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결국 옷을 벗었지만 ‘혼외 아들’ 논란을 둘러싼 진실공방은 향후에도 뜨겁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논란이 불거진 뒤에도 검찰 내부에선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검찰총장이 그런 논란에 오른 것 자체가 문제”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공안통 검사들과는 달리 ‘특수계’ 검사 다수는 “우리가 직접 채 총장을 감찰 수사를 하더라도 혼외 아들은 없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라며 팽팽히 맞섰다. 검찰의 특수수사-공안기획파 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과 갈등이 이번 사건에서도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채동욱 낙마의 진원지로 의심받고 있는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표적인 공안기획통이었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우선 특수계 검사들이 채 전 총장의 결백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혼외 아들 의혹 기사가 사실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 ▲채 전 총장의 정관수술설 ▲내연녀로 지목된 임 아무개 씨의 진술이 담긴 편지 등이 있다. 한 특수계 검사는 최근 기자에게 “보도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대검에서 수사관을 파견하긴 했지만, 윗선 보고에 따르면 애초에 그런 대응을 할 생각조차 없었다고 한다. 문제의 기사에 사실요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고, 2, 3차 보도에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렇다 하게 검증해볼 건수조차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검사는 “검찰 내부는 대부분 채 총장님 편이다. 당연한 이야기다(웃음). 솔직히 우리가 봐도 그래. 팩트가 없잖아?”라고 덧붙였다.
혼외 아들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채 전 총장이 “사실이 아니다”라며 명확한 태도를 취한 것도 논란을 일정부분 불식시키는 데 한몫했다. 이 발언을 두고 일선의 검사들은 “채 총장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주니까 얼마나 든든해. 얼마나 하는 말도 멋있어. 총장이 이럴 때 강경 대응을 해줘야 검찰 체면도 서는 거지. 총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는 건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라고 평했다. 또 다른 고위급 검사 역시 “보통 이런 일엔 제아무리 검찰총장이라도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모르는 일이다’라며 수습한 후 나중에 ‘억울하지만 이런 소문에 휩싸인 것 자체가 죄송한 일’이라며 사퇴하고 만다. 그런데 채 총장을 봐라. 그냥 무대포잖아.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다”라면서 “게다가 채 총장이 알아주는 수사기술자 출신인데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할 리도 없다. 거짓말을 하게 될 경우 오게 될 후폭풍이 뭔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채 전 총장이 10여 년 전 정관수술을 받았다’는 일각의 설이 그의 무관함을 입증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채 전 총장의 한 최측근은 사퇴 전 기자에게 “채 총장이 10여 년 전 정관수술을 받았다고 들었다. 최근 정관수술은 ‘묶는’ 방식으로 하는데 10여 년 전에는 ‘커팅’(cutting·절개) 방식으로 했다고 한다. 채 총장이 받은 수술은 후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채 전 총장이 정관수술을 받은 사실과 병원을 공개하면 모든 의혹이 일거에 해소될 수 있는데 채 전 총장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문이 남는다.
끝으로 내연녀로 지목된 임 씨가 자필편지를 통해 “내 아들의 친부는 채동욱 총장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자 검찰 내부에 포진된 이른바 ‘채동욱 반대세력’도 “그 정도면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임 씨의 편지가 공개된 날,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보도를 한 조선일보 내부에서조차 ‘애초에 보도할 내용이 아니었다’며 기자들끼리 작은 다툼이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조선일보 건물.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 존재가 사실일 1%의 가능성은 또 있다. 채 전 총장과 내연녀로 지목된 임 씨가 적어도 서로 아는 사이라는 점은 임 씨의 편지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임 씨는 최근 공개한 자필 편지에서 “채동욱 씨를 부산에서 장사할 때 손님으로 알게 된 후 서울에서 사업을 할 때도 제가 청하여 여러 번 뵙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부산에서 가게 주인과 손님으로 알게 된 관계가 서울에서도 계속됐다는 것은 채 전 총장과 임 씨가 평균 이상의 돈독한 관계였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채 전 총장이 “모르는 일이다”라며 공식 해명을 한 것도 의문점으로 남는다. 사실관계에 입각한 해명에 익숙한 특수계 출신인 채 전 총장이 “임 씨와는 면식이 있지만 성적관계는 없었다”는 구체적인 사실로서의 해명이 아닌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로 뭉뚱그려 답한 것을 두고도 법조계 일각에서는 그 배경에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채 전 총장과 인연이 있던 검사들은 하나같이 “총장님은 그럴 분이 아니다. 이 말에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다”며 채 전 총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이고 있다. 적어도 채 전 총장이 혼외 자식을 낳았다 하더라고 공식석상에서 자녀의 존재를 부정할 만큼의 파렴치한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를 놓고 봤을 때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 존재설은 정말 소문에 불과할 수 있다.
한편 법조계 일각에서는 제3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임 씨가 10여 년 전 채 전 총장과 우연찮게 ‘관계’를 맺었고, 이 과정에서 생긴 아이를 채 전 총장 몰래 낳아 혼자 길렀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이때 임 씨가 학생기록부에도 채 전 총장을 ‘떳떳하게’ 아버지로 올렸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채 전 총장은 이런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모르는 일’이라고 대응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조선일보가 이 시나리오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채동욱 전 총장은 이제 공인이 아닌 개인 신분이 됐다. 본인이 사적인 문제라고 선을 그으며 확인을 미루거나 상대녀 임 씨가 친자확인을 강하게 거부할 경우 이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게 된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