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열린 K리그 클래식 21라운드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에서 서울의 고요한이 드리블하고 있다. 사진제공=FC서울
선두 다툼도 꼴찌 다툼도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특히 승점 1~2점을 놓고 서너 팀들이 물고 물린 경우가 잦아 축구 팬들에게 ‘보는 재미’를 안겼다. 그러나 생존게임에 내몰려 있는 구단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특히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안았을 때 엄청난 외풍이 몰아쳤다.
항상 그렇지만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각 구단들이 가장 받기 쉬운 유혹은 ‘감독 교체’다. 전쟁 도중, 지휘관을 경질하고 새 지휘관을 불러들이는 건 일선의 관련자들에게 가장 쉽게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도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성적이 부진한 팀들은 감독을 바꾸며 새로운 자극과 효과를 기대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성적이 나쁜’ 도시민구단들의 결단이 빨랐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빨리 감독 교체를 선택한 것은 대구FC였다. 브라질 출신으로 지난 시즌 ‘대구 돌풍’을 진두지휘했던 모아시르 감독을 대신해 지휘봉을 잡은 당성증 감독이 일찌감치 물러났다. 새 수장은 백종철 감독. 이어 경남FC가 최진한 감독과 계약을 해지했고, 동유럽에서 활동해온 페트코비치 감독을 모셔왔다. 칼바람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는 강원FC였다. 김학범 감독을 내치고, 김용갑 신임 감독을 선임했다.
그러나 효과는 크게 보지 못했다. 좀처럼 하위권을 탈출하지 못했다. 경남처럼 반짝 상승세를 타는 경우도 있었지만 불씨는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감독을 바꾸는 것은 잠시 선수단을 정신무장시키는 단기처방은 될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인 안목과 거리가 멀다는 걸 제대로 입증했다. 특히 도시민구단들은 국제 축구계가 항상 외쳐온 “정치권과의 거리 유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태생적으로 지역 정치와 지역 경제에 깊숙이 연계돼 있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에 맞는 인사가 낙하산처럼 등장한다. 쉽게 말을 갈아타고, 새 말을 데려오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일단 사장이나 단장이 선임되면 이어지는 수순은 감독을 바꾸는 일이다. 입맛에 맞는 감독, 지역 출신에 한정시키다보니 후보자는 지극히 제한된다. 이는 지방에 위치한 기업형 구단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다. 일단 지역에 잘 보여야 한다는 인식이 뚜렷하다.
이를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축구계의 목소리가 높지만 ‘입맛대로’ 또 ‘부리기 편한’ 감독들을 데려오는 게 어느 순간부터 당연시됐다. 지도력보다는 배경이 선임의 이유가 될 때가 많다(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성적 부진은 지도자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못하는 구단들의 특징은 내부 단속조차 제대로 못하면서 ‘남 탓’ 하기 바쁘다는 점이다.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구단 자체의 잘못도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여러 축구인들은 “스쿼드가 두텁지 못하면, 또 처우가 좋지 못하면 성적은 당연히 나쁠 수밖에 없다. 순간순간 위기를 잠깐 넘기기 위해 감독을 교체하는데, 결국 화살이 돼 돌아온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포항 스틸러스(위)와 포항의 유소년클럽 포철공고. 사진제공=포항 스틸러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포항 스틸러스는 우려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현대 축구에서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외국인 선수를 전혀 수급하지 않은 탓이다. 당연히 어려운 행보가 예상됐다. 하지만 불편한 모든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시즌 초부터 지금까지 가장 안정적으로 팀을 꾸려왔고, 선두 다툼의 중심에 섰다. 간혹 패할 때면 여론은 기다렸다는 듯 “곧 무너질 때가 됐다”고 수군수군거렸지만 딱히 위기가 없었다.
포항은 이를 ‘구단 DNA’에서 찾았다. 잘 키운 자식들이 지금의 포항을 만들고 있다. 철저히 체계화된 유소년 축구 시스템에 따라 선수들은 상위 레벨로 갈수록 좋은 떡잎이 됐고, 꽃을 만개했다. 초창기 기약 없던 열매를 수확하는 시기가 도래한 셈이다.
FC서울은 ‘우승 DNA’의 효과를 보는 중이다. 올 시즌 초반 서울은 극심한 하락세에 놓여있었다. 전력 보강을 꾀하기보다 기존 스쿼드를 붙잡는 데 매진하느라 추락이 예고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옛 말에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 걸음씩 전진하더니 어느 순간 예전처럼 ‘가장 강한’ 팀이 됐다. 지난 시즌 K리그를 제패한 뒤 서울 최용수 감독은 “연승보다 뜻 깊은 건 연패가 없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물론 올해는 연승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인저리 타임, 종료 직전에 결승골이 자주 터져 ‘서울 극장’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는데, 시즌 초반의 어려움이 있어 지금이 더욱 달콤한 서울이다.
울산 현대도 작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밟은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 때 전성기를 만든 핵심 선수들은 대부분 이탈했지만 새로운 선수들이 확실히 구멍을 메웠다. 특히 ‘강팀에 강한’ 전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수원 삼성과 전북 현대는 프로축구연맹이 추진한 ‘연봉 공개’의 직격탄을 맞았다. 예전처럼 선수 이적 시장에서 큰손으로 활동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전북은 잠시 국가대표팀에 외도(?)했던 최강희 감독이 복귀하고, 앞서 토종 선수들을 꾸준히 영입했지만 수원은 거의 전력 보강이 없었다. 심지어 기존 스쿼드를 유지하는 것조차 무리였다. 특히 활용 가능한 4명 용병 가운데 3명을 내쳤다. 이는 수원 레전드 출신 서정원 감독에게 혹독한 시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수원은 역시 명문 클럽다운 행보를 보였다. 용병 진용 와해와 주력들의 연이은 부상 등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힘은 없었어도 꾸역꾸역 제 자리를 찾아 나갔다. 서 감독은 “수원만의 ‘DNA’가 있다. 안 된다 싶을 때도, 못 한다 싶을 때도 우린 위기를 타개할 저력이 있다. 전력만 놓고 보면 전북, 울산 등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수원에 왔다는 건 결국 최고의 선수들이라는 의미다. 검증된 실력으로 당당히 평가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