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28일 북한과 홍콩의 축구경기에서 응원 전을 펼친 북측 응원단 | ||
이렇듯 폭발적인 스포트라이트 이면에는 북측 응원단의 내부 생활이 전혀 공개되지 않는데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자리한다. <일요신문>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븍측 응원단의 실제 생활과 출신 성분, 그리고 남측 관계자들에게 노출된 또 다른 면면들을 주변 취재를 통해 알아보았다.
▷대부분 상류층 자제
북측 응원단중 취주악대를 뺀 순수 응원단은 대부분 상류층 출신이다. 기자가 직접 만나 본 응원단의 백영심씨(21)는 아버지의 직업을 묻는 질문에 노동자라고 짤막하게 대답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노동당 고위 간부의 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응원단은 철저한 검증을 통해 선발된 미인들로 알려져 있다.
그 기준은 크게 네 가지. 당 충성도와 출신 성분, 외모와 능력 등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가장 성적이 좋은 사람들 순서대로 응원단에 합류했다는 것. 이름을 밝히길 꺼리는 한 안전요원은 “고운 피부와 교양있는 태도, 교육을 잘 받은 듯한 매너 등을 봤을 때 북측의 고위급 자제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측의 어떤 발전상이나 변화에도 별로 놀라워하거나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북한청년동맹 소속인 취주악단은 쉽게 말해 여자 경찰대 소속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북한에는 수많은 취주악단이 있는데 그중에서 청년동맹 소속은 가장 뛰어난 실력과 성분을 갖춘 인재 중의 인재라고 한다.
▲ 대포항에 정박한 만경봉-92호 북측 응원단이 숙소로 이용 하고 있다. | ||
▷버스 안에서 생긴 일
만경봉-92호에서 각 경기장으로 이동할 때 수송 수단으로 이용하는 관광버스는 북측 응원단의 ‘무대’ 밖 모습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부분의 응원단원들은 거리 풍경을 주의 깊게 쳐다보며 옆 사람과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 다대포항에서 한보철강을 지나가던 중 고철 덩어리가 여기저기 쌓여 있는 모습이 눈에 띄자 갑자기 한 북측 임원이 “남한엔 저렇게 처분하지 못하는 쓰레기가 여기저기 쌓여 있다”며 아는 체 하더라고. 남측 관계자가 “쓰레기가 아닌 중고 고철들을 재활용하기 위해 모아둔 것”이라고 정정하자 무안한 표정이 됐다고 한다.
버스 운전기사와도 처음의 어색함에서 벗어나 인사와 간단한 농담을 던질 만큼 친분을 쌓았다. 하루는 응원단 중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기사 선생은 ‘휘파람’을 불어 본 적이 있습네까?” 운전기사가 질문 의도를 몰라 당황해하자 “‘휘파람’이란 말 모릅네까? 연애 걸어 본 적이 있냐는 말입네다”라고 설명하더라고. 즉 북한에선 ‘휘파람’이란 단어가 남자가 여자를 꼬실 때 쓰는 은어였던 것이다.
▷만경봉호 내부가 궁금
점심 도시락을 제외한 숙식을 만경봉호에서 해결하는 응원단들은 솔직히 잠자리가 편치만은 않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자다보니 잠자다 멀미하는 일이 다반사고 숙면을 취할 수 없어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반입이 허용되는 남측 신문들이 있지만 단원들이 보기란 어려운 일. 주로 임원들이 신문을 읽어본 후 승무원들이 보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응원단들은 남측 신문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각 방송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자신들의 얼굴과 기사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너무 궁금한 것.
보통 아침 10시부터 시작된 응원단의 하루 일과는 밤 11시가 넘어서 끝나는 게 보통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힘든 내색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만경봉호로 돌아오는 차안에선 파김치가 된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속내 숨기고 인터뷰
한 기자가 오랜 응원과 긴 이동거리로 인해 지친 표정이 역력한 응원단에게 “많이 힘드시죠?”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금세 표정을 고치고는 “전혀 힘들지 않습네다. 아무리 강행군을 벌여도 우린 장군님만 생각하면 힘이 절로 솟습네다”라고 대답했다. 어찌 안힘들 수 있으랴. 그러나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걸로 교육받은 터인지 응원단들은 한결같이 “문제 없습네다”만을 외치고 있다.
기자들이 인터뷰할 때마다 북한 선수나 응원단 모두가 ‘통일’을 외친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통일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통일이 된 이후의 문제나 체제와 이념의 차이에서 겪게될 갈등과 번민은 관심 밖이다. 학교도 집도 모든 걸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남측 사람들이 그들 눈에는 불쌍하게만 보이는 것.
해운대 바닷가에 늘어 서 있는 아파트를 보고 한 임원이 “남측에선 집 한 채에 수천만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우린 당에서 모두 공짜로 집을 줍네다”라며 자랑을 늘어놓더라고.
▷남측 남자들에 대해
북측 응원단은 북 체제를 널리 알리는 홍보 사절단의 역할도 맡았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쏠리는 관심이 싫지만은 않다. 특히 남측 남자들이 보내는 열렬한 호기심은 응원단 사이에서 최고 화제다. 처음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으나 지금은 자신의 이름과 나이 밝히길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머리를 염색하거나 지나친 스킨십을 시도하는 남자들은 질색하는 편. 기자들이 남자친구가 있는지를 물을 때마다 대부분 ‘예스’를 외쳤지만 예술단이나 취주악단들은 당의 관리와 지도를 받고 있기 때문에 남녀교제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또한 남자친구에게 받았다고 자랑한 반지는 부산 오기 전 일괄적으로 지급받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게 한 남측 관계자의 설명. 반지와 목걸이, 신발까지 모두 당으로부터 지급받고도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들이 개방적인 여건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내비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