방 휴대폰에 각각 비화기 칩을 설치해야 도청 방지가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비화기 휴대전화로 일반전화를 쓰는 상대와 통화할 경우 음성이 제대로 전달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일반전화의 경우 비화기 휴대전화에서 암호화돼 전달된 음성신호를 다시 원상복구시킬 수 있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기종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후보가 사용하는 비화기 휴대전화 역시 이런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이 후보는 구입한 비화기 휴대전화 몇 대를 최측근 인사와 공유하며 이들과의 통화에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것은 과연 이 후보와 ‘비밀’ 통화를 하는 최측근 인사가 누구일까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