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서울중앙지검 이진한 당시 공안1부 부장검사가 ‘왕재산’ 적발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떠들썩했던 검찰 발표 당시와는 달리 법원 판결 과정에서 혐의가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연합뉴스
당시 검찰은 ‘왕재산’이란 단체를 북한노동당 225국(옛 노동당 대외연락부)의 지령을 받는 지하혁명조직으로 규정했다. 왕재산에 연루된 김 씨 일당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구성 가입, 간첩편의제공, 이적표현물 소지 및 배포 등의 다양한 혐의가 붙었다. 검찰은 이들이 받은 북한 지령문을 언론에 발표하며 사안의 위험성을 알리기도 했다. 검찰이 발표한 북한 지령문에 따르면 ‘인천의 저유소·주안공업단지·보병사단·공수특전단·공병대대 등에 조직원을 침투시키라’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공안 당국의 이러한 자신감과는 달리 일각에서는 “이들이 정말 간첩이 맞느냐”는 의구심이 일기도 했다. 왕재산이 소지하고 있는 국내 정보들이 고급 정보가 아닐뿐더러 ‘왕재산’이라는 단체 이름조차 검찰이 수사 단계에서 덧씌운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왕재산은 1933년 김일성이 항일유격대 부대를 소집한 산으로 북한에서는 일종의 혁명지로 손꼽히는 곳이기에 간첩 혐의를 덧씌우려는 검찰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잇따랐다.
여러 의혹이 일었던 왕재산 사건은 지난 2011년 법원에서 일부 ‘무죄’가 선고됨에 따라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1심 재판에서 법원은 이들이 “이적단체 구성을 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왕재산이라는 단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들이 이적 표현물을 소지하거나 회합, 통신한 행위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해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후 지난 2월에 열린 2심 재판에서는 “이들이 수집한 국가기밀이나 배포한 이적표현물이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만큼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하며 일정 부분 형량을 줄이기도 했다. 사건 초반 떠들썩했던 검찰 발표와 기소와는 달리 법원 판결 과정에서 상당 부분 혐의가 줄어든 셈이다.
올해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역시 흐름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 1월 서울지검 공안1부는 탈북자 신원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혐의로 화교 출신 탈북자 유 아무개 씨(33)를 구속 기소했다. 중국에 살던 유 씨의 여동생 A 씨(26)는 지난 2012년 10월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으며 “오빠가 북한 보위부의 지시를 받아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고 진술했다. 공안 당국은 이를 근거로 “유 씨가 200여 명의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고 구속하는 한편, 수차례 북한을 왕래하는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 조치했다.
하지만 지난 22일 열린 재판에서 법원은 유 씨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혐의의 유일한 증거인 여동생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 법원이 이러한 판단을 내린 배경에는 여동생의 ‘새로운 증언’이 큰 작용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A 씨는 국정원의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풀려난 직후 “국정원의 폭행과 협박에 시달려 거짓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국정원이 ‘정보를 주면 남한에서 살 수 있게 하겠다’고 회유를 하기도 했다”라고 폭로했다. A 씨의 주장에 국정원은 ‘사실무근’이라며 적극 부인했지만 간첩혐의가 무죄로 판명남에 따라 “증거도 없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상황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유 씨를 변호했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관계자는 “유 씨가 서울시 공무원이란 사실만으로 굉장히 이슈화된 사건이었지만 사실은 여동생 진술 하나만 갖고 진행된 무리한 수사라는 게 드러났다”며 “초반에는 유 씨가 확보한 탈북자 정보가 무려 ‘만 명’이라는 얘기가 보수 언론 쪽에서 나오긴 했지만 숫자가 점점 줄어 검찰이 기소 단계에서 증거를 제출할 당시에는 30~40명만 인정됐다. 게다가 간첩 무죄 판결까지 났으니 혐의가 상당히 부풀려진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전했다.
이렇듯 최근 벌어진 굵직한 공안 사건들이 상당 부분 무혐의로 드러난 것을 비춰볼 때 이번 ‘이석기 내란음모사건’도 비슷한 수순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이 일고 있다. 사건 초기 떠들썩하게 제기된 혐의와는 달리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속빈 강정’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제기된 ‘내란혐의’는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보다 더욱 엄격한 입증이 필요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당시 사형 선고를 받은 김 전 대통령은 후에 ‘불법 재판’임이 인정돼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현재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의 유력한 증거로 손꼽히는 ‘녹취록’에 대해서도 이것이 내란혐의를 씌울 만한 사안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당시 녹취록에 음성이 기록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내란 혐의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혐의를 완벽하게 입증하기 위해선 녹취록을 뛰어넘을 만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된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의 민변 관계자는 “최근 공안 사건들이 수사단계에서는 요란하다가 기소단계에서 혐의가 줄고 또 재판단계에서 또다시 혐의가 줄어드는 ‘용두사미’ 수사가 이어지는 것을 비춰볼 때 이번 사건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며 “이번 사건의 흐름을 좀 더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33년 만에 내란음모혐의로 대대적인 공개수사를 하는 마당에 확실한 물증 없이 섣불리 덤볐을 리는 없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