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합 & 공존
지난 6일 아이티와의 친선경기에서 손흥민(왼쪽 두 번째)이 후반 골을 성공시킨 뒤 동료 선수들과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한국 축구는 전혀 예상치 못한(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에 처해 있었다. 모두가 똑같은 건 아니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팀 운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대표팀 사령탑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게 요즘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자유분방하고 개인적인 문화가 통용되는 유럽에서도 이 같은 장면은 쉬이 접할 수 없었는데, 기성용 사태로 인해 어른에 대한 공경과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나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많은 축구인들은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국내 선수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불필요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축구는 엄연히 팀 스포츠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이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스타도 아니면서 우쭐해 하는 모습이 불쾌할 때가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홍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이러한 상황을 접해왔고, 적어도 자신이 대표팀을 이끄는 동안에는 동일한 문제가 불거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직간접적으로 표명해왔다.
이처럼 대표팀 내 화합과 공존이 실패해가는 모든 과정을 체크했던 홍명보호는 악습을 벗어나기 위해 일련의 조치를 내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선수 개별 인터뷰 금지 등이다. 특정 선수들에만 쏠리는 관심과 스포트라이트를 모든 선수들로 고루 배분하기 위해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의 대표팀 합류를 위한 귀국 스케줄을 비공개로 하고, 해당 선수들의 소속 에이전트에게는 “국내로 입국할 때는 따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간 대한축구협회 차원의 대표팀 운영방침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고, 그러면서 유럽 리거들의 귀국길 인천국제공항에서의 미니 인터뷰는 당연한 관례였다. 기자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또 자주 접촉해왔던 K리거들에 비해 외국에서 뛰는 선수들이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선수단 내 불필요한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 이러한 아주 작은 상황까지 미리 염두에 두고 대표팀을 운영했던 것이다.
이번에 대표팀에 승선했던 한 선수는 “예전과는 선수단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과거 소집 때는 식사 때면 친한 사람들이 따로 모여서 먹었는데, 이젠 다양한 그룹과 접촉을 하려고 노력했다. 확실히 ‘모두’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은 듯했다. 내 행동이 전부 체크 리스트에 있다는 걸 감안하면 누구도 감히 홀로 튀는 행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 운명 & 전쟁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베테랑들은 물론이고, 과거 전력의 핵심으로 중용됐던 유럽 리거들도 자신을 따라다니는 ‘유럽파’라는 거창하면서도 화려한 타이틀이 대표팀 내 생존과 월드컵호 승선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됐다. 심지어 각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면서 ‘홍명보호의 아이들’로 분류돼 온 작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멤버들도 같은 상황이었다. 물론 홍 감독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타입이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에서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는 긍정의 자극으로 귀결됐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소위 ‘언터처블’로 분류됐던 골키퍼 정성룡(수원 삼성)이나 독일은 물론 유럽 축구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는 윙 포워드 손흥민(바이엘 레버쿠젠) 등도 홍 감독이 추구하는, 또 선호하는 선수가 되기 위해 주어진 범위 내에서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미약하지만 한국 축구는 확실히 또 차근차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