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기류는 최근 SK 비자금 1백억원 한나라당 대선자금 유입으로 비롯된 이른바 ‘대선자금 정국’이 전개되고, 오는 11일 창당을 앞둔 우리당측의 인물영입에 속도가 붙으면서 더욱 짙어져가고 있다.
특히 10·30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텃밭인 경남 통영시장에 우리당측이 지원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면서 ‘영남권 지각변동’이 현실로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장 ‘일격’을 당한 한나라당은 충격 속에 대책 마련에 들어갔고, 반면 우리당은 영남권 공략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함께 정·관계 거물급 인사들의 추가 영입작업에 착수했다. 한나라당과 우리당 간에 ‘일전불사’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영남지역 정치풍향을 점검해 봤다.
"아니, 호남도 아니고 수도권도 아닌 영남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지난 10월30일 10·30재보선 결과를 기다리던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는 중앙선관위의 선거결과 발표를 접하고 온통 충격에 휩싸였다. 일말의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텃밭인데…”라며 승리를 자신했던 경남 통영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강부근 후보가 무소속 진의장 후보에 10% 포인트에 가까운 큰 격차로 패배했기 때문. 또 대구시 수성구 제4 선거구 시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정기조 후보가 한나라당 윤병준 후보를 역시 7% 포인트나 앞서며 당선된 것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 패배에 대해 겉으로는 “중앙당에서 크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고 특별한 이변도 없었다”(이재오 사무총장)며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상당한 ‘내상’(內傷)을 입었다는 것이 정설.
‘최병렬 체제’ 출범 후 첫 선거인 데다 통영시장 선거의 경우 최 대표와 홍사덕 원내총무, 이강두 정책위 의장 등 지도부와 박근혜 홍준표 의원 등 ‘스타 의원’들까지 직접 지원유세에 나서는 등 총력전을 펼쳤기 때문.
한나라당은 특히 당선된 강 후보가 겉으로는 무소속이지만 사실상 우리당 후보라는 점에 속쓰려 하고 있다. 강 후보는 내년 17대 총선에서 경남 통영·고성에 우리당 공천을 받아 출마할 예정인 정해주 진주산업대 총장(전 통상산업부 장관, 국무조정실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장은 지난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김동욱 의원에 박빙의 차이로 낙선했으며 노무현 정권 출범 후에는 일찌감치 ‘여권행’을 결정한 채 17대 총선에서의 ‘설욕’을 별러왔다.
▲ 지난 10월 30일 상임운영 위원회 에서의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또 김호진 전 노동부 장관과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추병직 전 건교부 차관 및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전직 고위 공직자들도 힘을 보탰다. 이중 특히 공 전 시장과 이 교수 등은 기존에 ‘친(親) 한나라당’으로 분류됐던 터라 눈길을 끌었다.
우리당측은 이들 외에 앞으로도 허성관 행자부 장관과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 최낙정 전 해양부 장관 등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을 추가로 영입해 영남권에서 한나라당과 전면적인 ‘인물 대결’을 벌인다는 복안. 아울러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호철 민정1비서관도 최근 연말 청와대 개편을 즈음해 부산지역 출마를 선언할 것이란 관측이 나와 한나라당측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 우리당 내 노 대통령의 한 핵심측근은 “내년 총선에서 영남지역은 동원가능한 ‘인재 풀’(Pool)을 ‘올인’시켜 선거를 치를 계획이다. 우리당의 목표가 전국정당에 있는 만큼 영남권에 배전의 관심과 노력을 경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역 분위기도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으며, 일부 인사들에 대한 ‘개혁성’ 논란도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내부적으로 양해될 수 있다는 기류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당 내에서는 부산·경남에서 민주당 신당파와 개혁신당추진위원회(신추위) 간 불협화음이 외부로 불거지고, 대구·경북에서도 계파간 알력이 벌어지고 있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 부산·경남에서는 노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지인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과 역시 노 대통령의 측근인 조성래 변호사 간에 주도권 다툼이 여전하다는 평가고 대구·경북에서도 ‘신추위’ 몫으로 경북 창준위 공동위원장에 임명됐던 신평 전 대구지법 판사가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강철 대구 창준위원장의 동반사퇴를 촉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당이 이처럼 일부 마찰음에도 세 확산에 주력하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마땅한 대응카드를 찾지 못해 고민이 깊어가고 있는 상황. 특히 영남권의 경우 60세 이상 ‘고령 의원’들의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아직 ‘자진 용퇴’를 선언하는 이들은 거의 없어 ‘물갈이’ 과정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경남의 경우 5선 중진이자 지역 내 최연소(52세)인 강삼재 의원(경남 마산 회원)이 안기부 총선자금 사건으로 정계은퇴를 선언한 데 이어 지역 내 또 다른 핵심 중진인 김영일 의원(경남 김해)마저 SK 비자금 사건으로 사법처리될 위기에 처하게 돼 분위기가 흉흉한 상태. 한나라당 내에서는 김 의원의 정치적 위상을 감안할 때 분구가 예상되는 김해는 물론 마산과 창원, 양산 및 진해 지역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앞서 언급한 대구 수성구 시의원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 기층의 ‘맹목적적인 친 한나라당’ 정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데다 ‘세대 교체’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 내년 총선에서의 ‘이변’을 예고하고 있다.
이 지역은 특히 대구가 11명 의원 중 9명, 경북이 16명 중 10명이 60세 이상일 만큼 ‘노령 의원 집결지’인 데다 P, K, K의원 등 각종 비리 관련 재판에 계류중이거나 비리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아 어떤 형식이든 정리가 필요한 상태다.
부산 역시 여권 핵심부가 인물 본위의 ‘융단 폭격’ 방침을 유·무형으로 밝히고 나섬에 따라 대대적인 물갈이의 필요성이 유권자층으로부터 제기되고 있는 상태. 특히 일각에선 최근 노 대통령을 ‘개구리’에 비유했다가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받았던 K의원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개혁국민정당 유시민 의원의 주중 북한 대사관 방문설을 터뜨렸다 ‘망신’을 당했던 또 다른 K의원 등 6~7명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기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