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급기한을 불과 하루 넘긴 1억원짜리 즉석복권의 당첨금 을 둘러싸고 구입자와 은행 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 ||
현재까지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은 ‘0%’였다. 하지만 이 확률은 이제 조금 수정돼야 할 것 같다. 최근 강원도 원주에서 지급기한을 하루 넘겨 당첨금을 청구한 탓에 당첨금 지급이 거절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백만분의 일’의 확률을 뚫고 1등에 당첨된 당첨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분통터질 노릇. 이에 복권판매인도 “말도 안된다”며 은행을 상대로 소송이라도 벌일 태세다. 사상 초유의 ‘미지급 1억원 당첨금 소송’이 벌어지면 과연 법원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에 사는 주부 김선화씨(가명·32)가 복권을 구입한 것은 지난달 30일 오후 7시30분 무렵. 시내에 있는 복권전문점 ‘복권나라’로 발걸음을 옮긴 김씨는 여느 때처럼 즉석찬스복권 6장을 구입했다. 귀가하기 전 몇천원어치의 즉석복권을 사서 긁는 것은 벌써 1년여쯤 계속돼 온 취미였다.복권나라의 이창호 사장도 그런 그녀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즉석복권 6매를 건네면서도 잠시 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복권을 긁던 김씨가 “사장님 여기 좀 보세요”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씨를 불렀다. 이씨가 돌아봤을 때 그녀는 무엇에라도 홀린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는 그녀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씨가 복권을 살펴본 결과 두 장이 나란히 5천만원에 당첨된 것이 확인됐다. 나머지 네 장 가운데 두 장은 5백원에 당첨됐다. 비록 복권전문점을 하고 있던 이씨였지만 실제로 1억원에 당첨된 사람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서로 멍하게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던 두 사람은 이내 정신을 수습했다.일단 복권의 처리 문제가 떠올랐다.
복권 앞뒷면을 주의깊게 살펴보니 지급기한이 나와 있었다. 애석하게도 기한은 당일인 ‘2002년 9월30일’. 낭패였다. 이미 은행 영업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급히 주택은행 원주지점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미리 녹음된 기계음뿐이었다.낙심한 표정이 역력한 당첨자 김씨. 이런 그녀에게 이씨는 지급기한이 1∼2주 정도 지나더라도 당첨금을 지급해왔던 업계관행을 들어 안심시켰다. 다음날 은행문을 열자마자 지급을 요청하면 당첨금을 찾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그녀를 위로했다.
사단은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은행 영업이 시작되자마자 업주 이씨는 지급기한이 하루 지난 복권의 1등 당첨금이 지급될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말로만 듣던 ‘1억원 당첨’ 소식에 당황하기는 국민은행(구 주택은행) 원주지점 직원들도 마찬가지. 이들은 서울 본사에 문의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서울로 통화를 시도했다.20∼30분쯤 흘렀을까.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이씨와 김씨에게 답변이 도착했다.
결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지급불가’ 통보. 복권에 명시된 당첨금 지급기한 9월30일을 하루 넘겼기 때문에 당첨금은 주택기금에 귀속된다는 것이 은행측의 공식적인 답변이었다. 믿었던 당첨금 지급이 거절되자 업주 이씨와 당첨자 김씨는 그 길로 서울 국민은행 본점으로 찾아가 지급을 호소했지만 상황은 뒤바뀌지 않았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당첨자 김씨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이씨가 빼든 칼은 당첨금지급청구소송. 이씨는 “복권을 발행한 국민은행측이 지급기한을 하루 넘겼기 때문에 당첨금을 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며 “변호사를 선임해서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급기한이 1∼2주 정도 지나더라도 당첨금을 지급하는 것이 그동안의 관행인데 내부규정을 내세워 지급을 거절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 이씨측의 입장. 이씨는 또 “전국에 있는 복권 도매인들 40∼50명이 ‘이 기회에 힘을 합쳐 대응하자’며 함께 분개하고 있다”며 “만약 최악의 경우 이들과 함께 복권 불매운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은행측의 입장은 확고하다. 국민은행 복권사업팀 이상효 과장은 “판매업자측에서 소송을 제기한다고 해도 지급기한은 명백한 규정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협의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장은 또 “은행 돈이 아닌 정부기금으로 운영되는 복권 당첨금을 은행이 임의로 처리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난감한 입장이다.
그는 이씨측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1만원 이하의 소액 당첨금에 한해서 1주일 정도 지급기한을 넘기더라도 당첨금을 지급했던 것은 1주일에 한번 정도 은행을 방문하는 복권 판매인들의 편의를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1만원 이하의 당첨금에 대해서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는 사실도 강조했다.주택복권 사업을 주관하는 건설교통부 주택정책과 관계자도 “현재로선 당첨금을 지급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잘라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즉석식 복권의 경우 반품제도가 없기 때문에 이씨와 같은 도매업자들이 판매하고 남은 복권을 자신들이 재미삼아 긁어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때문에 지급기한이 지난 복권의 고액 당첨금을 지급할 경우 판매인이 팔다 남은 복권을 긁어 당첨을 확인한 뒤 당첨금을 청구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
1만원 이하의 소액 당첨금의 경우 기한이 지나도 당첨금을 지급하던 관례에 비춰 ‘1등 당첨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속보이는 처사’라는 판매인측과 원칙을 들어 ‘지급은 불가능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하는 은행. 앞으로 전개될 당첨금 지급소송의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