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강 씨의 남편 송 아무개 씨는 경찰에 강 씨 실종 신고를 냈다. 그러나 경찰한테서는 “요즘 남자들하고 바람나서 도망친 여자들 많아 아내 강 씨도 놀다 며칠 후에 돌아올 테니 신경 쓰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찰은 단순 가출로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하지 않았다.
결국 가족들이 직접 강 씨를 찾아 나섰다. 아버지 송 씨와 자녀 A 군, B 양은 강 씨 실종 당일과 이틀 후인 7일 청주터미널과 대전역 등지의 은행에서 강 씨 통장 예금 1000만 원이 인출된 사실을 발견했다. 집 전화 통화내역에서도 폰뱅킹을 통해 예금 조회를 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가족들은 대전역 앞 은행까지 찾아가 사정한 끝에 강 씨 예금을 인출한 남자의 모습이 찍힌 CCTV를 확인할 수 있었다. 170㎝ 남짓한 키에 다부진 몸매, 모자를 쓰고 뭉뚝하고 큰 코가 특징인 20~30대 정도의 남성이었다. 강 씨의 가족들은 CCTV 화면을 들고 다시 경찰서를 찾아갔다. 그러나 경찰의 대응은 변함이 없었다. 화면 속 남자가 강 씨의 내연남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강 씨가 실종된 지 23일이 지난 6월 28일, 아들 A 군과 딸 B 양은 집에서 무언가 썩어가는 악취가 나는 것을 느꼈다. 냄새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한 층 위 건물 옥상에 있는 물탱크실. A 군은 “옥상으로 올라가면서 냄새가 더 심해지고 구더기가 끓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물탱크실 문고리를 잡는데 문을 굳이 안 열어도 본능적으로 엄마의 죽음을 직감했다. 거의 체념한 상태로 문을 열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물탱크실 구석에는 심하게 부패돼 형체를 거의 알아보기 힘든 어머니 강 씨의 시신이 놓여있었다.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앞치마까지 그대로 하고 있는 상태였다.
강 씨의 시신이 발견된 후에야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경찰은 강 씨의 정확한 사인과 범인에 대한 증거 확보를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강 씨의 부검을 의뢰했다. 그러나 국과수는 시신의 부패 정도가 너무 심해 부검조차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동안 확보된 CCTV 영상 등으로 수사에 박차를 가해야 했던 경찰은 오히려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강 씨의 남편인 송 씨를 지목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의 한 관계자는 “그때 집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진행했는데 사건이 일어난 시각에 강 씨의 비명소리나 다투는 등 수상한 소리를 들은 이들은 없었다. 또한 현관문을 강제로 열려고 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면식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따라서 가족을 제1 용의선상에 놓고 조사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사건의 내용이 다뤄지기도 했다.
그렇게 경찰의 초동 수사 미흡으로 사건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8년이라는 아까운 시간만 보냈다. 강 씨의 딸은 범인이 밝혀지지 않는 답답함에 어머니와 가족들의 사연을 담은 글을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렸다. 게시물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고, 그들의 사연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경찰의 부실수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지난 2011년 경찰과 검찰은 청주 물탱크실 주부 변사 사건에 대해 재수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상대 검찰총장까지 나서서 철저한 재조사를 지시했다.
지난 2011년 8월 25일 청주 흥덕경찰서에서 전담팀이 꾸려져 수사를 재개했다. 당시 수사 기록과 모든 자료를 다시 분석하고 은행 CCTV에 찍힌 용의자의 모습도 전단지로 만들어 1만 장을 배포했다.
재수사가 진행되고 다시 2년이 지난 2013년 현재,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기자가 흥덕경찰서를 찾았지만 현재 강 씨 사건은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 않아 수사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흥덕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2011년 흥덕서에서 조사를 한 이후 특이한 사항이 발견되지 않자 충북지방경찰청의 ‘미제사건 특별 수사팀’에서 강 씨 사건 기록을 가지고 가서 다시 살펴봤다. 그러나 거기서도 아무런 실마리를 찾지 못해 결국 기록은 다시 흥덕서로 넘어와 보관 중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범인을 찾기 위해 현상금 1000만 원을 걸고 전단지까지 돌렸다. 그 정도 되면 돈에 혹해서 같은 전과자끼리 경찰에 제보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단 한 건의 제보조차 없었다”고 답답해했다.
하지만 가장 답답하고 고통 속에 지내는 것은 피해자 강 씨의 유가족이었다. 강 씨의 자녀들은 어머니 강 씨 사건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듯했다.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가족과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가족들이 아직도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아 힘들어 한다. 또다시 그때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