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부터 69년까지 6년 동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가장 가까이서 박정희 대통령을 보좌했던 그는 70년부터 3년 동안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한 3공 시절 권력 핵심 인물. 79년 울산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으나, 10•26사태로 인해 역사의 뒤편으로 쓸쓸히 퇴장해야만 했다.
▲ 지난 94년 경기도 광주 ‘도평요’ 앞에서 취재 진과 마주친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모습. 최근 그의 건강이 악화됐다고 한다. | ||
이에 대해 동욱씨는 “오죽했으면 한창 일하실 나이에 도자기 구우러 (경기도 광주에) 들어가셨겠냐”며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내비치기도 했다. 동욱씨는 “가족회의를 통해 아버지께 ‘자서전을 집필하시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모두 지난 일인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는 이 전 부장이 박정희 정권시절 권력 막후에서 벌어졌던 갖가지 비화를 무덤까지 가져가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동욱씨는 “아버지는 절대로 언론에 직접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더군다나 현재 치매증세를 보이는 등 건강도 좋지 않아 그의 자서전이나 역사 기록을 기대하기란 더욱 어려운 상태다. 동욱씨는 “지난 3월 어머니(정윤희씨)께서 돌아가신 다음 아버지 기력이 더욱 쇠하셨다. 조금만 피곤하시거나 약주를 드셔도 사람들을 못알아보시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거동조차 힘든 상태여서 자서전이나 여타의 기록을 남기기에는 이미 때가 너무 늦은 것 같다”고 말했다.
동욱씨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은 DJ나 YS 등 자신과 동시대를 풍미했던 거물급 정치인에 대해선 일체 언급을 삼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전 부장의 ‘하남별장’ 관계자에 따르면 하루는 김대중 대통령이 TV화면에 비쳤을 때 “저 양반 지금 염색만 하지 않았으면 파고다 공원 노인이었을 텐데”라는 애매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혼자서 겨우 화장실 정도만 오갈 정도며, 말하는 것도 힘들어하신다”고 이 전 부장의 건강상태를 전했다. 이처럼 거동이 매우 불편한 까닭에 지난 5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73년 최종길 서울대 교수 의문사 사건’ 조사 때도 위원회 관계자들이 직접 ‘하남별장’을 방문해야 했다.
현재 이 전 부장은 서울 자택에서 요양하며 가끔 맏아들인 동훈씨와 막내아들 동욱씨의 집도 왕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전부장의 거동이 불편해서인지 울산에 살고 있는 누이(80)와 둘째 아들 동진씨가 최근 들어 자주 상경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욱씨는 기자에게 “아버지께서 조용히 사시다 가시게 해달라”고 오히려 부탁하기도 했다.